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도 영산포의 대기에는 시큼한 홍어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 되고 사연 많은 이 강변 포구를 샅샅이 돌아보고픈 충동이 일지만 막연히 다음 기회로 미루고 길을 나선다.
영산포에서 목포까지는 1980년대 초까지 고깃배가 드나들던 내륙 항로였다. 그만큼 강폭이 넓고 수심도 깊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국내 2위의 곡창인 나주평야를 종단하며 극심한 곡류(meander)를 이뤄 곳곳에 S자 형태의 물돌이 지형이 분포한다. 물돌이가 한계를 넘어 육지의 허리를 끊으면서 소뿔 모양의 우각호(牛角湖)를 남긴 곳도 있다(나주 죽산리).
이제 인구 밀집지대인 광주와 나주를 벗어나 물줄기 혼자 도도한 영산강의 진경으로 빠져든다.
영산포~죽산보
영산포에서 나주 운산리까지는 강 양안에 자전거길이 나 있다. 하지만 남안 길은 초반에 영산포 서쪽의 가야산(191m)을 지나는 도로 업힐 구간이 있어 반듯한 북안 길을 택한다. 북안 둑길은 구진포나루터까지 시멘트 포장이 낡고 차선도 지워진 상태다.
구진포나루터부터는 새 길이 닦여 도로 갓길이다. 최신 아스팔트 포장의 부드러운 승차감에 페달링이 가볍지만 초반 1.5km는 분리대가 없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것이 그나마 부담을 줄여준다.
조선 중기의 풍운아 임제의 백호문학관 앞에서 자전거길은 완전히 분리되어 자유와 안전을 누린다. 이곳 출신의 백호는 황진이 무덤을 지나며 읊은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난다(중략)”로 기억에 남아 있다. 황진이를 애도하던 그도 고작 39세에 타계해 저 뒤편 산자락에 묻혀 있다. 그를 기억하는 나 역시 오래지 않아 누군가의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새로 낸 강변로는 광야를 누비고, 바둑판 들판은 가없이 펼쳐진다. 문평천을 만났으나 새 길의 다리에는 자전거길이 연결되지 않아 600m 상류를 거슬러 농로 교량을 건너야 한다. 다른 지역이라면 지름길 다리를 놓거나 도로 교량을 어떻게든 활용했을 것이다.
자전거 체인 형태의 죽산보를 건넌다. 물길을 막은 보는 184m 밖에 되지 않으나 교량을 포함하면 622m다. 보 위의 길은 자전거가 교행하기에 조금 좁은 편이다.
승촌보가 전국의 16개 보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 활성화됐다면 죽산보는 가장 조용한 곳 중 하나일 것이다. 도시권에서 멀리 있고 특별한 경관도 없어 주위는 적막강산이다. 광대한 갈대밭과 국내에서 보기 드문 우각호를 끼고 있지만 딱히 안내가 없어 관심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것이다.
죽산보 인증센터는 문은 없으나 만년도장을 갖추었고 내부도 깨끗하다.
죽산보~느러지전망대
죽산보 남안에서 다야선착장~나주영상테마파크를 거쳐 금강정까지는 영산강 전체에서 경관이 가장 빼어나다. 낮은 야산이 올망졸망하고, 길가로는 절벽이 우뚝하면서 강과 둔치는 질펀하니 지형의 입체감과 박력이 실감난다. 시야에는 마을 하나 들어오지 않아 황포돛배라도 다닌다면 100년 전 풍경으로 돌아간 듯 싶을 것이다. 영산강변 정자 중에서 무안 식영정과 더불어 가장 운치 있는 석관정은 강 건너 언덕에 외롭고, 이편에는 금강정이 마주보고 있다. 하지만 금강정은 숲에 가린데다 관리가 되지 않아 폐가처럼 방치되어 있다.
금강정을 지나면 신곡리의 장대한 둑길이다. 시멘트 노면은 오래되어 거칠고 차선도 지워졌지만 너른 벌판과 아늑한 마을에는 풍요와 여유가 감돈다. 자전거길은 잘 관리하지 않는 것 같은데 쉼터에 매달린 쓰레기봉투를 보면 누군가가 챙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망해산(148m)을 돌아가는 데크로는 또 한 번 절경이다. 강 건너 뾰족한 첨봉(속금산)이 느릿한 풍경 속에 작은 긴장감을 주듯 우뚝하다.
동강교에서 다시 기나긴 둑길이다. 새카만 아스팔트와 선명한 차선, S자형 난간은 최근에 보수한 모습이다. 5km가 넘는 둑길은 너무 길어서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풍경의 변화가 적고 거리도 쉬이 줄지 않아 괜스레 마음이 급해지거나 지루함에 빠져들기 쉽다. 없을 때는 이런 길을 고대하다가, 막상 안락과 사치를 누리게 되면 금방 질려버리니 여행도 삶도 변화무쌍이 바람직한 자극일까.
평야지대에서 물줄기가 한동안 완만하게 흘렀다면 곧 지독한 물돌이가 닥치기 마련. 이제 영산강 최고의 물돌이인 ‘느러지’가 지척이다. 느러지(늘어지)는 물돌이의 방언으로 물길이 휘돌면서 길게 늘어진다는 뜻이다(물돌이 속 마을 이름이기도 함). 산중에 느러지를 잘 볼 수 있는 전망대와 인증센터가 있어 어차피 산을 올라야 한다. 강변을 따라 산을 오르는 새 길이 나 있다. 여름에는 수국이 활짝 피는 꽃길이다. 고도를 높일수록 느러지 지형이 조금씩 드러난다.
별로 닮지 않았건만 이런 지형에는 꼭 ‘한반도 지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15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조망이 트이기는 하나 ‘조금만 더 높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든다. 그래도 이런 산중에 전망대와 인증센터를 조성한 정성과 발상은 고마울 따름이다. 나주 출신으로 1488년 제주에서 귀향하다 풍랑을 만나 중국에 표류해 6개월만에 돌아온 최부의 <표해록(漂海錄)>을 소개한 비석도 반갑다.
인증센터는 후줄근하지만 스탬프를 플라스틱 박스에 수납한 것이 돋보인다.
느러지전망대~영산강하구둑
느러지전망대 아래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동쪽(왼쪽)은 도로를 따라 가고, 남쪽(직진)은 능선을 따라 옥정리 방면으로 하산한다. 700m 내려간 지점에 다시 삼거리가 나오는데 직진하면 몽탄대교로 곧장 이어지고, 오른쪽은 옥정리 반도 지형을 돌아가게 된다. 갈림길 안내판이 분명하지 않고 오른쪽 길은 비포장에 급한 내리막이라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물돌이를 따라가는 강변길이 매우 아름다워 이 길을 놓치면 안 된다. 비포장 구간은 250m 정도지만 로드와 초보자를 위해 포장을 하는 것이 좋겠다.
물돌이에 감싸인 ‘한반도지형’을 마주보는 데크로는 산과 물에 막혀 아예 인적이 없고 강물은 호수처럼 잔잔하다. 때마침 쪽배 한척이 그물을 올리고 있어 서정풍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고기잡이 부부는 고된 노동에 호흡이 가쁘고 추위에 하얀 입김을 담배연기처럼 내뱉고 있다. 전원은 원경일 때 그림일 수 있지만 근경은 노동과 일상일 뿐이다.
데크로를 벗어나면 물줄기 따라 크게 만곡하는 둑길이다. 행인이 드문 듯 길과 이정표 모두 낡았다.
‘꿈의 여울’ 위로 몽탄대교(680m)가 장대하다. 여울 탄(灘) 자가 붙은 걸 보면 예전에는 물살이 거셌나 보다. 실제로도 명산리와 옥룡산 사이는 병목이어서 ‘베르누이 효과’로 인해 물결이 빨라진다. 지금은 하구둑으로 물이 불어 그 효과가 덜할 뿐이다. 몽탄대교는 갓길이 분리되지 않고 난간이 약간 낮아 불안감이 든다.
몽탄대교를 건너면 무안이다. 이제 영산강 전체에서 가장 긴 둑길과 가장 넓은 들판을 지나게 된다. 그런데 영산강대교부터 둑길 따라 새 도로가 공사중이라 자전거 출입을 막고 있다. 공사구간은 7km를 넘어서 들판 가운데 농로를 따라 우회로를 안내하고 있다. 공사안내판에는 22년 6월까지라고 되어있으나 실제는 23년 12월 완공 예정이다.
몽탄대교부터 둑길만 장장 13km나 되어 광야와 도도한 물길의 조화를 볼 수 있지만 한편 지루하고 심리적·육체적으로 지치는 구간이기도 하다. 농로를 따라가는 우회로는 노면이 나쁘지만 농번기가 아니라면 평화로운 들판의 적막감을 맛볼 수 있어 나쁘지 않다. 마침 한 노인이 논두렁을 태우고 있어 잠시나마 몸을 녹이며 따뜻한 정겨움에 빠져들었다.
우회로를 돌아 복룡리에서 다시 강변으로 나서면 영산강은 폭 900m로 넓어져 본격적인 하류의 면모를 보여준다. 강물 가운데 작은 섬에는 80년대까지 불을 밝힌 등대가 여전히 서 있다(관광용으로 등대 불을 다시 밝힌다고 한다). 물줄기 저편 들판 끝에는 영암 월출산(809m)이 톱날 같은 능선으로 하늘을 켜고 있다.
둑길 끝에 있는 초미니 소댕이나루는 10년 전보다 배가 줄었어도 여전히 선착장으로 남아 있다. 이제 목포에 이르기 전 마지막 산협구간으로 들어서면서 강폭은 600m로 줄어든다.
저 앞으로 수면 높이 지나는 새 교량은 경전선 철교다. 목포 임성리역~보성역 간 경전선 전철은 올해 중 개통 예정이다.
주룡나루에서는 절벽에 막혀 청호리 내륙으로 우회해야 하는데 강변 데크로가 공사중이다. 개통되면 영산강길에서 가장 멋진 구간 중 하나가 될 것이다(22년 4월 완공 예정).
청호리 내륙 우회로를 거쳐 다시 강둑으로 올라서면 맞은편이 가물거릴 정도로 넓은 영산호가 펼쳐진다. 영산강 제1경이라는 영산강이야기나루는 삼면이 광활한 호수에 에워싸인 반도의 최남단이다. 호수를 물들이는 일출과 일몰 모두 아름답다.
영산강이야기나루를 지나면 멀리 남악신도시와 목포시가지가 아른거리고 대불공단도 멀지 않다. 남악신도시 옆에는 오룡신도시가 들어서고 있다. 남악신도시의 절반 이상과 오룡신도시는 무안에 속하지만 사실상 목포의 확장이다. 남악신도시와 오룡신도시를 가르는 남창천을 따라 남창대교를 건너 우회하던 길은 하류의 남창1교가 개통되면 1km 이상 단축된다.
남악수변공원과 단독주택지대가 기품 있게 잘 어울린다. 하지만 보도가 따로 없는 자전거길에 보행자가 많아 서로 불편하다.
영산강하구둑 인증센터는 하구둑 400m 전에 매점과 카페를 겸한 목포시 자전거터미널 앞에 있다. 중요한 포인트임에도 스탬프는 재래식이고 잉크는 뚜껑이 없다. 종주길은 여기서 끝나지만 연상강이 바다와 만나는 최후의 하구는 유달산 아래까지 7km를 더 가야한다. ‘목포의 눈물’ 삼학도는 유달산 가는 길목 어디쯤에 있다.
<평점>
항 목 |
평 점 |
특 이 사 항 |
노면상태 |
7 |
노후한 곳이 많으나 새로 단장된 곳도 적지 않음 |
안전시설 |
7 |
차선과 이정표가 지워진 곳이 많음 |
화장실, 쉼터 |
8 |
적절히 배치되어 있고 깨끗한 편 |
인증센터 |
7 |
죽산보는 청결, 느러지전망대와 하구둑은 부실 |
문화시설 |
7 |
백호문학관, 죽산보, 목포 자전거터미널 |
숙박시설 |
6 |
영산포, 목포 |
식당, 매점 |
6 |
영산포, 몽탄대교, 목포 |
지선 노선 |
7 |
영산강하구둑, 목포시내, 함평천 |
연계 관광 |
7 |
죽산보, 나주영상테마파크, 느러지전망대 |
경관 |
7 |
다야선착장, 가송리데크로, 느러지전망대, 구정리~청호리 |
총 점 |
69 |
경관은 아름답지만 도로와 시설은 노후한 곳 많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