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과 저동 일대 굽어보는 특급 전망대

 ▶  퍼스널모빌리티 울릉도 일주 르포
울릉도를 즐기는 색다른 방법 ② - 뽈뚜리지 등반
도동과 저동 일대 굽어보는 특급 전망대

 

울릉도 해안은 온통 암벽의 장대한 도열이다. 리지 등반(Ridge Climbing)은 암벽등반과 달리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등반 방식을 뜻하며 도동 해변에는 멋진 리지 코스가 있다. 루트를 잘 아는 유경험자와 동행하면 초보자도 도전해볼만하다. 주민들이 ‘뽈뚜리지’라 부르는 이 바위능선에서 바라보는 도동과 저동 일원의 조망은 실로 장관이다   
 

암릉 곳곳에는 조망 포인트가 즐비하다. 멀리 행남등대와 저동항 촛대바위 등이 시야에 잡힌다

 

멀리서 바라본 울릉도는 흡사 중세 시대의 첨탑 높은 성들로 장막을 친 바위 왕국을 연상케 한다. 그 기세가 사뭇 등등해 가까이 다가가 위를 올려다보면 아득함에 현기증마저 인다. 리지 등반(Ridge Climbing)은 수직으로 벽을 오르는 암벽등반과 달리 첨탑의 꼭짓점을 선으로 이어 오르내리는 등반 방식을 뜻한다. 난이도 면에서는 암벽등반에 비해 수월하지만, 쉽게 달려들 대상은 결코 아니다. 리지 등반도 암벽과 마찬가지로 대상지의 성격에 따라 필요한 장비를 갖춰야 한다. 또 루트를 잘 아는 유경험자와 동행해야 안전하게 등반을 마칠 수 있다.
소개하는 리지 등반 코스는 도동여객선터미널 뒤, 현지 주민들이 이른바 ‘뽈뚜리지’라 부르는 곳이다. ‘뽈뚜’는 보리수나무 열매를 가리키는 현지 방언, 뽈뚜리지라는 이름은 보리수나무가 많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10~11월에 열매가 열리는데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 무리 중에 모험심 강한 울릉도 사내아이들은 영글면 단맛이 나는 뽈뚜를 따먹기 위해 이곳을 올랐다.

 

보리수나무 열매가 많이 열려 뽈뚜리지
취재팀이 선택한 들머리 초입은 울릉읍 도동에 위치한 등기소에서 시작되는 산길이다. 해안산책로까지 내려가 시작하는 게 정석이지만 전날 내린 비로 물을 듬뿍 머금었을 관목지대를 연상하자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등기소 뒤 산길을 이용하면 인근 행남등대까지 갈 수 있다. 도중에 방향을 바꾸면 저동항으로도 길이 통한다. 울릉도 주민들은 물론이고, 적잖은 수의 관광객들까지 다니는 일반적인 산책로. 뽈뚜리지는 도동항에 입항하며 오른쪽으로 보이는 암벽 뒤에 위치한다. 도동 시내에서 바라보면 시가지를 호위하듯 곧추선 산의 등날을 타고 넘는 코스다.
길은 초입부터 가파른 계단길로 솟아 턱밑까지 숨이 차오른다. 다행인 건 햇살은 따갑지만 기온이 높지 않아 무더위 걱정은 접어도 됐다. 울릉도의 연평균 기온은 12도 정도다. 육지라면 무더위가 절정일 8월에도 평균 기온이 24도 정도에 머물 정도로 선선한 편이다. 이런 울릉도의 특성을 잘 아는 이들은 한낮 무더위가 기승일 때는 울릉도가 더욱 그리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섬은 또 하나의 그리움 요소를 더하나보다. 한동안 높이를 더하다보면 이내 길은 숲길로 이어지며 언제 그랬냐는 듯 능청을 떤다. 어디선가 염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새끼 염소 두 마리가 후닥닥 풀숲으로 줄행랑을 친다.
초입을 출발한 지 20분가량 지나면 오른편 나무 사이로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시야에 잡히기 시작한다. 농업용 모노레일이 깔린 일대는 개인사유지이며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리지 시작점으의 접근은 행남등대와 저동 방향을 가리키는 팻말을 계속 따르면 되므로 길 잃을 염려는 없다. 거대한 바위들 사이로 난 계단 길을 한차례 더 올라서면 도동항 방파제와 일대 해안절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 포인트에 도착한다.
뽈뚜리지로의 진입 포인트는 이곳다. 마음 같아서야 해안산책로에서 시작해 전체 코스를 넘어가고 싶지만 지금부터가 ‘뽈뚜리지의 백미’라는 현지 산악인 최희찬씨(울릉콘도 대표)의 설명에 아쉬움은 접어두기로 한다. 초행길에서 현지인의 조언은 절대적이다. 제 아무리 ‘선수’라 하더라도 이들의 도움을 받는 게 낭패를 피하는 첩경이다.      
얼마간 키 낮은 관목지대를 지나고 바위 하나를 오르니 발걸음을 멈춘 최희찬씨가 이름 모를 식물 하나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섬개야광나무. 뽈뚜리지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섬개야광나무와 섬댕강나무 군락지(천연기념물 51호)다. ‘풀 하나 밟을 때도 조심해서 밟으옵소서’
잠시 뒤 시야가 트이며 거침없는 조망이 가능한 바위 위에 올라선다. 왼쪽으로는 도동 시가지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이고,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저동 촛대바위와 멀리 죽도가 인사를 건넨다. 푸른색 도화지에 긴 포말 흔적을 남기며 항구로 돌아오는 어선은 만선의 꿈을 이뤘을까? 6월부터 잡히기 시작하는 오징어가 올해는 풍년을 이루길 기원해본다.

 

뽈뚜리지는 크고 작은 바위를 넘으며 아기자기하게 이어진다. 사진 가운데 바라보이는 바위를 넘으면 긴 하강 후 안부에 내려서게 된다
뽈뚜리지의 묘미는 거친 바위 등날을 타고 넘으며 사방으로 막힘없는 조망이 가능하다는데 있다. 안전을 위해 30m 정도의 보조로프를 휴대하는 게 좋다
리지등반 자체의 난이도는 크게 높지 않지만 좌우로 깎아지른 벼랑의 높이는 큰 부담이다. 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초행자는 절대 단독행을 삼가도록 한다
도동등기소 앞에 제철을 맞은 송엽국이 만발했다. 가파른 산길도, 거친 암릉도 울릉도 주민들에겐 그저 삶의 일부였다

 

 

현지인 동행이나 경험 없는 단독행은 절대 금물
본격적인 리지 등반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한동안 길 없는 바위들을 넘어야 하는데 칼날 같은 바위 양옆으로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숙련된 이라면 장비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높이에 대한 부담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전날 취재에 도움을 줬던 카약 강사 장원섭씨의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졌다.
“여기서부턴 내가 로프를 묶고 올라갈게. 아래에서 확보해주고 상단에 줄을 고정시키면 한 분씩 올라오세요.”
말을 마친 최희찬씨는 로프를 묶는가 싶더니 가뿐한 동작으로 바위를 오르기 시작한다. 경사가 급한 건 아니지만 때로는 홀드에 의지한 채 무게 중심을 절벽 쪽으로 둬야 하는 구간이 있어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그렇게 20m 정도를 오르자 서너 명 정도는 넉넉히 쉴 수 있는 바위 선반에 올라섰다. 이곳에서 취재팀은 한동안 다리쉼을 했다.
과연 예상했던 대로 뽈뚜리지에서 바라보는 일대 조망은 압권이었다. 광각 렌즈로도 채 담기 어려울 정도로 너른 동해바다는 검푸른 빛으로 일렁였고, 주봉인 성인봉에서 우르르 달려 나온 능선들은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하나같이 먼 옛날 화산폭발로 분출된 용암이 만들어낸 흔적들. 수목에 뒤덮인 채 움직임을 멈춘 거대한 자연의 힘은 금방이라도 펄펄 끓는 생명력으로 살아날 듯 아직도 넘치는 기운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새 등반은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한차례 짧은 다운클라이밍 후 다시 수직에 가까운 바위 절벽을 20m 가량 오르자 긴 하강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뽈뚜리지는 정석대로 해안산책로에서부터 시작하더라도 2~3명 숙련자 그룹 기준으로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홀드가 양호해 오르기는 어렵지 않지만, 다운클라이밍 시 발 디딜 곳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어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초보자들끼리의 단독행은 절대 금물이다. 동행인 중에 초보가 있을 시 30m 정도 로프를 휴대하면 하강 시 도움이 된다. 하강을 마치고 능선 안부에 내려서며 등반을 마쳤다. 이후 능선을 따라 계속 진행하면 도동과 저동을 잇는 자동차 도로와 만나게 된다. 왼쪽 골짜기로 내려갈 경우 들머리였던 도동등기소로 내려서게 된다.
“이 골짜기를 우리 어릴 땐 골이 길다고 해서 ‘진골’(‘길다’의 경상도 방언 ‘질다’에서 온 말)이라고 불렀어. 보리수열매가 열리는 가을이면 친구 몇몇과 여기로 올라와 질리도록 따먹고 내려갔지. 그때 기억 탓인가? 아직도 뽈뚜리지는 여름보다는 가을에 더 생각나.”

 

뜀바위를 건너고 있는 취재팀 장원섭씨. 오른쪽으로 도동 시가지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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