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경남의 혈맥, 황강은 푸르다

서부경남의 혈맥, 황강은 푸르다

백두대간은 무주 무풍에 이를 즈음 허리를 한껏 숙여 거창으로 넘어가는 길을 터 주었다. 삼도봉 자락에서 흘러내린 물이 황강을 만들어 거창·합천으로 가는 여정은 때로 사행(蛇行)하며 몸부림치지만 담백하다. 거창을 지나야 깊어지는 강은 합천호에서 쓰임새를 다시 바꾼다. 너른 벌의 뜻을 간직한 거창과 좁은 내를 뜻하는 합천을 두루 거친 황강이 제대로 네 활개를 펴는 것은 율곡을 지나 낙동강에 이르기까지 칠십 리 남짓이다. 황강은 은모래위에 푸른빛을 내맡기고 흐르는 맑은 강이다
글 조용연(여행작가)

 ‌취재지원 : 조성욱
 ‌기술·용품협찬 : 태능한성바이크(02-971-7206)
 ‌자 전 거 협 찬 : 삼천리전기자전거 팬텀 XC

황강이 낙동강과 만나는 하구,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를 맞으며 황강 푸른 물을 만져 본다. 우측이 황강이다

 

▶ 황강     9시간 소요(쉬엄쉬엄 12시간)
▶ 황강(거창군 고제면-낙동강 합류점)
    - 국가하천 : 거창읍 거창위천 합류점~낙동강 합류점
    - 지방하천 : 거창군 고제면~ 거창읍 거창 위천 합류점
    - 발  원  지 : 거창군 고제면 삼도봉 남쪽계곡
    - 합천천, 황계천, 사천천, 가천천, 거창위천, 계수천 등 (제1지류 35개)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몸살을 간신히 추스르고 나선 길이다. 산두릅이야 다 펴버렸지만 임금님 수랏상에 올라간다는 봄나물 어수리가 지천이라고 꼬드기는 산꾼 바람에 산비알을 헤맨 것이 탈이 났었다. 이제 산 그늘 벼랑은 슬슬 피해야 될 나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무풍에서 내려선 1089번 지방도는 백두대간 대덕산(1,291m)과 삼봉산(1,254m)을 사이에 두고 표고 600여m를 넘는데도 동네 언덕 올라가는 정도니 제대로 된 고개 이름도 없다. 무주 땅이 고원지대임을 말해준다. 도계를 넘어 경상남도 거창 고제면으로 내려가는 길은 길다. 긴 사다리(高梯)라는 이름을 가질만하다. 이 땅에 문패를 제대로 내건 강의 태반은 백두대간의 콧김을 쐬지 않은 곳이 없으리라. 황강도 그렇다. 영남권에서나 알려져 있을까 황강은 타관 사람들에겐 낯설다.

사과꽃 피는 마을, 백두대간 아래에서
뚜렷한 물줄기의 시원을 발견하기도 애매하다. 사과 꽃 대궐이다. 사과를 빼놓고 거창을 말하는 것은 어색하다. 봉계리 ‘거창사과테마파크체험장’ 입구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거창사과도 대개 백두대간 남사면 언저리에 붙어 있는 웅양·고제·주상·북상 등이 주산지다. 강에 붙어있는 사과밭에서 기계로 농약을 치고 있는 농부에 앵글을 맞춘다. 농약 없이 농사를 짓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운데다 미세먼지까지 더해져 농부도 마스크를 벗을 날이 없다. 태풍이 불지 않아 작황이 좋기를 바라면서도 풍작은 사과 값을 끌어내린다는 두 얼굴에 올 한해 사과농사를 짓는 그의 계산이 달려 있다.
사과는 누가 뭐래도 낮밤의 온도차가 높은 고지대가 최고 적지다. 십 수 년 후면 고제면만 해도 백두대간에 가까운 고지대나 사과의 달고 신맛을 제대로 낼 거라고 어둡게 전망했다.
사과의 품종이 이리 많은 줄 몰랐다. 그린볼·썸머킹·섬머드림·피크닉·후지 같은 외제이름에다 홍안·황옥·여홍·홍소·감홍·홍로·황금 등등 ‘홍’자 돌림들이 즐비하다. 죄다 품종교배를 통하여 보다 상큼한 맛을 내려 노력한 흔적이다.
냇가에 붙어 있는 땅뙈기들이 작다고 흉을 보았더니만 주상면을 지나면서부터는 그나마 없어지면서 협곡을 이룬다.

청정한 산촌 거창, 교육도시로 
거창(居昌)은 이미 가야시대에 거타(居陀)라는 이름을 가졌었다. ‘살만한 비탈’이란 뜻이다. 실제로 서북쪽 백두대간과 동북쪽으로 수도산을 비롯한 해발 1,000m 이상의 산이 10여개나 둘러싸고 있는 내륙분지다. 남해에서 출발해 평안북도 초산까지 가는 3번 국도가 진주로 이어주지만 거창 사람들의 생활권은 대구에 가깝다. 88올림픽고속도로(현, 광주-대구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난 뒤부터는 더욱 그랬다.
거창의 자존심은 무엇보다 이 산간의 몇 학교들이 예전부터 명성을 날린데 있다. 농어촌자율형 학교인 거창고와 거창대성고가 외지의 학생들까지 불러들인다. 성적 상위 4~5% 권에 드는 인재들이다. 기숙사 생활은 기숙형 학원을 연상케 하지만 낯선 산간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공부하는 모범생들에게 좋은 대학 진학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거창고는 교가가 이은상 작시, 나운영 작곡인 것만 봐도 역사가 있는 학교다. 겨울이면 심신단련을 위해 교장선생님이 주동이 되어 전교생이 눈밭을 헤매면서 토끼몰이 사냥에 나서곤 했다는 전통은 이제는 사라졌겠지. 거창국제학교만 해도 그렇다. 전국 유일의 메디칼 국제고등학교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학제이지만 졸업하면 헝가리 레브레첸 의대로 진학한단다. 한국의사국가고시에도 응시생 전원합격이다. 개교 10년 밖에 안 되었지만 학생 수 60명(한 학년 20명)의 ‘작지만 강한 학교’이다. ‘국경 없는 의사’를 만들어 내겠다는 목표가 당차다. 모두 유해 환경과 차단된 수련의 도장으로 거창을 선택한 것이다.
장기플랜만 서 있는 남부내륙철도망이 빨리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철로가 3번 국도와 궤를 같이 하며, 김천에서 진주·거제로 이어져야 산촌 거창은 매력을 더할 것이다.

합천댐, 여기도 수몰의 아픔이
거창을 벗어나면 아예 강둑길은 사라진다. 합천호의 영향이 서서히 시작되기 때문이다. 갈수기가 시작되어서일까, 산허리로 올라붙은 24번 국도 아래로 옛길과 끊어진 다리의 흔적도 보인다. 댐을 만들면서 합천으로 에둘러가야 하지만 드라이브 코스로는 더 없이 아름다운 꼬부랑길을 만들어 놓았다. 봉산삼거리에서 우회전한다.
봉산면 소재지도 산허리로 옮겨 앉은 이주지다. ‘망향의 동산’이라 이름 지은 수몰민들의 안타까움이 비문에 절절하다. 

솔바람, 풀내음 꽃향기도 함께 여명을 타고 물위에 피어오르는 안개꽃은 옛 고향의 향수인가. 망향의 노래인가.

 
백두대간 삼봉산 아래에 있는 ‘거창사과테마파크체험장’에서 황강 여정을 시작한다(거창 고제)
사과도 봄부터 농약과의 전쟁이다. 풍작도 걱정, 태풍도 걱정, 농사는 이래저래 걱정 투성이다(거창 고제)
강둑은 아예 들어설 여지가 없는 황강, 합천호가 시작되면 길마저 산허리로 올라붙는다(거창 남하)
가뭄으로 합천호 영향권에 수몰된 옛길과 끊어진 다리가 다시 드러났다(거창 남하)
봉산면 수몰민의 애틋한 정을 기리는 공원 ‘망향의 동산’, 망일산에서 발아래 보이는 물속에는 용궁이 된 고향이 있다(합천 봉산)
가뭄으로 수위가 내려간 합천호, 물은 곧 생존이다. 동부경남까지도 아우르는 넉넉한 수원이다(합천 대병)
비 오는 날 비포장 강둑길은 낭만 제로다. 온통 진흙투성이를 각오해야 한다(합천 율곡)
 
 

인근 사찰 금봉사 주지가 쓴 글은 만연하나 애가 탄다. 흑백사진에 담긴 수몰의 풍경은 60~70년대의 우리네 삶 그대로다. 미곡증산, 보리 2배 증산, 퇴비증산 풀베기 독려대회가 마을마다 열렸었다. 김봉마을로 가는 공중다리, 디딜방아를 메고 기우제를 지내러 잠수교를 건너는 주민들, 건을 쓰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의 가난이 괴춤을 허리끈으로 질러 맨 합바지 가랑이에 묻어난다.
물에 빼앗긴 길을 대신하는 산허리 길은 자전거여행자에게는 보통 고역이 아니다. 그래도 넘어야하는 시오리 길이다. 수원삼거리에서 다시 합천호를 안고 돈다. 합천호도 갈수기의 예외가 될 수 없다. 층층이 켜가 진 물의 연흔이 가뭄에 지친 속살을 보인다. 합천호는 홍수조절용에다 발전용이기도 하지만 이제 식수원으로서 가치가 더 커져 보인다. 창원·김해·양산·함안으로 가는 물을 하루 70만 톤씩 공급할 예정이다. 악화되는 낙동강 수질에 1일 63만 톤 전량을 대체해야 하는 부산 또한 눈 돌릴 데가 지리산(문정댐 예정) 밖에 더 있겠는가.
부산은 간절하고, 경남은 느긋하다. 오죽 답답했으면 기장 앞바다에서 취수한 해수담수화 물병을 생산하기 시작했겠는가. 올해부터 부산시 의회에 샘플로 만들어 공급한다고 하자 공무원노조는 차라리 전 공무원에게 우선 주든지 하라고 반대가 거세다. 어쨌거나 생수병을 입에 달고 살 수 밖에 없는 게 오늘날 우리 처지 아닌가. 

 
봄보리가 다 패어 이제 익어간다. 빗길에 잠시 멈추어 드문 보리밭 풍경이라 찬찬히 들여다본다(합천 율곡)

 

 
합천영상테마파크, 시간 속 여행의 보고 
황매산 입구에서 합천댐을 지나가는 코스는 자전거도 편안하고 내 장딴지 또한 여유가 있다.  지금은 수몰되어 산협의 깊이가 쉬이 가늠이 안 되나 합천을 노래한 서거정의 시는 딱 떨어지는 묘사다. 

관하의 길은 아득히 멀고/ 세월은 나날이 지나가네/ 산이 돌아 푸른 묏부리 합치고/ 골이 좁아 흰 구름이 짙구나/ 마음 맑게 하는 곳 여기에 있으니/ 찬 시냇물은 돌에 부딪혀 읊조리네 

황매산(1,108m)은 소백산맥의 고봉이자 영남의 소금강으로 불린다. 합천군 대병면·가회면과 산청군 차황면에 걸쳐 있다. 1983년 ‘합천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5월이면 산 정상 수십만 평 에 철쭉군락이 일제히 피어나 우리나라 ‘3대 철쭉제’ 중 하나가 열린다. 산청도 격년으로라도 함께 축제를 발전시키자고 한다. 마침 철쭉제의 막바지다. 황(黃)은 부(富)를 상징하고, 매(梅)는 귀(貴)를 상징한다지 않는가. 합천에게나 산청에게나 보배이긴 마찬가지다.
조정지댐을 바로 지나면 ‘합천영상테마파크’다. 193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서울을 재현했다.  일제와 현대가 배경인 시대물을 촬영하는데 이만한 장소가 없다. 7만5천㎡ 부지에 2004년 개장해서 산촌 합천 관광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1,100만 관객을 부른 장동건·원빈 주연의 <태극기 휘날리며>, <각시탈>, <빛과 그림자>, <도둑들> 등을 찍었다. 2014년만 해도 33편의 영화, 드라마가 제작되었다. 경성역, 경교장, 이화장, 적산가옥, 조선총독부, 반도호텔, 원구단 옛길, 신세계백화점, 소공동 거리에는 중절모를 눌러쓴 멋쟁이와 도리우찌를 쓴 일본형사의 모습이 금세라도 튀어나올 듯하다.
전쟁으로 불타버린 진고개 부근의 모습과 뒤집힌 미군트럭이 6.25 전란의 흔적을 쓸쓸히 재현하는 소도구로 스탠바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웅대한 규모와 최고의 실감을 기대하는 건 당연히 무리다. 시골 군에서 운영하는 촬영 세트장이니 그나마 감사한 수준이다. 느닷없이 퇴역한 팬텀과 F5-A 전투기를 건물 사이에 배치한 눈은 엉뚱하다. 전쟁의 공간을 만들어 이전한다하니 그냥 넘어가자.

 
합천영상테마파크에 있는 일제시대 서울역 세트장. 경성역이란 이름이 참 고졸하나 그립기조차하다(합천 용주)
1930년대 종로거리다. 전차가 금세라도 뎅뎅~~ 소리를 내며 나올 듯싶다(합천 용주)
뒤집혀 있는 청주통이 왜식 술도가의 풍취를 한껏 자아낸다(합천 용주)
종로경찰서장이 붙인 현상수배전단. 현상금 120원.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합천 용주)
 
 
 

좁은 내, 먹고살기 위해 떠나야 했던 합천 
가둬 쓰지 않을 수 없는 물, 황강도 합천댐 아래에서 합천읍에 이르기까지 건천화가 깊어지고 있다. 모래톱에 무성한 갈대숲과 떠 내려와 자생하는 잡목들이 그렇다. 자전거길을 조정지 댐 아래에서부터 합천읍내로 이어 내고 있는 중이다. 
합천(陜川)은 ‘좁은 내’란 뜻을 가졌다. 강 언저리에 부쳐 먹을 땅뙈기가 적다는 뜻이다. 한자의 음과 운이 좁을 합, 좁을 협 두 가지다. 합천은 원래의 합천에 삼가, 초계가 더해져 오늘날의 합천을 이루었다. 합천 출신이 대구로 유학하고, 생활의 터전을 잡는 것은 합천의 동쪽이 낙동강을 동북쪽으로 건너면 바로 달성 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성주 쪽에 붙어 있는 가야산 아래 해인사의 그림자를 합천읍에서 느끼기에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합천읍은 황강과 합천천이 합해지는 합수머리 너른 땅에 자리를 튼 소읍일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 하게도 군단위로는 합천군 출신 재일동포가 가장 많다. 히로시마 원폭피해자 4만 명 가운데 4000명이 합천출신이라니 말이다.
돈 벌어 오겠다고 무작정 관부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간 남편을 기다리며 평생 수절하고 살아온 할머니에게 8·15 해방은 또 다른 지옥이기도 했다. 귀국선을 타고 온 서방인지 남방인지 반갑기는커녕 낯선 일본여인과 섬나라에서 생긴 새끼들까지 데리고 나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합천댐의 총 공사비 500억 엔(1988년 기준)중 60억 엔이 일본해외개발원조자금(ODA)이었다니 한참 뒤의 일이긴 하지만 참 묘한 우연이다.

‘황강에서 북악까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흔적
합천에서 여장을 푼 다음날 아침, 하필이면 비가 내린다. 단비지만 기어이 가야하는 자전거 나그네에겐 불청객이다. 아랫도리는 젖을 각오를 하고 방수자켓을 걸치고 떠난다. 함벽정을 지나 합천천을 건너면서부터 자전거 길이 시작된다. 합천읍을 한 바퀴 휘돌아 가는 사행천의 전형을 보여주는 황강이다. 영전교에 이르러서 다리를 건너면서부터가 율곡면이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한기를 방어하듯 페달을 더욱 열심히 밟는다. 풍경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남쪽에만 내리는 비는 오후가 되어야 북으로 올라붙을 듯싶다. 강릉과 삼척 산불이 어제야 꺼졌으니 며칠만 비가 일찍 왔더라도 좋았으련만. 하기야 어디 자연이 우리네 사정 다 봐주면서 우주의 질서를 지켜가겠는가.
내천리를 지난다. 합천하면 생각나는 그 분,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기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탈에 서 있는 전직 대통령이다. 황강을 중앙무대에 알린 공도 그의 전기소설 <황강에서 북악까지>를 통해서다. 소설가 천금성은 오랫동안 마도로스를 한 해양문학의 개척자다. 망망대해에서 외로움과 싸우는 일이야말로 소설의 허구를 통해 여백을 메워가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서울대 농대를 나온 그는 대학 2년 선배이던 당시의 실세 허문도의 권유로 원고지 1,200장 분량이나 되는 대통령 전두환의 전기를 소설로 쓴다. 소설이야 당연히 미화되었다. 그 책은 소진되었으나 그 다음 천금성의 소설은 팔리지 않았다. “나는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고 푸념했다.
가족애가 유난히 돈독했던 전 대통령의 고향 사랑도 남달랐다.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날 고향땅으로 돌아 온 그는 조카의 집에서 하루를 머문다. 1995년 12월 3일 새벽 6시 검찰수사관들 사이에 낀 채 프린스 승용차에 오른다. 쓸쓸한 그의 행렬이 떠나자 고향사람들이 말했다. “정치가 다 뭐꼬?” 논스톱으로 압송되는 그를 맞이하려고 경기경찰청 교통과장이던 나는 안양교도소 앞에서 밀려드는 인파와 생중계 카메라를 교통정리 하고 있었다.

 
 
봄비가 성가시지만 단비다. 몸은 추워도 비가 고맙다. 종일 쓴 마스크를 벗고 싶다. 미세먼지야 가거라(합천 율곡)
시골에 너무 잘 정비된 자전거길은 과잉투자가 아닐까싶어 오히려 걱정스럽다(합천 쌍책)
 
 

오늘은 대통령 선거일, 두 마을의 이름 쌍책과 적중
돌아와 지도를 보니 율곡면 내천리 전 대통령의 생가는 황강이 제대로 용트림치며 굽이친 잠두봉의 형상을 한 ‘누에머리통’ 지형이다. 강의 정기가 한곳에 모이는 곳이다.
제방길을 한바탕 감돌아 쌍책(双冊)에 이른다. 쌍책에서 건너는 황강교는 ‘적중(赤中)’이라는 이정표를 내세우고 있다. 이때 한글 간판은 위력을 발휘한다. 쌍책은 무엇일까? 적중은 무엇일까? 상상력은 날개를 단다. 마침 오늘은 19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오늘 저녁 8시면 출구조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당선자를 공개할 것이다. 탄핵의 태풍 뒤에 오는 수습이다. 수많은 혀의 가시가 급소를 찌르지만 후보들은 까딱도 하지 않는다. 그 정도도 못 이겨내서야 이 땅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겠는가. 오바마와 트럼프의 당선을 기가 막히게 예측했다는 예언가의 장담이 생각났다. 쌍책은 하나도 아니요 둘이나 되는 비책(秘策), 적중은 그야말로 적중(的中)했다는 말로 치환되어 이 여정의 마무리에 따라붙는다. 이미 대세는 정지화면이다.
두꺼운 모래의 퇴적 사이로 작은 협곡을 이루는 황강이 낙동강에 안긴다. 비에 젖어 떨고 있는 금계국이 흙탕물을 뒤집어쓴 자전거를 맞아준다. 같은 신세다. 굵어지는 빗발에도 자전거를 세우고 다시 강바닥을 들여다본다. 황사마스크를 비로소 벗는다. 황강은 누른빛이 아니다. 여전히 푸르다. 

참고 자료
1. 한국의 발견, 경상남도, 뿌리깊은나무, 1989 2. 거창의 사과, 거창군홈페이지
3. 황강에서 북악까지 관련기사, 정규웅, 중앙선데이, 2011. 3. 20.
4. 합천댐, 두산백과 5. 신정일이 새로 쓰는 택리지9, 우리 산하, 황매산편
6.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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