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바다 같기도, 호수 같기도, 육지 같기도한 천수만

기사승인 2019.10.29  15:23:49

공유
default_news_ad2

- 천수만(淺水灣)은 발음은 거창하지만 ‘얕은 물’이라는 뜻은 가냘프고 소박하다

천수만
바다 같기도, 호수 같기도,  육지 같기도

천수만(淺水灣)은 발음은 거창하지만 ‘얕은 물’이라는 뜻은 가냘프고 소박하다. 바다에게 얕은 물은 가장 경멸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바다가 반쯤 포기한 이 얕은 내만은 인간에게는 도전의 기회다. 거대한 간척사업으로 상당 부분이 땅으로 변모했고, 막힌 바다는 호수가 되어 전국의 철새를 불러 모은다. 바다와 호수와 평야가 광대한 스케일로 어우러지는 곳, 이 땅에서 극히 보기 드문 현장이다

갯벌 저 멀리 두 무인도 사이에 물에 뜨는 부상탑이 서 있는 안면암의 조망. 뒤편으로 천수만이 잔잔하다

 

천수만(淺水灣)은 ‘얕은 물’이라는 이름에서부터 모호한 정체성과 격변의 운명을 타고 났다. 원래는 삼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만(灣)으로 육지와 바다의 접점은 광활한 갯벌이 하루에 두 번씩이나 바다였다가 땅이기를 반복하는 혼신의 변신을 거듭한다. 서해안의 기이한 점이지대를 이룬 갯벌은 바다인지 육지인지 소속을 묻기가 난감하다. 간만에 따라 해수면의 높이차가 6~8m나 오가니 육지는 갯벌을 물속으로 내주고, 바다는 간혹 물을 거둬들여 서로 적절한 타협을 이뤄낼 뿐이다.

자연은 절묘한 타협점으로 균형을 유지하지만 인간은 갯벌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기 마련이다. 천수만처럼 육지에 갇힌 얕은 바다라면 땅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시야에는 ‘언젠가는 흙으로 메워 육지로 만들어야지’ 하는 욕망을 부채질할 수밖에 없다.
이제 천수만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 중의적 지명이 되었다. 크게는 태안군 남면과 안면도 안쪽의 바다를 말하지만, ‘철새 도래지’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방조제를 쌓아 담수호로 바뀐 부남호와 간월호 두 곳을 가리킨다. 

한 야심가가 이뤄낸 전설 
천수만에 가면 바다를 막은 방조제길을 지나지 않을 수 없으니 부남호와 간월호는 꼭 보게 된다. 호수인지 바다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광활한 수면 앞에서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난지 새삼 깨닫는다. 거대한 방조제를 쌓아 바다를 막아 동쪽의 간월호 2647ha, 서쪽의 부남호 1527ha의 담수호 2개를 만들었다. 호수 주변의 갯벌지대는 흙으로 메워 서울의 1/4을 넘는 광대한 농지를 조성했다. 저지대에서는 거의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대평야다.     
이런 대역사에는 한 사람의 꿈과 야망이 서려있다. 금강산 아래 통천의 빈농 출신인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세계최대의 단일농장을 꿈꾸며 1970년대부터 간척사업에 뛰어들었다. 천수만을 보고 천혜의 입지라고 감탄한 정 회장은 1980년부터 방조제 공사를 시작해 1984년 동쪽의 A지구와 서쪽의 B지구 방조제를 완공했다. 이 방조제를 막아서 생긴 것이 간월호, 부남호다. 간월호 물막이 공사 때는 극심한 간만의 차로 작업이 난관에 부딪치자 폐유조선에 물을 채워 파도를 막은, 이른바 ‘정주영 공법’으로 세계적인 뉴스가 되기도 했다.      
간월호와 부남호는 뜻밖에도 부산 을숙도를 제치고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가 되었다. 1987년 완공된 낙동강하구언으로 인해 서식지가 줄어든 철새가 창원 주남저수지와 멀리는 이곳 천수만까지 옮겨온 것이다. 천수만에는 해마다 늦가을~초봄에 걸쳐 300여종 40여만 마리의 철새가 날아들어 장관을 이룬다. 
가난한 농가 출신이라 농지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정주영 회장의 꿈은 여기 천수만에서 완성됐는지도 모른다. 1998년에는 여기서 키운 소 1001마리를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전해주는 세계적인 이벤트도 연출했다. ‘현대 서산농장’으로 불린 간척 농지 대부분은 이후 일반에 불하되고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요컨대 지금의 천수만은 ‘정주영’이란 인물이 없었다면 여전히 교통 불편하고 근근이 조개나 잡는 갯벌지대로 남았을 것이다.

한적한 궁리항 뒤편으로 천수만이 펼쳐지고 바다 건너 안면도가 길게 흐른다
궁리항~남당항 간 해안도로에 있는 속동전망대. 영화 <피끓는 청춘> 촬영지다
남당항은 대하와 새조개 등 풍성한 먹거리로 유명하다. 천수만 쪽으로 뻗어난 방파제
섬이 되었다가 육지가 되었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표변하는 간월암
서산버드랜드 정상에 있는 둥지전망대
둥지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수만 북쪽의 광활한 간척지

 

천수만 가로질러 안면도로
천수만은 생기가 가득한 초록의 대지로 반겨준다. 겨울에는 철새가 하늘을 수놓으니 천수만은 연중 생명이 약동하는 활기의 공간이다.
천수만 여정은 대개는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에서 나와 간월호로 진입하면서 시작한다. 겨울이라면 철새가 우선이겠지만 여름에는 아무래도 바다가 먼저 부른다.
A지구 방조제에 들어서기 전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천수만의 동쪽 해변이 보령까지 길게 이어진다. 천수만의 명소는 북쪽과 서쪽에 주로 모여 있어 동쪽 해안은 7km 정도 내려간 남당항 정도에서 돌아 나오는 것이 적당하다. 소박한 궁리항에서 다소 번잡한 남당항까지 해안도로는 잔잔한 미감을 준다. 천수만의 폭은 겨우 8km 정도인데 맑은 날에도 맞은편 안면도의 산야가 아득하다. 바다의 간극은 역시 시각적으로 단절을 과장한다.
대하와 새조개로 유명한 남당항은 경관이나 분위기가 아니라 오직 입맛을 위해 찾고 또 그래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식도락의 광장이다.
남당항을 돌아 나와 A지구 방조제를 건너면 간월도가 외롭다. 육지가 된지 3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섬을 이름에 달고 있는 이 작은 언덕은 밀물이면 섬이었다가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되는 간월암이 있어 천수만 여정에서 감초 같은 곳이다. 간월암 자체가 천수만의 운명과 특징을 축소로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이 아니라 대자연의 주재로 이뤄지는 이 단절과 연계의 무한반복은 일종의 권력이 되어 인간을 불러 모으고 줄을 세운다. 물때를 맞추지 않고 아무 때나 갔다가는 간월암을 그림의 떡으로만 보고 올 수밖에 없다. 
B지구 방조제 가는 길목에는 서산버드랜드가 기다린다. 내용은 철새박물관인데 이름은 놀이공원이다. 아이들이 있다면 체험공간으로 의미가 있고, 정상의 둥지전망대 때문에라도 들러야 한다. 30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좌우로 간월호와 부남호, 그리고 광막한 평야가 끝간 데 없이 펼쳐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바다와 호수, 들판과 산, 섬과 육지 등등 지구상 풍경의 온갖 대비가 발아래에 모여 있다. 


몽환의 백사장, 물 위의 탑 
천수만을 이루는 또 하나의 축은 안면도다. 안면도가 진짜 섬이라면 지리적으로 볼 때 천수만은 방조제 이북만 해당되고 안면도와 홍성 사이는 섬과 육지 사이의 좁은 바다이니 해협으로 불러야 맞다. 안면도는 원래 육지였다가 1638년 세곡선 운반을 위해 운하를 뚫느라 억지로 섬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 1970년 연륙교가 놓이면서 다시 육지화되었으니 기구한 운명이다.
원래는 부남호 북쪽의 태안반도 중심에 굴포운하를 뚫으려다 실패해 안면도 운하로 대체했다. 태안반도 서쪽을 돌아가는 뱃길이 워낙 험하고 멀어서였다.
25km의 좁고 긴 안면도는 전체가 자연공원이다. 안면도 토종의 붉은 소나무가 그윽한 운치를 더하고 서쪽 해안에는 무려 14개의 해변이 늘어서 있다. 길가와 바닷가에는 예쁜 펜션과 세련된 전원주택이 격조를 더해준다.
안면도로 넘어가기 전에 몽산포를 봐야 한다. 이 특별한 해변은 백사장이 근 8km나 되고 썰물 때는 폭이 500~600m에 달해 단연 국내최대 해변이다. 백사장이 워낙 길어서 북에서부터 몽산포, 달산포, 청포대 세 해수욕장으로 구분되나 통칭 몽산포다. 백사장 뒤에는 송림이 우거지고 거대한 활처럼 휘어진 해변은 황해의 잔 파도가 끝없이 희롱한다.  
청포대 일대는 전통 판소리극에서 유래한 우화소설 <별주부전>의 배경이 되는 지명이 모두 있어 ‘별주부마을’로 불린다. 거북의 꾐에 빠져 용궁으로 따라간 토끼가 간을 두고 왔다며 속여서 나온 그 이야기다. 바닷가 암초에는 거북 등에 올라탄 토끼의 동상까지 세워져 있으니 저 앞바다 어딘가에 용궁이 있을 것만 같다. 별주부전망대에 오르면 몽산포 전체 해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제 안면대교를 지나 안면도로 진입한다. 천수만을 면한 안면도 동부해안에서 단연 특별한 곳은 안면암이다. 조계종 산하지만 건물과 불탑의 형태는 어딘가 어수룩하고 해학스러워서 중국이나 동남아 사찰의 느낌이 난다. 1998년 창건되었으니 고졸미가 있을 리 없고, 시멘트 벽에 청기와를 얹은 절집은 미학 무시, 비용 절감의 애절한 노력이 뚝뚝 묻어난다. 불이문도 사천왕문도 없어 주차장을 지나면 바로 경내다. 고찰에 들어서면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그윽하고 차분한 분위기와 세월을 이겨낸 당우의 위엄에 압도되어 옷깃을 여미며 살짝 긴장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시정과 다름없이 그냥 파안대소의 연속이다. 법당에서 흘러나오는 염불 소리는 여인의 막웃음과 아이들의 고함소리와 뒤섞여도 낭랑하다.
어딘가 허술한 절집이지만 법당 2층에 올라 천수만을 바라보는 순간 입이 쩍 벌어진다. 300m 정도 떨어진 두 무인도 사이에 불탑이 서 있고 물에 뜨는 부교가 나 있어 전국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광이 펼쳐진다. 마침 물이 빠져 부교는 내려앉았고 물에 뜨는 부상탑도 착륙해 있지만 밀물이 되면 해수면에 뜬 또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전통사찰의 규격미를 벗어던지고 천수만 전체를 절마당으로 삼은 개방성과 독창성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안면암을 제외하면 안면도의 절경은 대부분 천수만 반대쪽 서해안에 있다. 북단의 백사장 해변에서 남단의 바람아래 해변까지 공식 해수욕장만 14개가 도열해 있으니, 안면도 서안은 전체가 백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려한 꽃지해변에서는 설렘의 축제를 즐긴다면, 무인지경의 바람아래해변에서는 시름을 툭 내려놓기 좋다.
최남단 영목항에 이르면 새로운 역사가 진행중이다. 길이 1.76km의 솔빛대교(가칭, 19년말 개통 예정)가 맞은편 보령 원산도까지 이어져 있고, 2021년에는 원산도~대천항 간 6.9km의 해저터널과도 연계된다. 이제 천수만은 다리와 해저터널로 포위되어 일종의 ‘지중해’가 되기 일보직전이다. 세상의 지중해는 곧 문명의 발상지였으니 앞으로 천수만에서는 어떤 새로운 문명이 탄생할까. 

‘별주부전’의 무대가 된 청포대 앞바다에는 거북과 토끼의 동상이 서 있다. 용궁으로 막 떠나기 전인 듯
길이 8km로 국내최대의 백사장인 몽산포해변
높이 30m의 별주부 전망대에 오르면 몽산포해변과 천수만을 함께 볼 수 있다
최근에 창건되어 깊은 맛은 없지만 자유자재한 개방감과 천수만 조망이 매혹적인 안면암
안면도 남단 영목항과 보령 원산도를 잇는 솔빛대교(가칭)는 19년말 개통 예정으로 마무리공사 중이다
무궁화가 만발한 해미읍성
도비산 해돋이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수만의 간월호와 광야

 

 


김병훈 발행인 soolmeee@naver.com

<저작권자 © 자전거생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영상

1 2 3
item35

포토

1 2 3
set_P1
ad37

SPECIAL

item36

TEST

item37

REVIEW

item38

BRAND

item39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