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종원 숲길 지나 춘천 옛관문 석파령으로

 ▶ 이윤기의 탐사투어
춘천 계관산 임도
채종원 숲길 지나 춘천 옛관문 석파령으로

춘천 서쪽 가평군과의 접경에 솟은 계관산에는 특별한 숲길이 있다. 우수한 산림 종자를 얻기 위한 채종원이 자리해 다양한 수종 사이를 누비는 임도가 잘 나 있다. 계관산 주능을 따라 삼악산 방면으로 남하하면 옛날 춘천의 관문이던 석파령에 다다른다. 인적 없고 호젓한 숲길이 매력 넘친다  
글 이윤기 이사

쉰을 넘어도 산에서는 청춘이다. 언제나 함께 하는 절친 3인방

 

 

 

계관산은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춘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높이는 736m이다. 산줄기는 북쪽 몽덕산(695m)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가덕산(858m), 북배산(867m)을 거쳐 계관산으로 이어진다. 계관산에서 뻗어내린 능선은 동남쪽으로는 삼악산, 서남쪽으로는 보납산으로 갈라져 북한강과 만난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능선을 따라 구축된 방화선은 마치 만리장성을 연상하게 하며, 계관산과 삼악산 사이에 그 옛날 한양과 춘천을 연결하던 험준한 석파령(席破嶺)이 있다.

강촌역에서 출발, 의암호반에서 채종원으로
계관산 임도 코스는 춘천시 봄내길 중에서 제3코스인 ‘석파령너미길’이 포함되어 있다. 이 코스는 춘천시 서면 당림리와 덕두원리 사이에 있는 임도로 오래전부터 라이더들에게 ‘당림리 임도’로 알려졌으며, 계관산 임도, 석파령 너미길로도 불린다. 

옛날에 서울에서 춘천 가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지금은 댐 때문에 뱃길이 막혀버렸지만 배를 타고 오가는 경우와 험준한 석파령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경춘국도가 개설되기 전 석파령은 춘천의 관문이었다.
석파령은 삼악산 북서쪽에 위치한 고개로 험하다보니 말을 타고 넘지 못하고 걸어서 넘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임도로 바뀌어 비교적 온전한 길이 되었지만 옛날엔 험난한 등산길이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모든 것이 과거와 비교할 수는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도로만 해도 전국 어디를 가나 거미줄같이 이어지고 경춘국도는 2차선에서 4차선으로, 철길도 복선전철과 고속도로까지 뚫렸으니 말이다. 아무튼 경춘국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춘천을 들고나던 유일한 통로였던, 그리고 옛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길을 찾아가며 마음의 여유를 느껴 보기 위해 석파령으로 향한다.
휴가철이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지속되는 교통체증에는 경춘선 전철을 이용해 강촌역으로 오는 것이 수월하다. 

산림청 산하 채종원이 있는 곳
강촌역에서 친구들과 합류해 마트에서 행동식과 많은 양의 생수를 사서 배낭에 나눠 짊어진다. 은근 걱정이 된다. 한여름의 뙤약볕에 이 많은 양의 물도 부족할 것 같다고 말하니 다들 충분하다고 한다. ‘한번 당해 보라(?)’며, 난 애써 외면했다. 

강촌역을 출발해 강촌교를 건너 우측 내리막길로 진입하면 의암댐 가는 길이다. 46번 국도 교각 밑으로 북한강 물줄기를 따라 개설된 자전거도로는 언제 달려도 상쾌하다. 마주 오는 사람들은 볼 때마다 늘 환한 미소다. 가는 사람이나 오는 사람들 모두 늘 활기에 차 있다. 자전거의 도시, 춘천은 그런 곳이다.
의암댐을 지나 계속 직직하면 덕두원교 삼거리다. 이 지점에서 좌측으로 진입해 덕두원천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덕두원교 삼거리에서 1km 가서 왼쪽 덕원교를 건너면 바로 석파령으로 가는 빠른 길이다. 그러나 임도 코스를 길게 타려면 계속 직진해 ‘채종원’ 방면으로 업힐을 해야 한다.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소관의 채종원은 유전적으로 우수한 나무를 얻기 위해 열등한 유전인자를 배제하고, 보다 우수한 종자를 대량 생산함과 동시에 보다 쉽게 종자를 채취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종자생산 공급원이다. 이곳 덕두원리에 있는 춘천채종원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강릉, 충주, 수원, 안면도, 제주도에 있다. 


 

“제일 못 생긴 사람은?” 마음 맞는 지기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유쾌하다

 

강촌역에서 의암댐으로 이어지는 북한강 자전거길. 옆의 고가도로는 경춘국도

 

덕두원교에서 호반길을 버리고 채종원 방면 계곡길을 따라 오른다

 

 

다양한 수종 사이로 난 임도 
덕두원교에서 계곡의 마을길을 따라 5.8km 달리면, 덕두원 유원지가 있는 마지막 마을이 나온다. 때마침 여름 휴가철이라 시원한 계곡에는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간식도 먹을 겸 더위를 식히기 위해 친구들도 계곡물에 뛰어든다. 
온 몸을 물속에 담그고 장난스레 서로에게 물장난을 치며 희희낙락하는 모습들이 정겹다. 자전거가 인연이 되어 쉰을 넘은 나이에 만난 일행에게 이런 좋은 추억이 또 있을까. 여름 라이딩에서 계곡 물놀이는 누구에게나 달콤한 유혹과 추억이 된다. 

덕두원2리 버스종점 삼거리에서 좌측 길로 들어서면 채종원 임도가 시작된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힘든 업힐이다. 가파르고 구불거리는 길을 돌고 돌아 오르는 주변에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함께한 친구들과의 오고가는 대화와 잦은 휴식으로 힘든 것을 잊는다.
계관산 동쪽 사면 해발 300~640m의 경사면에 여러 종류의 수종들이 식재되어 있다. 채종원의 수종은 잣나무, 낙엽송, 전나무, 참나무, 오리나무 등의 활엽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밖에도 느티나무와 굴참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가 조성되어 있다. 

간혹 일본과 우리나라의 숲을 비교해 보곤 한다. 일본은 어느 지역을 여행하더라도 잘 가꿔지고 풍요로운 숲을 보고 감탄할 때가 많다. 우리보다 땅이 넓은 이유도 있겠으나, 자연을 아끼고 가꾸는 정신만은 높이 살만하다.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높을 뿐 아니라 땅이 좁아 산림을 훼손하면서까지 건물을 짓는다. 숲은 생명이 숨 쉬는 삶의 터전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기름진 흙은 숲에서 얻어지고, 온 생명의 활력도 건강하고 다양한 숲에서 비롯된다. 콘크리트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숲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채종원에서 석파령까지 기나긴 구불길 
채종원 임도에서 본 숲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매우 계획적이고 인공적인 조림지 풍광이다. 워낙 유전적으로 우수한 나무들로 숲을 가꿔 우수한 종자를 대량으로 생산, 채취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관리도 엄격해서 산불방지 기간에는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조성된 지 25년이 지난 잣나무숲은 우수한 종자를 낮은 곳에서 채취하기 위해 일부러 줄기를 잘라내는 작업을 해서 대부분 키가 작은 편이다. 

굽이굽이 길을 돌아 오르면 채종원 현황판이 서 있는 넓은 전망대가 나타난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덕두원리로 이어지는 S자 구비길과 멋진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으로 채종원 조림지를 잘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조금 더 힘든 업힐을 하면 산림관리원 막사가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 다래넝쿨로 둘러싸인 쉼터가 있어 충분한 휴식시간을 갖는다. 이 지점에서 여러 갈래의 코스가 있다. 싸리재 고개로 가는길, 북배산 자락의 임도와 방동리 신숭겸장군 묘역으로 가는 길, 그리고 당림리로 가는 길이다.  

삼거리에서 좌측의 오르막길로 진입하면 당림리 방향의 임도다. 이정표에는 ‘석파령 옛길’로 표기되어 있다. 1.7km를 내려가면 능선부에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온다. 여기서 석파령 입구 삼거리까지는 9.8km를 가야 한다. 석파령 입구 삼거리까지는 지루하리만큼 긴 산록구간이다. 주능선을 따라 수많은 계곡이 뻗어 있어 임도는 수없이 구비길을 돌아나가야 하는 지형이다.
드디어 당림리 석파령 입구 삼거리다. 갈림길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석파령 옛길’과 ‘석파령 너미길’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가 달려왔던 채종원 길이 ‘석파령 옛길’이고, 좌측이 ‘석파령 너미길’이다. 삼거리에서 덕두원리 방향으로 1km를 더 가면 그 옛날 한양과 춘천을 오갔던 석파령이다. 춘천의 관문인 이 길은 춘천의 역사와 만나는 길이다. 옛날에는 구비구비 이 고갯길을 넘어 덕두원에서 한 숨 돌린 다음 춘천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한양에서 춘천부사가 부임할 때 석파령 고갯마루에서 이·취임 인사를 했단다. 그런데 언덕배기가 너무 좁아 돗자리 하나를 두 자리로 나눠 앉아 인사를 했다고 해서 석파령(席破嶺)이라 부른다. 신임부사와 전임부사가 좁은 길에서 자리를 잘라 나누어 앉을 만큼 험한 길이었지만, 춘천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을 잊지 못해 전임부사는 아쉬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정말 옛날 얘기 같다.
 춘천의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는 봄내길이다. 봄내길 제3코스인 이 길은 ‘당림초등학교→예현병원→석파령→덕두원→수레너미고개→방동1리마을회관→신숭겸묘역’ 구간이며, 거리는 18.7㎞, 소요시간은 5시간 정도다. 코스에는 임진왜란 당시 옥포해전에서 전공을 세운 한백록 장군의 묘와 정문, 고려충신 장절공 신숭겸의 묘역 등이 있다.

 

잘 자란 잣나무 숲을 뚫고 부드러운 흙길이 구불대며 뻗어난다

 

 

후미에 처진 친구에게 무슨 일이?
석파령 갈림길에서 한참을 쉬고 있어도 후미에 처진 친구는 올 생각을 않는다. 워낙 깊은 산중이다 보니 핸드폰도 잘 안 터진다. 각자 챙겨온 생수는 벌써 바닥이 나서 심한 갈증에 힘들어 할 즈음 뒤처진 친구에게서 전화벨이 울린다. 받아 보지만 감도가 나빠 뭐라고 얘기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결국 한통의 문자를 받아보니, 타이어가 찢어졌다는 소식이다. 이곳은 산림청 관할구역이라 차량출입을 막는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어 차가 들어오지 못한다. 타이어가 찢어진 친구는 어쩔 수 없이 응급처치를 해서 오던가, 아니면 끌고라도 내려와야 한다. 

석파령 입구 갈림길에서 2km만 내려가면 춘천예현병원이다. 갈증에 힘들어 하는 친구를 먼저 내려 보내고, 왔던 길을 되돌아 후미에 처진 친구를 향해 달린다. 가도 가도 끝없는 구비길을 돌면서 큰소리로 외쳐 보아도 대답이 없다. 어디쯤 있는 걸까? 분명 이 친구들도 물이 떨어져 엄청 힘들어 할게 뻔하다.
일단 철수해서 예현병원으로 내려와 먼저 기다리던 친구들과 대책을 논의한다. 119에 전화할까? 산림청에 전화할까?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니어서 뾰족한 대안이 없다.
어쩔수 없는 상황에 친구 하나가 갑자기 물을 준비해서 자전거를 타고 올라간다. 예현병원에서 석파령 삼거리까지는 아주 가파른 길이 2km나 되고, 더 올라가야 하는 힘든 길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찾아 나선 것이다. 모두가 감동이다. 

한참 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내려온 친구는 기진맥진한 상태다. 드디어 상봉을 해서 물을 건넸단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사정없이 물을 단번에 들이켰단다. 친구는 잠시 쉬는가 싶더니 다시 한번 물을 채워 또 오르기 시작한다. 힘들어 하는 친구를 위해 자신의 고통을 무릅쓰고 또 오르다니, 정말 대단한 친구다.
그렇게 예현병원에서 2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두 명의 친구가 내려왔다. 얼굴을 보니 엄청 힘들었음이 역력하다. 뜨거운 햇살이 작렬하는 이날이 올여름 들어 최고의 고온이라는데,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상봉해서 다행이다 싶다.
당림리를 내려와 북한강변을 따라 강촌에 도착해 아주 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무더위에 술 취한 것처럼 모두가 얼굴이 상기되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탈진한 상태로 허겁지겁 춘천의 명물 닭갈비를 맛있게 먹는 모습에서 환한 미소가 감돈다.  

 

성긴 잣나무 숲 사이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오르는 채종원 숲길

 

석파령 입구 삼거리. 석파령 옛길과 석파령 너미길이 교차한다

 

 

단풍철에 다시 가고픈 석파령 
경춘국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춘천을 들고나던 유일한 통로였던 석파령, 외지고 험한 그 길을 등짐을 지고 넘나들던 옛사람들의 고충은 어떠했을까? 한번쯤 옛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찾아가며 마음의 여유를 느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산림청 종자 과수원이라 할 수 있는 채종원은 전형적인 강원도 산악지형에 인적 없는 호젓한 숲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 인상적이다. 

경춘국도가 생기면서 그동안 잊혀졌던 석파령은 웰빙 바람을 타고 다시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험한 고갯길로 유명세를 타 산악자전거와 트레킹 마니아의 발길을 끌고 있다. 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 무렵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어머, 차가워!” 여름 라이딩의 별격은 계곡 입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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