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탐사투어-태안 해변길

태안 해변길
즐비한 해변, 그윽한 숲길 그리고 놀라운 전망대
‘태안 해변길’은 태안에서 가장 각광받는 트레킹 코스다. 굽이굽이 펼쳐진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북쪽의 학암포에서 남쪽 영목항까지 7코스 100km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도로와 농로, 산길 등을 활용해 대부분 라이딩이 가능하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2코스(소원길)를 중심으로 1코스(바라길) 일부를 포함하는 구간이다. 즐비한 백사장과 해변의 숲길, 놀라운 조망의 전망대 등등 태안 해변길의 압권이다  

 

|  태안 해변길  |
1코스(바라길) : 학암포~신두리해변(12km)
2코스(소원길) : 신두리~만리포(22km)
3코스(파도길) : 만리포~파도리(9km)
4코스(솔모래길) : 몽산포~드르니항(12.1km)
5코스(노을길) : 백사장항~꽃지해변(11.8km)
6코스(샛별길) : 꽃지해변~항포항(11.3km)
7코스(바람길) : 황포항~영목항(15.2km)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태안 해변길은 2코스(소원길)와 3코스(파도길)가 있는데, 이번 라이딩 코스는 2코스 소원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소원면에는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일리포’로 지칭되는 아름다운 해변이 늘어서 있다. 이름의  만리, 천리, 백리는 과장법이고 실제는 소규모의 해변이며 크기 순으로 익살스런 지명을 붙였다.  
줄줄이 늘어선 다양한 해변을 달려 소원반도 북쪽 끝 태재전망대까지는 기암의 해안절경과 수목이 우거진 임도를 달리는 아름다운 알짜배기 코스다.  

만리포해변에서 출발 
출발과 도착은 만리포해변 공영주차장이다. 이른 아침에 자전거 친구들 10명이 모였다. 사실은 전날 굴업도에 가기로 했다가 풍랑으로 결항되어 어쩔 수 없이 이곳 태안으로 코스로 변경하게 되었다. 반가운 얼굴로 마주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인근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한다. 
만리포해수욕장은 태안반도의 거의 서쪽 끝에 위치하며, 백사장 길이는 약 2㎞로 대천해수욕장·변산해수욕장과 더불어 서해안의 3대 해수욕장의 하나로 손꼽힌다. 북쪽으로 바로 이어져 있는 천리포해수욕장과 함께 태안해안국립공원의 명소를 이룬다. 
한때 이곳 태안해안국립공원은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해 큰 아픔을 겪었던 현장이다. 2007년 12월 만리포 북서방 약 10㎞ 해상에서 크레인과 유조선이 충돌해 다량의 원유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만리포해수욕장은 최대 피해를 입어 유출된 원유가 바다를 검게 뒤덮었다. 
해상에서는 방제선의 유화제 유포작업이 진행되었고, 해안에서는 가장 많은 자원봉사자가 투입되어 모래와 바위에 묻은 기름을 일일이 손으로  제거했다. 오염 규모는 엄청났지만 전국에서 모여든 123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오래지 않아 아름답고 깨끗한 해변으로 거듭났다.

‘만리포 사랑’의 무대 
백사장 입구에는 ‘만리포 사랑’ 노래비가 있다. 김교성 작곡, 반야월 작사의 박경원 노래로 1958년에 발표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 지금은 평범한 해변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만리포해변은 오래 전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모양이다. 5리밖에 안 되는 해변에 ‘만리’라는 이름을 붙인 터무니없는 과장도 유쾌하게 느껴진다. 
노래비 옆에는 일출과 일몰 때의 태양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낮에는 분수가 되어 물줄기를 내뿜고, 야간에는 다양한 색상의 조명으로 바뀌어 인기 있는 포토존이다. 노래비와 더불어 만리포의 랜드마크가 된 듯하다. 
만리포해변을 중심으로 많은 카페와 음식점, 숙박업소들이 성업 중이고, 인근에는 천리포해변과 천리포수목원이 있어 가족 나들이로 제격이다.  
만리포해변에서 나와 천리포수목원을 지나면 바로 천리포해변이다. 천리포 북쪽으로 2km 임도를 지나면 백리포해변, 십리포해변, 일리포해변이 차례로 나온다. 산줄기가 바다로 돌출한 작은 반도들 사이에는 어김없이 백사장이 있어서 마치 다채로운 경관의 해변 전시장 같다.  
일몰 때의 천리포해변은 매우 아름다워 연중 많은 이들이 찾는다고 한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관과 맑은 바다, 고운 모래가 일품인 백리포해변은 한적한 곳을 찾는 사람들만을 위한 은밀한 요새처럼 숲과 숲 사이에 조용히 펼쳐져 있다. 병풍처럼 펼쳐진 주변의 소나무숲은 최적의 캠핑 장소로 알려져 있다.

 

반도 북단에는 태배전망대 
의항해변에서 소원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태배전망대로 가는 숲길은 참으로 정겹다. 그리 험하지도 않고 아기자기한 능선의 흙길은 그윽한 커피향 같은 편안함이 있다. 이 구간은 2007년 사상 최악의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 극복과정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걸었던 길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태배길’로 이름붙여진 6개의 코스가 있다. 
태배길은 6.4km의 길이에 순례길, 고난길, 복구길, 조화길, 상생길, 희망길 등 유류피해 극복의지를 담은 코스로 길 따라 전통독살, 유류피해전시관, 구름포해변, 의항포구 등 다양한 관광자원이 있다.  
‘테배’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이태백이 여기 왔다가 빼어난 자연경관에 빠져 머물렀다는데서 붙여진 지명이란다. 이태백이 중국 전역을 유랑한 것은 맞지만 한반도(당시는 통일신라)로 건너온 기록이나 자취는 없어서 ‘태배’와 비슷한 지명에 착안한 ‘만리포’ 형태의 과장법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가 2010년 전국의 아름다운 해안경관 17곳을 선정해 ‘해안경관 조망공간’ 장소로 조성했다.
구름포해변 갈림길 입구에서 태배전망대 가는 방향으로 조금 오르다 보면 이태백 동상과 그를 소재 삼은 5언시 시비가 세워져 있다. 안내판에는 이태백이 쓴 시라고 되어 있으나, 내용으로 보나 기법으로 보나 조선의 무명 선비가 쓴 것 같다.  
  
先生何日去(선생은 어느날에 다녀 갔는지)
後輩探景還(후학이 절경을 찾아 돌아오니)
三月鵑花笑(삼월의 진달래 꽃 활짝 웃고)
春風滿雲山(춘풍은 운산에 가득하도다) 

유류사고 극복의 현장 
태배전망대는 광활한 서해바다와 칠뱅이섬(일곱개의 섬) 등 아기자기한 섬들, 불같이 타오르듯 황홀한 낙조의 모습이 펼쳐질 것만 같은 곳이다. 유류피해 사고 이전에는 폐기된 군막사였지만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보답하고자 리모델링하여 전망대로 조성한 것이라 한다. 
1층 내부에는 2007년 유류사고 당시 피해극복을 위해 바위의 기름을 닦는 자원봉사자의 모습 등 극복과정을 담은 생생한 사진이 전시돼 있어 당시의 아픔과 치유의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감과 역사의 장으로, 2층은 전망대로 꾸며져 있다. 현재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내부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상태다. 
2층 전망대에 올라서면 멀리 신두리해변과 신두리사구가 보이고, 아주 멀리 북쪽으로는 칠뱅이섬이라 불리는 7개의 섬이 줄지은 열도를 조망할 수 있다. 섬들의 이름도 특이하다. 새뱅이·수리뱅이·돌뱅이·대뱅이·거먹뱅이·굴뚝뱅이·질마뱅이 등이다. 

 

국사봉 전망대의 놀라운 조망  
태배전망대에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오면 안태배해변과 신너루해변으로 이어진다. 신너루해변 끝자락에는 특이한 구조물이 나타나는데, 주민에게 물어보니 마을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이라고 한다. 개목항에서 방조제길과 산길을 거치면 방근제라는 제방이 나온다. 제방에는 약 800m의 황토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길을 계속 가면 태안해변길 2코스 소원길이 신두리해변까지 이어진다. 
2코스 소원길은 만리포해변과 신두리해변을 잇는 22km 구간이지만, 우리는 신두리해변 방향이 아닌 국사봉 전망대로 향한다. 
의항3리 다목적회관에서 천리포 방향으로 들어서면 좌측으로 국사봉(160m) 가는 능선에 이르게 되는데, 약 900m를 오르면 국사봉 전망대가 나온다. 능선 길에 오르자 바다와 하늘이 언뜻언뜻 나무 사이로 보인다. 경사도 별로 심하지 않고 솔 내음 잔잔하게 퍼지는 상쾌한 숲길이다. 
국사봉 전망대에 오르면 발아래 천리포수목원을 비롯한 천리포 일대가 펼쳐진다. 천리포 포구와 포구 앞의 닭섬, 방파제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 왼편으로는 반달모양으로 휜 만리포의 금빛 백사장과 송림이 숲에 가려 반쯤 드러난다. 오른쪽 천리포와 왼쪽 만리포, 그리고 이 두 포구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숲이 천리포수목원이다. 
뒤를 돌아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산 아래로 작은 만(灣) 형태의 바다와 그 바다를 메워 조성한 저수지와 논이 이룬 멋진 경치가 기다린다. 골에 갇힌 바다 건너로 아름다운 금빛해변이 보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신두리 사구해변이다.
국사봉 전망대에서 만리포해변으로 이어지는 싱글길은 아주 부드럽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만리포로 내려가는 내내 숲 그늘이다. 국사봉은 소원길 최고의 뷰포인트이니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태안 해변길은 바다와 함께하는 해안과 숲속을 걷거나 달릴 수 있는 코스다. 혼자도 좋고 친구가 있어도 즐겁다. 바다를 배경으로 숲길을 걷는 흔치 않은 경험은 오랫동안 선명한 추억의 풍경으로 남는다. ‘소원길’은 태안 해변길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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