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우는 명량대첩의 현장, 최남단 거봉의 놀라운 조망

여름휴가 특선! 
해남 땅끝자전거길 ②
‘우수영 코스’ + ‘두륜산 도솔봉 코스’
물이 우는 명량대첩의 현장, 최남단 거봉의 놀라운 조망
해남 땅끝자전거길 두 번째 기획은 명량대첩의 현장인 우수영 코스와 국토최남단의 명산인 두륜산 도솔봉을 오르는 산악코스 두 곳이다. 우수영은 임진왜란 당시 호남의 남서해안의 수군기지였고 바로 옆에 국내에서 조류가 가장 강한 울돌목(명량)이 해남과 진도 사이를 흐른다. 이순신 장군은 이 조류를 이용해 12척으로 133척의 왜선을 격퇴했다. 바다와 산, 역사와 문화를 함께 아우르는 해남의 진수를 맛보는 여정이다

 

“우르르르~ 쏴아~”
분명 물이 울고 있었다. 해남과 진도 사이의 해협인 울돌목에는 서에서 동으로 산간협곡의 급류처럼 바닷물이 분기탱천하며 하얀 거품을 물고 울부짖고 소용돌이치며 거칠게 흘렀다. 물이 운다는 울돌목 즉 명량(鳴梁) 이름 그대로다. 조금 전만 해도 잔물결 하나 없이 잔잔하던 바다가 이렇게 급변할 수 있을까. 바로 옆에 있는 식당 여주인은 “진도대교를 오가는 차량소음으로 낮에는 덜한 편이지만 조용한 밤에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소리가 크다”고 증언했다. 특히 썰물 때 서쪽에서 동쪽으로 급류가 흐른다고 한다. 
울돌목의 최단거리는 310m 정도. 길이 1.5km 남짓한 울돌목 구간만 빠져나가면 갑자기 바다가 넓어지는데, 물리학의 베르누이 효과처럼 공기든 유체든 흐름 도중에 갑자기 폭이 좁아지면 속도가 빨라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울돌목 해저는 지형이 울퉁불퉁 복잡해서 소용돌이와 급류가 더욱 가중된다. 자세히 보니 우수영 방면의 내만에서 흘러온 물이 울돌목 좁은 목에 막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다. 12척으로 133척을 이긴 이순신 장군의 신화적 명량대첩은 이런 자연지리를 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제 울돌목을 기점으로 해남의 서부로 길게 뻗은 화원반도 허리춤을 더듬는다. 

 

우수영국민관광지가 거점 
울돌목을 중심으로 해남과 진도에는 관광단지가 조성되었고 바다를 건너는 해상케이블카도 공사중이다(21년 10월 완공 예정). 해남-진도 간 다리는 진도대교이고 진도쪽 망금산 위에 우뚝한 진도타워와 다양한 시설 때문인지 지도에조차 ‘진도 울돌목’으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남서해안을 책임진 수군기지이자 이순신 장군의 근거지인 전라 우수영(右水營)은 울돌목에서 2km 정도 북쪽의 해남 땅에 있었다. 궁궐에서 남면해서 앉는 왕의 입장에서 보아 남해안 서쪽 끝이 전라 우수영, 동쪽이 전라 좌수영이 되었다(경상 우수영과 좌수영도 있었다).       
조금은 ‘요란한’ 느낌을 주는 진도에 비해 해남에는 ‘명량대첩해전사 기념전시관’과 강강술래전수관 같은 격조 있고 학술적인 시설이 중심을 이룬다. 확실히 관광객은 진도가 많지만 명량대첩의 세부적인 내용과 해전의 특수성 등을 이해하려면 해남의 전시관을 차분히 돌아보아야 한다. 물이 울부짖고 소용돌이치는 울돌목의 진면목도 해남쪽에서 더 실감나게 볼 수 있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재침해온 왜군은 승승장구하며 서해 진출을 노렸는데, 만약 그때 이순신 함대가 왜군을 막지 못했다면 왜군은 서해를 돌아 곧장 서울로 진격해 조선을 결딴내고 말았을 것이다. 실로 나라를 구한 해협이요, 급류가 아닐 수 없다. 
진도대교 아래를 오가며 울돌목을 한참 동안 구경하고 라이딩에 나선다. 동쪽 해변으로는 산책로밖에 없어 우수영 유스호스텔 뒤편으로 작은 고개를 넘어 농로를 따라가다 학동리 삼정마을에서 수풀에 묻혀가는 소로를 거쳐 해안 둑길로 나선다. 왼편은 양식장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진도의 산야가 건너다 보인다. 맞은편으로 정상부에 바위를 드러낸 옥매산(175m)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옥매광산의 비극            
옥매산을 바라보며 우회전, 해안으로 나가면 부둣가 광장에 특이한 창고건물과 기념비가 서 있다. 옥매산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부터 아사다화학공업주식회사가 명반석과 납석, 고령토 등 광물자원을 채굴한 곳으로 해안의 창고건물은 광물을 저장하던 시설이다. 거대한 시멘트덩이처럼 튼튼하게 축조된 창고는 폭 40m, 높이 10m 정도이며 내부에는 광물 운반을 위한 터널이 남아 있다.     
당시 옥매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대부분 인근 주민들로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인 1945년 3월 강제로 제주도로 끌려가 군사용 굴을 파는 작업에 동원되었다. 그해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어렵게 배를 구해 귀향길에 올랐다가 추자도 앞바다에서 화재로 배가 침몰해 118명이 숨지고 말았다. 2015년부터 합동 추모제를 열고 있고 2018년에는 성금을 모아 추모비를 세웠다.   
명량대첩의 지척에 이런 비극의 현장이 남아있었다니 뜻밖이다.  
최근까지도 채굴이 진행된 옥매광산은 50m 이상의 직벽으로 남아 산체를 깊게 도려내고 있다. 옥매산(玉埋山)은 이름부터 ‘옥(玉)이 나는 뫼’라는 뜻이니 어쩌면 광산의 운명을 타고 난 모양이다.    
이제 801번 지방도로 북상해 옥면리에서 폐교된 옥동초교 옆으로 들어가 들판으로 나선다.  

광야와 금호호 
옥면리에서 18번 국도 아래를 통과하면 평야지대다. 들판 가운데의 작은 수로(성만수로)를 따라 북서 방면으로 5k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금호호와 접하는 상당히 넓은 고평리 들판이 펼쳐진다. 금호방조제로 인해 생겨난 금호호는 길이가 약 20km, 폭은 2k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여서 얼핏 보면 내만 깊숙한 바다 같다. 
호반길을 따를 예정이었으나 비로 인해 노면이 질척해 곧장 고당리로 진입해 화원면과의 경계선을 따라 서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오른쪽으로는 화원반도에서 가장 높은 일성산(335m)이 한동안 따라온다.
일성산 자락을 벗어나면 왼쪽으로는 야산에 기댄 마을들이 즐비하고 오른쪽으로는 광활한 들판이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풍경을 한동안 지난다. 이윽고 용정리에서 803번 지방도를 만나면서 다시 바닷가로 나선다. 여기서 임하도까지 약 6km는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민가마저 드문 해안길은 크게 구불거리며 구릉지 밭과 작은 선착장 같은 주민들의 일상풍경을 보여준다.    
도중에 만나는 작은 해변쉼터는 ‘복 터진 마을’ 안내판을 크게 붙여 놓았다. 원래는 가난한 어촌이었으나 세발나물, 뻘을 다져 만든 염전인 토판염, 싱싱한 갯벌 등 풍부한 농·어업 자원을 바탕으로 생활이 풍요로워졌다. 2013년에는 농촌진흥청 농촌건강장수마을로도 선정되어 해남군은 ‘복 터진 마을’로 조성했다.  

 

우수영의 현장 
예락리에서 임하도에 이르는 해변은 마치 제주도처럼 용암이 파도와 바람에 침식된 듯한 암석이 드러나 이채롭다. 임하도 남쪽에는 작은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암초가 경관의 신비감을 준다.   
임하도에서 803번 지방도를 따라 내륙지대를 4km 가량 지나면 명량해전의 거점인 우수영으로 들어선다. 면소재지 치고는 마을이 상당히 큰 편이지만 자세히 보면 빈 집이 많고 거리는 퇴락해서 보기에 안쓰럽다. 우수영이 있던 성곽은 허물어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옛지도를 보면 성곽은 해안에 접하지 않고 내륙쪽에 들어와 있는데 망해산을 끼고 토성이 남아 있는 서상리 일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용했다는 우물인 방죽샘도 이곳에 전한다.  
마을뒤편 언덕 위 바위에 웅장하게 서 있는 명량대첩비는 높이가 2.67m나 되는 위용으로 당시의 전승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무소유’로 유명했던 법정스님의 생가는 부두 가까이 있는데 원형대로 개축하기 위해 잠시 공터로 남아있다. 부둣가에는 유람선으로 꾸민 거북선과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이 한가롭다.  
적막이 감도는 마을과 부두는 한편으로는 희망을 잉태하고 있다. 울돌목 위로는 해상케이블카가 오가고 다시금 거북선이 앞바다를 누비는 호시절이 곧 올 것이다. 걸어서 보는 강강술래길 못지 않게 자전거로 돌아보는 우수영 여정도 깊이를 더할 것이다. 

info
추천 숙박 
* 유선관 : 대흥사 바로 아래 계곡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통 한옥으로 여관과 식당을 겸한다. 
영화<서편제>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061-534-2959 
추천 식당
* 한오백년식당 : 대흥사 계곡 진입 전의 사하촌에 있으며 길 따라 길게 형성된 식당가에서 첫집이다. 실내가 정갈하고 푸짐한 보리쌈밥 추천. 8천원. 061-534-5633

 

두륜산 도솔봉 674m 
까마득한 힐클라임, 최고의 조망과 바람

 

대둔산? 도솔봉?
도솔봉(674m)은 두륜산의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때로는 대둔산이라는 별개의 산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주봉과 높이가 비슷하고 남쪽 해안지역에서는 가장 높고 웅장하게 보여서 별개의 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전북 완주의 대둔산(878m)과 이름이 겹치고 누가 봐도 두륜산 산체를 이루는 봉우리여서 이제는 도솔봉으로 자리를 잡는 것 같다. 
도솔봉 정상에는 방송사의 통신탑이 모여 있어 정상 직전까지 개설된 관리도로를 통해 라이딩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흥사 입구 주차장이 해발 60m에 불과해 600m 고도차를 꼬박 올라야 하는, 가혹한 업힐 코스다. 거리는 5.9km밖에 되지 않으니 평균경사도 10%가 넘는 가파른 힐클라임이다. 

 

완만한 초반에 방심은 금물 
대흥사 직전 주차장에서 산쪽으로 나 있는 좁은 시멘트길로 접어든다. 2km 정도 올라간 관음암까지는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아 살짝 마음을 놓게 되지만 이후부터 급경사가 시작된다. 대신 햇빛이 들지 않을 정도로 숲이 울창해 시원한 분위기를 유지해준다. 
4.5km 지점에서 상원암·진불암 방면과 도솔봉 길이 갈라진다. 도솔봉 방면으로는 통신탑 관리를 위해 차량통행을 막는 차단기가 놓여 있고 사면을 곧장 치오르는 가파른 업힐이 바로 시작된다. 높고 험한 산도 임도를 개설할 때는 가능하면 등고선을 따르는 것이 기본인데, 이 길은 정상으로 곧장 가야 하니 도리가 없다. 경사가 급한 대신 고도는 순식간에 높아진다. 
저편으로 케이블카가 놓여 있는 고계봉(636m)이 배경을 이루더니 크게 구비를 돌아 연화봉(611m) 방면으로 서향한다. 연화봉 직전에서 능선을 넘어서는데 어느새 해발 570m이다. 이제 고도차 100m만 오르면 되는 것이다. 기자는 자전거로 업힐을 하거나 워킹 산행을 할 때 거리보다 고도를 중시하는데, 오르는 거리만 따지면 길의 기복 때문에 얼마나 올랐고 또 얼마나 남았는지 합리적으로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산과 들판, 바다의 파노라마     
도솔봉~연화봉 능선을 넘어서면 갑자기 조망이 탁 트이면서 놀라운 장관이 들이닥친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야산들이 듬성듬성한 현산면과 송지면 일대의 들판 저편으로 서해 최남단의 바다가 아스라하다. 마치 두 바퀴가 하늘 위를 비행하듯 한결 순탄해진 길을 따라 마지막 고지를 오른다. 정상부의 통신탑이 거의 눈높이로 다가서고 있다. 
산꼭대기에 통신탑을 세운 것은 효율이 가장 좋기 때문이겠지만 출입할 수가 없으니 아쉬울 뿐이다. 도솔봉 북쪽의 다른 봉우리에 정상표지석을 세워두었지만 통신탑 사이에 난 소로를 따라 정상 바로 옆 능선에 올라설 수는 있다.
주능선은 돌출 바위가 늘어선 암릉인데 바위에 올라서면 동쪽에서 치올라오는 강풍에 몸을 가누기 힘들다. 바로 옆에 있는 길에는 바람 한 점 없는데 능선 위는 실로 어마어마한 폭풍이 몰아친다. 바다에서 시작된 바람은 계곡 초입의 동해저수지를 거치면서 습기를 더 머금었을텐데도 쾌적하게 전신을 식혀준다.   
발 아래로 펼쳐진 조망은 입이 딱 벌어지는 장관이다. 북쪽으로는 기이한 암봉을 이룬 두륜봉(630m), 가련봉(703m)이 비범한 산악미를 과시하고 동쪽으로는 북한산 인수봉처럼 거대한 암반을 안은 위봉(533m)이 육중하다. 두륜산 8봉이 다 보이지는 않으나 대흥사 자리를 일부러 감싸기로 작정한 듯 주능선은 오목하게 북쪽으로 오므리고 있다. 남동쪽으로 바다 건너에는 완도의 상왕산(644m)이 짙푸른 상록수림을 허리에 두르고 기고만장하다. 이런 장관만으로도 600m 힐클라임의 고역을 보상받고도 남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경치를 감상하고 있으려니 강풍에 몸이 식어서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린다.

조망 좋은 진불암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간다. 업힐이 힘들었던 꼭 그만큼 다운힐은 순간의 쾌감으로 지나간다. 브레이크를 잡은 손가락과 앞바퀴의 진동에 손목이 아플 정도로 페달링을 아예 생략한 장쾌한 내리막이다.
앞서 지나온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진불암으로 향한다. 온전한 수행처인 상원암은 출입이 금지되어 두륜봉 중턱에 높직이 앉은 진불암만 가보기로 한다. 갈림길에서 600m 밖에 되지 않지만 잠깐의 다운힐 끝에 급경사 업힐을 올라야 한다. 널찍한 절마당 입구에는 은행나무 고목이 기품 있게 서 있다. 응진당에는 28 나한상이 줄을 지어 수백년 세월을 앉아 있다.
두륜산은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이나 월정사의 오대산 못지않게 산 전체가 일종의 불국토다. 544년(신라 진흥왕 5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대흥사를 중심으로 산중에는 9개의 암자가 분포하고 만일암터를 비롯해 3곳의 암자터가 남아있다. 특히 일지암은 초의선사(1786~1866)가 40년간 머무른 차(茶)의 성지다. 진불암 외에는 자전거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진불암 마당에서는 방금 다녀온, 도솔봉 오르는 길이 연화봉을 향해 산록에 빗금을 그리는 것이 잘 보인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상록수림의 대향연 속에서 대단히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받는 것은 산줄기가 사방을 에워싸서 바람을 완벽히 막아주기 때문이다. 

 

거찰 대흥사 
귀로에 들린 대흥사는 흔히 보던 사찰과 다르다. 진입로를 장식하는 아름드리 거목과 고목, 빽빽한 편백 숲이 속세와의 경계를 한층 강화하고 13대 종사와 13대 강사의 부도와 비를 모신 부도밭은 사찰의 내력과 위상을 말해준다.         
해탈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워낙 많은 당우와 복잡한 구조로 어디로 가야할지 어리둥절해 진다. 응당 보여야할 대웅전은 한편에 숨듯이 자리하고 다른 전각들이 한층 크고 많다. 대웅전은 재건중이라 임시 전각이 세워져 있다. 경내는 안쪽으로 갈수록 단을 이루고 뒤편에는 두륜산 주능선의 기묘한 암릉이 마치 금강역사상 같은 기세로 사찰을 호위한다. 
국토의 최남단에 금강산 못지않은 절경 속에 자리한 대흥사는 일찍이 서산대사가 “삼재(三災; 전쟁, 전염병, 기근)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 만년 동안 훼손되지 않을 땅”이라고 평했다. 서산대사는 묘향산에서 입적했지만 그의 의발(衣鉢)은 대흥사(당시는 대둔사)에 전하라고 유언해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서산대사는 평생을 수행한 묘향산을 떠나지 않았으나 안온한 분위기에 겨울에도 따뜻한 대흥사가 내내 그리웠던 것 같다. 대흥사를 되돌아 계곡길을 내려오면서 나도 이곳이 그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 아름다운 봉우리와 능선, 저 깊은 골짜기와 산수화 속 같은 암자를 어찌 잊을까. 

info
추천 숙박
* 우수영 유스호스텔 : 울돌목 바로 옆 우수영국민관광지 내에 자리하고 있다.  061-533-2114
* 발리모텔 : 우수영 여객선터미널 인근에 있으며 널찍한 주차장을 갖추고 시설이 깨끗한 편이다. 061-533-5518
추천 식당
*금강산횟집 : 진도대교 바로 옆 울돌목에 접하고 있어 조망이 좋고 시설이 깨끗하다. 음식도 정갈하고 맛깔 난다. 생선회덮밥 1만2천원, 매운탕 소(2인) 3만5천원. 061-533-3355 
* 임하기사식당 : 정갈하고 맛난 한식뷔페다.  1인당 8천원으로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우수영국민관광지 입구.  061-535-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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