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 대황야를 달린 호주 깁챌린지
Gibb Challenge in Kimberley
호주의 서북쪽 킴벌리지구상 마지막 남은 아웃백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오직 두 계절만이 존재한다도전과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버킷리스트로 자리하고 있는 킴벌리의 심장 깁리버 로드를 건너기 위해 우기가 끝나는 5월이면 용기있는 챌린저들이 모여든다과거에 가축을 운반하는 길로 이용되던 깁리버 로드는 특히 지구 태초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양한 지형과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의 벽화가 남아있는 곳으로 KBS 남자의 자격에도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여기서 열리는 깁 챌린지’ 참가기를 2회에 나눠 소개한다
글 정이분(KP인터내셔널 매니저)  사진 백승엽(KP인터내셔널 이사)

정이분
호주를 지구 네 바퀴 거리만큼 여행해 온 야생 전문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얻은 깨달음으로 ‘가슴이 떨리는 일이자 함께 잘사는 일’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는 다이나믹한 인생을 살고 있다. 캠핑과 아웃백에 특출나며 커피와 와인 그리고 달리기를 찬양하는 리얼 청춘을 사는 사람.

 

 

5일 동안 700㎞의 깁리버 로드(Gibb River Road)를 달리는 팀 릴레이 자전거대회 깁 챌린지(Gibb Challenge)는 올해로 9회를 맞는다. 700㎞를 각 팀의 멤버들이 릴레이로 완주하는 이 대회는 ‘경쟁’이 아닌 ‘협동’ 그리고 ‘자선기부’를 위한 취지로 시작되었다.
지난해 5월, 이곳에 모인 400명의 사람들은 출생지도, 멤버 구성도, 직업도 모두 다르지만 700㎞를 완주해 백혈병에 걸린 아이들에게 여행의 기회를 주겠다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대회에 참가한 각 팀의 참가비는 매년 호주 곳곳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비영리단체들에게 건네지며 소외층에 대한 관심을 도모하고 자선기부를 위한 도전을 알리며 몸소 선행을 실천하는 행사다.
호주는 한반도의 35배나 되는 면적을 자랑하지만 인구는 겨우 2300만명이다. 남반구에 자리하고 있어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북쪽으로 향할수록 적도와 가까워지며 기온이 높아진다. 

5일간의 도전, 700㎞의 여정
우리의 여행을 책임질 랜드크루저 뒤로 두 대의 자전거 그림자가 언뜻 보였다. 장거리 이동이 긴장되는 건 자전거도 마찬가지였는지 자전거 거치대에서 몇 번이나 탈출 시도를 했지만 매의 눈을 가진 이사님의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특단의 조치로 꼼짝없이 거치대에 묶여버렸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말을 건네는 호주인들은 커다란 자전거를 싣고 와 텐트를 치고 저녁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행선지가 어디지요? 자전거 멋진데!”
“깁리버 로드. 자전거로 횡단하려고 올라가는 길입니다.”
그들은 모두 대답했다. “Crazy people!”
때로는 호주인들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는 우리가 나는 가끔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그리고 현실에선 매번 쓴 웃음을 지었지만 말이다).
긴 여정으로 가는 페달에 첫발을 올리다
 Day1   5월 17일 6:00am 출발
Derby ~ Imitji Community

 

 

바오밥으로 유명한 도시 더비. 스피니펙스라는 사막식물의 이름을 딴 호텔에 모인 인원은 자그마치 400명이다. 약 60명의 자원봉사자를 포함한 인원으로 결코 적지 않은 숫자였다.
주최측은 두 가지 제안을 했다. 헤드라이트가 있는 사람들은 동이 트기 전인 새벽 5시에 서포트 자동차와 함께 먼저 224㎞의 대장정을 떠날 수 있고 나머지 팀들은 6시에 동시에 출발하는 것! 
224㎞라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달려내기 위해서는 동이 트는 순간부터 달려야했지만 그 누구 하나 짜증을 내거나 먼저 출발하려고 욕심을 부리는 법이 없었다. 아침을 채 챙겨먹지 못한 나는 주최측에서 지난 밤 나눠준 에너지바로 허기를 달래고 출발했다. 엄청난 수의 자전거가 출발선을 떠나자 작은 도시 더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요해졌다. 더비를 떠나 한동안은 포장도로가 이어졌다. 이 정도면 달릴 만하다고 생각하면서 가로수처럼 지천에서 자라고 있는 특이한 모습의 바오밥나무를 구경하는 여유까지 가졌다.

본격적인 여정의 시작… 오프로드의 등장
한참을 달리다보니 온로드가 끝나고 오프로드가 등장했다.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길은 쉽지 않았다. 붉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서포트 차량들이 앞서서 달렸고 하얗게 일어나는 흙먼지 사이로 시야를 확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넘어질 뻔한 위기를 넘기고서야 오프로드 트랙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머리위로 내리쬐는 뙤약볕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다른 라이더들도 어느 순간 신경 쓰이지 않는 어떤 경지에 이르게 되자 나는 오롯이 호흡에만 집중하며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바통을 주고받을 멤버가 오직 이사님뿐인 나와는 달리 다른 팀들은 3~6명 구성으로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지치면 다른 사람이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순서로 진행하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나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모두 적당히 컨디션을 조절하며 라이딩을 주고받았다.
피니시 지점에 들어서자 맷소(Matso)라는 맥주회사 팀이 엄청나게 차가운 맥주를 건넸다. 행복에 겨워 맥주 한 병을 빛의 속도로 해치우고 얼굴을 덮고 있는 붉은 흙먼지를 닦아내려 샤워실을 찾았건만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없었다. 옆 텐트에 묵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샤워실이 없다는 충격적인(?) 대답이다. ‘그래 샤워 하루 못하면 어때… (하지만 내 몸에선 엄청난 땀 냄새가 나고 있었다).’ 화장실은 간이로 만들어진 텐트 형식의 임시용이다. 땅을 파고 비닐을 씌워 놓은 임시 화장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뒤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났지만 적응력이 빠른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런 생활을 해온 사람처럼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저녁 배식을 기다리며 함께 줄을 선 지리학자 아주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화장실도, 샤워실도 없는데 괜찮으세요?”하고 물었더니, 아주머니는 되려 그런 질문을 하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 대답했다. “1년 중에 이런 생활도 고작 며칠뿐인데 그걸 못 참으면 이렇게 오지 않았을거야.”   
나는 인간이 발명해낸 아주 훌륭한 물건 중 하나인 ‘물티슈’로 세신을 대신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첫날부터 많은 것들이 충격과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물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많은 것들을 경험하기도 했고 말이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Day2   5월 18일 8:00am 출발
mitji Community ~ Mt.Elizabeth

아침을 먹으며 짐정리를 하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다가왔다. “헤이~ 팀 코리아! 인터뷰 잠시 해도 괜찮을까요?” 웰컴이라는 대답과 함께 시작된 짧은 인터뷰. 
“왜 깁 챌린지에 참가하게 되었나요?” 사실 이 질문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었지만 선뜻 말을 건네기가 쑥스러워 차마 건네지 못했던 모양이다. 주변에서 아침을 먹거나 짐을 꾸리던 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머물렀다.
“한국에 호주의 캠핑문화와 자전거 그리고 기부문화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서 참가하게 되었어요. 호주의 좋은 문화가 한국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기대하면서요. 물론 대회 주최측과의 친분으로 이번에는 초대손님으로 온 것이기도 하구요. 내년에 있을 10번째 깁 챌린지를 위해 좋은 사진과 영상을 담아내는 것도 하나의 목표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보고 느끼는 깁 챌린지와 호주의 모습이 꽤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 인터뷰를 계기로 우리는 급속히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첫날과는 다르게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주최측은 첫날의 기록과 팀 구성원에 따라 출발 순서를 정했다. 싱글 혹은 2명의 라이더가 있는 팀은 A로 제일 먼저 출발선에 섰다. 한때 심해 깊은 곳이었던 레오포드 산맥을 뒤로하고 선두그룹에서 발맞춰 페달을 밟았지만 이미 베테랑인 그들을 앞지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남과 비교하며 조급하게 가기보다 나만의 페이스에 맞춰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조금 여유롭게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물론 선두로 달리는 라이더를 보호하기 위해 서포트 차량들이 내 앞을 지나면서 일으킨 붉은 흙먼지를 아주 가득 들이 마시게 되었지만 괴로움도 사실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점차 성인이 되어가는 듯 했다.

 

 


깁리버의 전통
마운트바넷 휴게소를 지나자마자 강이 나왔다. 몇 해 전, ‘남자의 자격팀’은 급격히 불어난 물 때문에 이 강을 채 건너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갔는데, 작년도 올해도 꽤나 건조한 날씨 때문에 강은 자전거로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 앞서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적당한 수심의 포인트를 확인하고 페달을 밟은 덕분에 물에 빠지지 않고 강을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강에 편안히 앉아 나름의 목욕을 즐기고 있던 세분의 할아버지는 나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꼬마아가씨, 깁리버의 전통은 이렇게 강을 만나면 목욕을 하는 거라구! 전통을 따라야 하지 않겠어?”
잠시 망설이던 나는 어젯밤 씻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며 할아버지들과 함께 몸을 담그고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들은 많은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물에 젖더라도 금세 마를 것을 알고 있기에. 친구와 함께 라이딩을 하는 이 순간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에 그들은 매 순간을 즐기는 법을 아는 것 같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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