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기 그윽한 덕적도, 신비의 바닷길 소야도

옹진 덕적도 & 소야도 
솔향기 그윽한 덕적도, 신비의 바닷길 소야도
44개의 섬이 모여 있는 덕적군도의 본섬 덕적도와 소야도로 섬 여행을 나선다. 차도선으로 인천항에서 1시간50분여… 먼 바다에 산으로 가득한 덕적도가 반겨준다. 솔향기 가득한 숲길과 노송이 우거진 해변, 시야가 탁 트이는 바닷가 언덕까지 덕적도는 섬 전체가 바다와 노을 전망대다. 아름다운 백사장을 주위에 두른 소야도는 갓섬-간뎃섬-물푸렛섬으로 이어지는 1.3km 바닷길이 하루에 두 번 열려 신비로운 ‘모세의 기적’을 보여준다  

 

추억과 낭만이 있을 듯한 풍경과 왠지 모를 설렘이 가득한 섬 여행. 간절한 기다림은 느리게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열망을 더 크게 만든다. 도시사람들에게 섬이란 그런 것이다. 찰나로 시작되었던 풍경들이 천천히 다가오며 이야기가 되는 섬. 가면서 정이 들고 오면서 추억이 되는 섬 여행. 
수평선 너머 끝없이 망망한 풍경은 어쩌면 우리를 상상할 수 없는 과거의 어느 곳으로 데려갈지도 모른다. 물이 가득하고 깊다하여 큰물섬이라 불렸던 덕적도. 섬의 시간에 몸을 맡겨 여행을 떠나본다. 

도선만 자전거 휴대 탑승 가능 
덕적도로 가는 여객선은 인천항 여객터미널과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 두 곳에서 있다. 인천에서 덕적도까지 쾌속선으로는 불과 1시간 정도 거리이며, 느긋하게 선상에서 바닷길을 즐기고 싶다면 시간이 더 걸려도 차도선(카페리)을 추천한다. 특히 자전거여행자는 쾌속선이 아닌 차도선을 이용해야만 덕적도에 갈 수 있다. 쾌속선에는 자전거 휴대 탑승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천항에서 출발하는 차도선인 ‘코리아 익스프레스호’는 국내 최대급으로 정원 700명, 차량 33대를 선적할 수 있다. 갑판 위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여객선 내부는 간단한 간식과 라면도 먹을 수 있어 여유롭다. 
인천의 섬은 유·무인도를 포함해 총 168개가 있다. 그중 덕적면에 속한 덕적군도의 섬이 44개로 가장 많다. 바삐 가는 도시의 시간과 작별을 고하고 나면 육지와 멀어질수록 느릿한 풍경이 주는 감동은 더욱 커진다. 

배가 들어오면 흥청이는 선착장 
차도선이 닿은 곳은 진리 도우선착장이다. ‘물을 건너다’는 뜻의 한자어 ‘도(渡)’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진리선착장이라고도 부른다. 조용했던 선착장은 육지에서 하루 3~4번 배가 들어올 때가 되면 연신 활기가 넘쳐난다. 여행에 필요한 생필품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마트와 음식점이 다 있다. 
배가 도착하는 시간이 정오에 가깝다 보니 선착장은 이른 점심을 먹는 사람들로 붐빈다. 바다향 가득한 점심 한끼가 덕적도 여행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섬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차량보다는 역시 자전거가 최고다. 
앞서 굴업도 여행을 마치고 덕적도에 도착하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반나절도 채 안 된다. 그래서 덕적도의 절반만 라이딩 하고 다음날 나머지 절만을 돈 다음 소야도 여행을 계획한다. 

북리항이 번성했던 시절 
진리선착장에 도착하면 덕적도 동쪽 북리로 가는 임도가 새로 개설되어 자전거여행이 더욱 풍족해 졌다. 진리 임도와 북리 임도로 구분되는데, 각각 3km와 4.5km 구간으로 덕적도의 다양한 식생을 관찰하며 라이딩 할 수 있는 구간이다. 
섬에 오면 흔히 보아왔던 거리의 풍경들이 초록빛 물감을 부은 듯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고요한 바다가 오래된 필름을 돌리듯 느릿느릿 북리항의 긴 시간 속으로 데려간다. 
해방 무렵만 해도 이곳을 드나들던 유동인구가 2만명에 이르렀다고 하는 북리항. 항구에는 돈을 벌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고깃배와 선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고 한다. 1970년대 초까지 ‘민어파시’로 명성을 날린 덕적도 북리항은 한때 인구가 1만2천여 명에 달해 ‘작은 인천’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1950~60년대 민어파시의 성지, 항구로 밀려드는 사람들을 먹이느라 부둣가에는 요리집은 말할 것도 없고 야외극장이 들어서고 약방, 다방, 여관, 대중탕 등 그야말로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뱃사람뿐 아니라 땜장이, 약장수, 기생을 비롯해 돈을 벌기 위해 몰려던 사람들로 방 하나 구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당시 민어잡이 어부들에게 북리항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황금의 바다였다. 그 많은 꿈,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곳 어디에도 뱃사람들의 흔적과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과거 그 시절엔 항구의 끝에서 끝까지 어선들로 가득 찼던 북리항이었다. 북리가 어항으로서 면모를 갖춘 것은 황해도 피난민들이 본격적으로 모여들면서부터였다. 70년대까지는 그래도 북리가 어항으로서 역할을 많이 했는데, 어업이 쇠락하면서 선주들 대부분이 인천으로 이주하면서 어장은 사라지고 그 많던 사람들도 자취를 감추어 지금은 작은 어촌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능동해변의 파도소리 
북리항에서 작은 언덕을 하나 넘어가면 덕적도 최북단의 능동해변이다. 해당화와 푸른 바다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몽돌이 어우러진 능동자갈마당이다. 자갈로 이뤄진 해변 주변에는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이곳의 낙조는 서해안의 해금강이라고 불릴 만큼 멋진 광경을 연출한다. 
파도와 자갈이 만나 부딪치는 은밀한 속삭임 속에 해당화에 취하고 바람이 전해오는 소리를 들어 본다. 파도가 드나들 때마다 쏟아내는 해조음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협주곡이다. 

다시 진리로 돌아와 
진리선착장에서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면 솔밭길을 따라 산책하기 좋은 진리해변이다. 물때마다 그 모습을 바꾸는 해변의 모습은 서해만이 갖는 매력이다. 덕적도의 중심인 진리마을은 옛날 수군진영이 있었다는 의미로 옛말은 ‘진말’이다. 
진리는 면사무소, 파출소, 소방서, 우체국이 있어 덕적도의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덕적도의 대표적인 산 비조봉(292m) 등산로가 이곳에서 시작된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새가 날개를 치며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세가 아름답고 완만해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덕적군도의 황홀한 풍경을 보고 싶다면 이곳에 올라야 한다. 산이 많은 덕적도에는 이밖에도 섬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밧지름해변과 서포리해변   
푸른 바다를 품고 있는 밧지름해변은 비조봉 바로 아래에 있으며 규모는 작지만 한적하다. 그리 오래 되어 보이지 않는 소나무 군락이 방품림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피서철엔 편안한 휴식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찾기에 좋다. 곱고 깨끗한 황금빛 모래사장에서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시원한 솔바람이 불어와 상쾌함을 더해준다. 
덕적도 서쪽에 위치한 서포리해변은 서해안에서 최고의 해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 명성만큼 드넓은 백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고 주변은 200년이 넘는 해송 숲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은백색의 광활한 서포리 해변은 그 옛날 한시에서도 덕적팔경으로 꼽을 만큼 절경이다. 해변에서 소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찬 삼림욕장을 지나면 바로 서포리 마을이다. 서쪽에 있는 포구라고 해서 ‘서포리’이며 해당화와 야화가 철 따라 피어나고, 노송이 울창한 삼림욕장과 해변으로 널리 알려진 마을이다. 
해변 남쪽에 있는 서포리 선착장으로 가면 섬을 드나드는 육지 사람들을 검문하는 듯한 투구바위가 우뚝 하다. 투구를 닮은 바위 꼭대기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꼭 투구의 장식물 같다. 

 

용담의 군도 조망  
섬 날씨는 늘 변화무쌍하지만, 그 섬에서 단련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쉬 변하지 않는 마을길처럼 한결같다. 한여름의 서포리 마을은 여행객들로 북적이다가도 섬의 특성상 시즌이 끝나면 조용한 마을로 변한다. 
어디든 해변의 끝자락에 서면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와 따스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덕적도는 섬 전체가 노을 전망대다.  
서포2리 벗개저수지로 가면 용담으로 가는 바갓수로봉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용담은 용왕에게 제사를 지낸 곳으로 용이 살고 있다고 하며 ‘용담이’라고도 부른다. 울창한 숲길을 달리다 보면 능선에 올라설 때마다 언뜻언뜻 바다가 스쳐간다. 바갓수로봉 임도의 끝 용담에 이르면 덕적군도의 많은 섬들이 조망된다. 

소야도의 신비의 바닷길
섬과 섬 사이 푸른 바다 한가운데를 씽씽 달려가면 덕적 본섬과 마주한 소야도를 만날 수 있다. 덕적도와 소야도를 잇는 ‘덕적·소야교’는 2018년 5월에 개통되었다. 
소야도는 덕적도 남쪽으로 약 500m 거리에 있는 작은 섬으로 덕적도와 같이 산세가 험해 ‘작은 덕적도’라고 불린다. 섬 중앙지점에 해발 158m의 국사봉을 중심으로 100m 이상의 산봉우리와 낮은 산봉우리가 산줄기를 이루고 있어 평지가 거의 없고 좁은 계곡과 기복이 심한 구릉이 이어져 있다. 
덕적·소야교를 건너 조금만 가면 남쪽으로 한적한 임도가 나온다. 그리 길지 않은 한적한 임도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되어 기복이 심해 체력 소모가 많은 편이다. 
소야도는 섬 주위가 천연 백사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해안 경관이 특히 수려하다. 눈길 닿는 곳 마다 마음에 담아보고 싶은 풍경들이 많아 발길을 자주 멈추게 된다. 
소야도에는 하루에 두 번 기적이 일어난다. 소야도 동쪽에 가면 제각각 떨어진 세 개의 섬이 물때에 따라 바닷물을 밀어내고 남매처럼 다정히 손을 잡는 풍경이 연출된다. 바로 바닷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이다. 
갓섬-간뎃섬-물푸렛섬으로 이어지는 1.3km 바닷길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여러 개의 섬이 이처럼 뚜렷한 바닷길로 연결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바닷길 바닥은 모래와 자갈이 아닌 굴 껍질로 만들어진 길이다. 물때에 따라 파도에 의해 형성되는 바닷길은 자연의 조화, 신비 그 자체다. 
찬란히 빛나는 새하얀 굴껍질 언덕이 있는 간뎃섬. 멀리서 보면 마치 모래언덕으로 보이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눈부신 백색의 굴껍질 언덕에 올라서면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산호섬에 온 것처럼 매력적이다. 

 

바다역시장의 소란과 매력   
덕적·소야도에서 일정상 짧고 아쉬운 라이딩을 마치고 다시 진리선착장으로 나와 덕적 바다역시장을 둘러본다. 고요했던 섬마을이 난데없이 소란하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바다역시장 때문이다. 섬 주민들이 산과 바다에서 직접 캐온 귀한 것들을 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섬의 시간은 느리게만 가는 것이 아니다. 물때에 따라 부지런히 손발을 놀려야 사는 삶의 연속이다. 그 탓에 갯벌과 산을 오가는 섬사람들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섬 여행을 가면 섬의 시간을 따라야 한다 말이 있다. 그래야 미처 보지 못했던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시간에 따라 또는 물때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섬의 매력은 시간과의 만남이다. 
선착장을 나서면 커다란 민어를 들고 있는 어부상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수백 척의 어선들이 몰리는 민어파시가 열렸을 정도로 북적이던 덕적도였다. 그 시절의 영화를 기억해 달라는 듯 민어를 들고 서 있는 씩씩한 어부를 보면서 다시 민어들이 덕적도로 몰려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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