제주도가 곧 한라산이듯이 ‘울릉도는 성인봉이다.

 ▶  퍼스널모빌리티 울릉도 일주 르포(하)
울릉도를 즐기는 색다른 방법 ①

 

성인봉 ~ 나리분지 답사
울릉도는 성인봉이다

 

제주도가 곧 한라산이듯이 ‘울릉도는 성인봉이다.’ 수중 화산의 폭발로 생겨난 성인봉(984m)이 수면으로 드러난 산체가 울릉도라는 섬을 이루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깎아지른 절벽과 하늘을 찌르는 첨봉들의 도열, 급사면을 뒤덮은 울창한 원시림, 육지와는 사뭇 다른 식생, 산중 별세계처럼 고요에 잠긴 나리분지…. 도동에서 성인봉을 넘어 나리분지까지는 5시간의 힘겨운 산행길이지만 성인봉을 오르지 않고 울릉도의 진면목을 볼 길은 없다   
글‧사진 김병훈(본지 발행인) 

 

성인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톱날 같은 산줄기. 왼쪽 미륵산(905m)부터 가장 오른쪽의 뾰족한 송곳산(430m)까지 첨봉들의 장대한 도열이 압권이다

 

tip

도동에서 성인봉을 넘어 나리분지로 내려가는 코스를 추천한다. 반대로 나리분지로 먼저 가서 도동으로 넘어와도 된다. 해안도로를 따라 천부~도동~저동 순환버스가 40~50분마다 있고 천부항에서 나리분지행 버스도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해서 교통은 편리하다.  

 

엄청난 원시림이다. 그냥 빽빽한 숲이 아니라 급경사 비탈을 가득 메운 고사리는 아득한 고생대를 연상케 한다. 금방이라도 공룡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서늘한 분위기. 혼자 걷는 숲길에서 덕분에 더위를 잊는다.
울릉도 한가운데 가장 높이 솟은 성인봉(984m)은 손바닥만한 평지조차 허락하지 않는 우락부락한 생김새부터 험상궂다. 배가 울릉도에 가까워지면 수평선 위로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산줄기에서 원시의 기운을 감지한다. 영화 <쥬라기공원>의 무대와 판박이다. 해안은 거의 전체가 수직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간에도 평지는 아예 없을 것 같은데 주민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 사는지 자못 궁 금해진다.

 

나리분지에 있는 울릉도 전통의 투막집. 뒤편으로 미륵산이 거대하게 솟았다
고사리가 가득해 원시적인 느낌을 주는 성인봉 사면
물이 빠진 분화구인 나리분지. 가운데 성인봉이 살짝 가렸다

 

 

종상화산의 압도적인 밀도
국내에 단 둘뿐인 화산섬인 제주도와 울릉도의 공통점은 화산섬이란 사실 그뿐이다. 같은 화산섬인데 완전히 다르다. 제주도는 널찍하게 퍼져 사면이 완만하고 중산간지대에는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울릉도는 해안에서 정상까지 숨 돌릴 틈 없는 경사로 치솟아 오른다. 제주도는 화산 폭발 때 비교적 묽은 용암이 솟아나와 사방으로 넓게 퍼져내려 마치 방패를 펼친 것 같은 순상화산(楯狀火山)이고, 울릉도는 끈적한 용암이 멀리 퍼지지 못하고 가까이 뭉쳐 종 형태를 이룬 종상화산(鐘狀火山)이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부드럽고 안온하며 편안하다면, 울릉도는 거칠고 험준해서 긴장을 부른다. 나는 제주도를 한반도 최고의 절경으로 치는데 동의하지만 울릉도 역시 제주도만큼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한라산(1950m)이 성인봉보다 두 배 높은 것 같아도 바다 아래의 산체까지 포함하면 성인봉은 3100m가 넘어 한라산을 너끈히 제친다. 
성인봉 산행은 끈적한 용암이 거칠게 굳어버린 표면을 어루만지는 감각 기행이면서 그 엄청난 밀도의 암석이 자아내는 육중한 기운과 온전히 대면하는 육체적 심리적 고투의 과정이다.
울릉도의 중심지인 도동 외곽에 자리한 울릉콘도를 출발한 지 2시간만에 성인봉 정상에 섰다. 발 아래로 분화구인 나리분지가 비밀의 이상향처럼 고요에 잠겨 있다. 나리분지 주위를 감싸고 열병한 봉우리들은 화구 외곽을 이루는 외륜산이다. 왼쪽 방향으로 미륵산~송곳산으로 이어지는 톱날능선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진풍경이다. 해변에서 곧장 솟은 송곳산은 에누리 없이 430m의 수직절벽으로 단일 절벽으로는 국내 최고다.  
성인봉에서 나리분지로 내려서는 북사면은 아찔할 정도로 가파르다. 엄청난 원시림은 거목, 고목이 즐비하다. 
해발 360m, 지름 700m 정도의 나리분지는 울릉도 유일의 들판이다. 이 작은 들에 기대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겨울에는 눈이 1~2m 쌓이는 것이 예사다. 물이 빠져 들판을 이뤘지만 물이 고였다면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 같은 칼데라 호수가 되었을 것이다. 분지는 적막하지만 땅 속 깊은 어딘가에는 용솟음을 기다리는 용암이 들끓고 있을 것이다. 
천부항으로 내려가는 길은 자동차도 허덕이는 급커브와 급경사의 연속이다. 기어이 바닷가에 내려서면 왠지 안도감이 몰려온다. 작은 육신으로 거대한 용암덩이의 기세를 감당하기 벅찼던 것일까.

 

 

 

행남해안산책로
수직 절벽과 심해의 틈바구니  

 

도동~저동 간 해안절벽을 따라 위태롭게 조성된 행남해안산책로는 쏟아질 듯 까마득한 절벽과 해식동굴, 심연으로 일렁이는 동해의 숨결을 바로 곁에서 볼 수 있는 길이다. 한마디로 해안산책로의 압권이다. 육지에는 아예 없는 스케일과 절경에 감탄하면서도 인공을 압도해버리는 박력에 주눅이 들고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살구남 뒤편 언덕에서 바라본 저동 방면 해안산책로의 웅자. 왼쪽 초입의 다리가 산사태로 무너져 길은 끊어진 상태

 

tip

도동항 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면 살구남에서 저동 방면으로 해안산책로가 끊어져 있어 도동으로 되돌아오거나 산으로 올라붙어 우회하는 등산로를 이용해 저동으로 갈 수 있다. 도동항에서는 반대편 사동 방면으로도 2km 정도 해안산책로가 나 있다.

 

육지와 바다의 접점은 백사장처럼 부드럽거나 갯바위처럼 거칠거나 대개는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여기 울릉도에서 바다와 해안선은 날선 직각으로 만난다. 가장 단단한 것과 가장 무른 것의 영원한 대치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도동~저동 간 해안에 조성된 행남해안산책로는 바위와 바다의 기약 없는 불협화음을 바로 곁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바위는 수십미터 수직절벽으로 막아서고 바다는 작은 틈새라도 비집고 들어가 영겁의 시간이 자기편임을 믿고 아주 조금씩 문지르고 갈아내어 바위를 좀먹는다. 그렇게 해식동굴이 생겨나 파도의 쉼터가 되고 허공을 껴안는 가두리가 된다. 발밑으로는 깊이 모를 짙푸른 심연이다. 동해는 멀찍이서 보면 물빛이 아름다고 장쾌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심연의 공포가 압도한다.

 

절벽과 해식동굴을 꿰면서 지나는 산책로
저동 옛길에서 바라본 촛대바위. 뒤편으로 북저바위와 죽도가 차례로 겹친다
절벽을 뚫고 아찔하게 조성된 길

 

 

절벽과 파도의 만남, 밀어인가 투쟁인가
실낱같은 길은 좁고 짧은 다리나 계단으로 절벽을 타고 넘고 해식동굴을 스쳐간다. 가파른 절벽 끝은 바람에도 조금씩 바스러져 언젠가는 낙석으로 떨어져 내릴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바위의 악전고투다. 위에서는 바람이, 아래에서는 파도가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버틸 힘이 떨어진 바위가 떨어져 내릴 그 언제는 지금이 될 수도 있고 수백년 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확한 시기를 모르기에 우리는 마음 편히 그 아래를 지난다. 우리도 언젠가 죽지만 정확히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기에’ 오늘 여기서 일상을 산다.
행남등대 방면으로 뻗어난 산줄기 아래에 그나마 바위가 숨을 죽이고 자갈로 부서져내린 작은 해변이 있다. 해변 뒤쪽이 행남(杏南) 마을이 있던 곳이다. 우리말로 ‘살구남’이라고도 한다.
살구남 뒤편 언덕에 올라서면 저동 방면으로 아찔한 절벽 해변이 수직으로 누운 요철이 되어 바다와 맞서고 있다. 바위는 이빨이 되어 바다를 잘근잘근 씹어 먹을 기세다. 바다는 바람과 합세해 바위를 공격한다. ‘동해물과 울릉도가 마르고 닳도록’ 이 영겁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인생 100년 정도로는 겨우 낙석 몇 조각 굴러 내린 변화만 알아차릴까 말까.
산책로는 도동항 여객선터미널에서 저동항 촛대암까지 2.6km 정도지만 저동항 방면은 길이 막혔다. 낙석이 쏟아져 다리를 휩쓸어버린 것이다. 바위는 인간의 접근을 적대시하는 게 분명하다. 한때 명물이던 57m의 소라계단은 인적이 끊어져 녹슬어 가지만 살구남 뒤편 언덕에서 바라보는 절벽과 바다의 극적인 대치는 실로 경탄스럽다. 그 틈바구니에서 인간은 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다.

 

 

 

독도 방문
진정한 땅끝의 위용과 감동  

 

독도는 멀다. 울릉도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30분, 그 깊고 푸른 망망대해 한가운데 돌연 날카로운 암봉이 솟구쳐 바다를 가르고 하늘을 꿰뚫는다. 독도는 거대한 산의 꼭대기 부분이 물 위로 드러난 것이다. 해저를 기준으로 하면 높이가 2500m나 되어 백두산과 맞먹는 거봉이다. 사방으로 수평선만 보이는 먼 바다 한가운데 외로운 섬. 갈매기도 이 섬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동도 부두에 가득한 인파 뒤로 서도가 거인처럼 웅장하게 솟았다

 

tip

울릉도 사동항에서 독도행 배편은 하루 2~3편 있다. 편도 1시간30분 소요. 왕복 5~6만원. 배가 출항해도 독도 근해에 파도가 높으면 접안하지 않고 섬을 한바퀴 돌고 돌아오는 수도 있다. 접안해도 20분 정도 머문다.

 

생각과 편견 없이 망연한 심정으로 독도를 보고 싶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구호도 애써 외면했다. 당연히 우리 땅인데. 땅 주인 운운 하는 것은 인간들끼리의 문제일 뿐이다. 자타를 철저히 구분짓는 인간의 망상을 한꺼풀 벗겨내면 지구 차원에서, 생명 차원에서 땅과 바다에 경계선이 있을 리 만무다. 그렇게 무로 돌아가 이 멀고 작은 섬을 만나고 싶었다.
독도는 지형적으로도 지질적으로도 기적 같은 존재다. 울릉도와 비슷한 화산섬으로 물 위에 드러난 섬은 분화구 외곽을 이루는 외륜봉의 일부다. 동·서도 두 개의 큰 섬과 87개의 작은 섬과 암초로 이뤄진 독도는 서도의 대한봉이 169m로 가장 높다. 하지만 해수면 아래로 2300m에 달하는 산체가 숨어 있어 바닷물이 다 빠진다면 산 높이는 2500m에 달하는 큰 산이 될 것이다. 동해처럼 깊은 바다 한 가운데 외롭게 솟은 바위섬은 동해 전체를 통틀어도 독도가 유일하다.

 

독도에도 길 이름이 있구나!
동도 정상에 자리한 독도경비대까지 화물용 간이 케이블카가 가설되어 있다
얼마나 맑고 깊은지! 갈매기가 희롱하는 수면 아래로 심연의 공포가 어른거린다

 

 

간다고 언제나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묵호에서 울릉도 올 때는 거친 파도에 극심한 멀미를 겪어 독도행 배에 오를 때도 걱정이 됐다. 다행히 파도가 잔잔해 씨플라워호는 1시간30분만에 독도 앞에 닿았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파도는 망망대해 중에 고군분투하는 이 작은 바위섬을 그냥 두지 않겠다는 듯 옹골차게 모여들었다. 배는 심하게 흔들렸지만 정박에 성공했다. 섬 주변에 파도가 높을 경우 여기까지 왔다가도 접안하지 못하고 섬을 한 바퀴 돌고는 그냥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운이 좋았다.
영상과 사진으로 워낙 눈에 익어서일까. 배에서 내리자마다 독도와 주변 지형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런데 작은 섬이라고 해서 정말 작고 아담한 줄 알았는데 직벽으로 169m나 곧추 선 서도(西島)는 기세가 대단하다. 근육질 거한이 떡 버티고 선 듯 위압적이다. 200m 거리를 두고 마주선 동도는 높이가 99m로 조금 낮지만 사방이 절벽인 것은 마찬가지다.
허공에 드리운 칼날처럼 날카롭고 위용이 넘치는 서도, 너무나도 맑은 물과 공기, 수많은 갈매기 떼가 독도의 강렬한 첫인상이다. 작은 부두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소란스럽다. 한쪽에서는 어린이까지 집회를 열어 반일 구호를 외치고, 작은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여는 법석도 펼쳐졌다. 애국심이라기보다 분노와 흥분, 객기로 사람들은 독도에서 차분해지지 않는다. 허여된 시간은 겨우 20분. 그것도 동도의 접안부두 일원에서만 머물러야 한다.
울릉도까지는 직선거리 90km. 웬만큼 깨끗한 날이 아니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거리다. 울릉도 자체가 내륙에서 130km나 떨어져 있어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중으로 머나먼 섬. 길이 400~500m 남짓한 이 작은 돌섬 덕분에 나는 여기 망망대해까지 올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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