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 천방지축⑥

악몽의 조짐 타율성의 역사는 반복되는가
타율성론은 한국사의 전개 과정이 한국인의 자주적 역량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세의 간섭과 영향에 따라 타율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관점이다. 당연히 우리는 이를 부정하고 식민사관의 잔재로 무시한다. 하지만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국제적 동향와 우리 속에 면면히 깃든 ‘피학적 함몰정서’를 보면 회의감에 빠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글 김종성(자유기고가)

대학 다닐 때 늘상 비판만 요구되던 별 재미없는 소리, 그러면서도 그게 틀렸다는 논거를 억지로라도 지어내도록 요구되었던 게 ‘식민사관’이었고,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타율성론’이었다. 
타율성론은 한국사의 전개 과정이 한국인의 자주적 역량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세의 간섭과 영향에 따라 타율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관점인데, ‘만선사관’과 ‘반도적 성격론’이 그 내용을 이룬다. 

마음에 드는 거짓말 vs 불편한 진실 
학계의 정통해석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나에겐 만선사관은 ‘마음에 드는 거짓말’인 반면, 반도적 성격론은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인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만주와 관련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소리로 허파에다 바람을 잔뜩 불어넣어주는 반면, 반도적 성격론은 지긋지긋하게 답답한 굴레로부터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숙명적인 그 무엇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반도사관에 해당될 만한 시기의 이야기는 잘해야 본전 꼴로 밖에 안 보이고, 그나마 문화라는 것도 남이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밑도 끝도 없는 ‘독창성’이라는 자화자찬의 잣대로 치켜 올린 것과 ‘한글’ 빼고는 솔직히 내세울 게 없음을 절감한다. 오죽하면 TV사극조차도 언제나 궁중의 안방에서 맨날 왕위승계 문제만 다투는 장면 위주다. 혜경궁 홍씨의 경우 너무 우려먹다보니 이젠 영조대왕을 변태로 만들 정도이고, 숙종 때의 장희빈과 연산군 모친 폐비 윤씨 우려먹기도 질릴 지경인데 이제는 민비까지 구국의 여신급 국모로 변질시킨 것을 보면, 우리 스스로 과거를 입맛에 맞게 재단하여 이를 역사의 메인스트림으로 신봉한다. 
 
‘피학적 함몰정서’ 
국경이 자주 변하는 시기라는 것은 따져보면 우리도 타국 정벌에 나서기도 한 시기다. 그런데 반도사관에 접어든 시기에는 국경에 별스런 변동이 없었다. 그저 우리가 당하고 나서 이것저것 갖다 바치든지, 빼앗기고 난 다음에야 겨우 침략자들이 물러난 정도이고 이겨봐야 우리영토 내의 싸움이었다. <손자병법>에서 전장은 자국이 아닌 타국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우린 밑져도 본전인 타국으로의 진출이 아닌, 잘해야 본전인 자국방위를 가지고 승패를 논한 것이다.
여기에 대한 원인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할 수 있다. 지정학적 환경이 어쩌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어쩌고 하는데, 내가 볼 땐 그건 결과를 가지고 현학적으로 구분한 데 지나지 않는다. 반도시대로 접어든 이후 소작지배 체제를 합리화하는데 양반의 위세를 드높이려고 지나치게 중국에 대한 ‘정신적 사대’가 과잉한 데서 생긴 숭문경무(崇文輕武 : 반대말은 崇文尙武가 아닐까?)적 문약정서의 산물인 ‘피학적 함몰정서’로 본다. 중국을 의식하여 절대로 동아시아의 주체적 지위 갖기를 거부하는 이러한 ‘피학적 함몰정서’로 빚어진 내부적 병폐는 뭐가 있을까. 

해양으로 진출이 쉽고 대륙과도 연계된 반도는 원교근공을 활용해 중심국가가 될 수 있는 좋은 입지지만 우리는 이를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

 

길이 없는 것이 국방에 유리하다?
첫째, 도로망이나 수로망 같은 ‘SOC에 대한 인식의 미흡’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식으로 고대부터 정복지로의 출동과 정복지와의 교역을 위해 아피아 가도를 비롯한 도로를 닦았던 로마와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우리는 기본적인 길조차 제대로 없었다. 삼국시대까지 몰던 수레가 없어지고 겨우 도보로 옮기는 화물용 ‘지게’와 여객용 ‘가마’로 역행한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원래 전차병이 기마병보다 먼저 등장했을 정도로 바퀴에서 비롯된 기술의 기반이 도보로 전환됨으로써 가난과 미개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그런 지경임에도 임진왜란 때는 도로망의 부재가 적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오히려 국방에 유리하다는 요설까지 나왔을 정도이니, 조선조 상층부의 인식수준이 어떤지 말해준다. 
거기에다 고대에도 있던 하수도가 조선시대엔 존재하지 않아 질병이 만연했다. 오죽하면 일제가 이 땅을 통치하면서 제일 먼저 생긴 게 ‘국도’와 ‘하수도’라는 말이 나왔을까. 근대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도 이를 받아들이는 건 고사하고 왜 필요한지조차 인식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여기서 잠깐, 교통과 관련하여 조금 섬뜩한 역사적 비교를 제시해보겠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인들이 남양군도에 노예로 팔려갔다는 것을 배웠다. 필자도 어릴 때 교과서에서 그 내용을 보고 엄청나게 분노했다. 우리 조상도 노예가 되다니!
그런데 나이 들어 차분히 생각해 보았더니 더 무서운 것이 생각났다. 남양군도라면 지금은 미크로네시아를 의미하는데, 그때는 설령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동남아 쪽이라고 하더라도 그럼 일본은 거기와 교역을 했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존경해마지않는 이순신 장군의 함대는 거기까지 항해할 수 있었을까? 꿈 깨자. 이순신 장군의 함대는 육지가 보이는 연안에서 싸웠지 육지가 보이지 않는 원양에는 나갈 수 없었다. 심지어 현해탄조차 건너보지 못했다. 우리는 임진왜란 때 해전에서 이긴 것을 두고 자만하는데, 알고 보면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수완 덕분이었지 결코 우리 해군력이나 항해술의 우수성 때문이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 
 
서울 집중과 지방의 변방화 
둘째, 서울집중에 따른 ‘지방의 변방화로 인한 실질적 통치영역의 축소’를 들 수 있겠다. 
소작농업 이외에 지방의 상공업은 매우 취약했다. 지방마다 구전되어오는 전설을 보더라도 상공업과 관련된 이야기가 거의 없다. 전부 농사꾼 아니면 나무꾼 이야기다. 지금의 공무원에 해당하는 관료 이외에는 월급쟁이 직장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서울 빼곤 도시 관련 이야기가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서울은 먼 곳 이야기다. 왜냐하면 큰길이 없어서 대부분 도보로 다녀야 하기에 서울까지 왕래하는데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지방의 사투리는 갈수록 심화되어 이질화되고 결국 변방화 된다. 서울에서 누가 가도 굽신거리며 맞아주는 이가 없다면, 낯선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방화는 점차 분리 독립의 기운을 싹틔우게 된다. 그 단초는 민란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방의 변방화는 지금은 없어졌을까? 아니라고 본다.
모든 출세의 기준이 서울이다. 대학도 서울, 직장도 서울, 거주지도 서울,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누락되면 결함이 있는 듯이 보일 정도다. TV드라마의 무대도 대부분 서울이고, 부동산사이트의 주된 시세흐름의 바로미터도 전부 서울 아파트 값이다. 괜찮은 병원은 전부 서울이고 지방은 요양원 밖에 장사가 안 된다. 
그 때문일까? 지금 지방에서 자란 사람은 서울이 너무나 알려졌기에 서울에서 잘 살 수 있지만, 서울에서 자란 사람은 대부분 지방에서 살 줄 모른다. 서울에서 자란 사람은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지도 못한다. 나이 들어 남편의 직장이 지방으로 발령 나거나 귀농하게 될 경우 대부분의 아내는 서울에 남는다. 그것도 남편이 지방출신일 때나 그렇고, 남편이 서울출신이면 군복무처럼 밥이라도 먹여주는 경우가 아닌 이상 지방에서 생존할 재간이 없다. 좌변기 아닌 화장실에 앉으면 뒤로 넘어지는 사람이 대부분일 정도로 자연상태에 대한 적응력이 약하다. 
그렇다면 수도를 옮기는 것 또한 생각해볼 일 아닐까?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 등이 우리와 비슷한 ‘길목국가’ 폴란드는 미국과 손을 잡고 유럽의 중심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전통의상을 입은 폴란드인들

 

한(恨)
셋째, 지긋지긋한 ‘한(恨)의 정서’ 문제다. 
뭐가 그리 한이 많은가? 어쩌면 일부러 주입시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이란, 그저 엄살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패배자 정서요, 문제를 해결하거나 고통을 극복할 수 없는 무슨 깊은 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의지박약을 합리화하기 위한 핑계 아닌가?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고 한다. 한가하기 때문에 한이 많은 것이다. 
필자도 학교 다닐 때 국어시간에 우리민족의 정서는 한의 정서”라는 게 왜 그리 듣기 싫은지 미칠 지경이었다. 그럼 우리민족 이외의 민족은 그런 식의 한이 없을까? 맨날 갖다 붙이는 게 겨우 유태인 타령이다. 유태인 아니더라도 우리보다 더 크게 한을 가질 국가나 민족은 많다. 슬픈 사연이나 아픈 상처 같은 걸로 따지면 오히려 우리의 피해가 더 적었다. 
변화에 둔감하여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느 나라든지 외부세력에게 짓눌리고 마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 아닌가? 
한(恨)에 대해서는 필자 가족의 실제 사례를 하나 들겠다.
필자의 큰할아버지는 일제 때 재산을 전부 팔고 만주로 갔다. 그 때문에 빈털터리가 된 우리 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필자의 고향에 정착해 과일 바구니 만들어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었다. 할아버지는 필자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지만, 제삿날이나 명절 때마다 친척들은 입버릇처럼 만주에 간 큰 할아버지 후손들과 함께 할 수 없어서 이산가족으로서 한이 맺힌다며 모두들 애통해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중국과 국교가 맺어지고 2000년대 들어 만주에 사는 큰할아버지의 손자인 6촌 형님과  연락이 닿아 우리나라에 방문하러 왔더니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한이 맺혔다는 친척들이 전부 슬슬 피하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돈 300만원이면 중국 대학교수 11년치 월급에 상당했기에 한국에 있는 친척집을 몇 군데 돌며 푼돈만 좀 얻어도 중국에선 상당히 큰 밑천이 되었다. 그 때문에 방문하는 친척마다 몇 푼씩 쥐어줘야 했는데 결국 아무도 만나주는 친척이 없어서 시골에 계신 우리 부모님 하고만 보름 정도 지내다 중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우리 부모님이 이리저리 융통해 한 움큼 쥐어줘서 보냈으며, 그 후엔 집안사람들이 모일 때 한 맺혔다는 소리를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명분은 자주성, 실제는 저자세 
넷째, 자주성을 내세우면서도 저자세를 견지하는 문제다.
식민사관에서 지적한 사대주의가 생각나는데, 사대주의는 조공 같은 국가실리 목적 때문에 생긴 것이라기보다는 유교적 소작지배체제의 강화 목적으로 양반의 선민의식 확보를 통한 하층민과의 괴리유지 목적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초기 독립운동도 양반의 기득권 탈환 목적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심지어 일제시대 들어서 자본을 형성한 조선시대 기준 중인 이하 출신은 양반에게 다시 재산을 착취 당할까봐 오히려 해방을 두려워했다고까지 한다. 그래서 말이 나온 김에 사대주의와 대비되는 민족자주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민족자주성? 좋은 말이다. 헌데 특정방향으로만 쓰인다는 것이다. 절대 중․러에 대해서는 쓰지 않고, 오로지 미․일에만 적용한다. 중국과 북한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못해 상전 대하듯 한다. 
백도어 프로그램 때문에 미국이 그리도 경계하는 중국 CCTV에 대해서는 침묵 차원을 넘어 아무런 경계심 없이 프로그램을 계속 수입하고 있다. 김정은이 죽었는지 몰라도 김여정이 여왕 행세를 하며 “대북전단 때문에 연락 끊겠다”는 한 마디가 나온 지 단 하루 만에 대북전단살포금지법안이 발의되는 것을 보면, 경제력이 50배 되는 나라의 처신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친중이 나쁜 게 아니다. 그러나 주종관계가 아닌 동등관계를 견지했다면 지금의 중국을 흔들 수 있는 캐스팅보트 지위도 확보할 수 있을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무너져가는 형국임에도 숭배하는 양상을 보이니 답답하다는 거다. 대만의 경우 지리적 입지를 백번 활용하여 이젠 핵무장을 용인 받는 단계에 이르렀는데도, 우리는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하며 영은문을 헐고 세운 독립문이 지금은 일본에 대한 독립 의지로 홍보될 정도다. 정서에 맞추어 사실도 변질되는 격이다. 

중심국가, 길목국가 
다섯째, 중심국가 터에 자리 잡아 길목국가 탓만 했다.
반도는 다른 육지에 비해 해안선이 길다. 즉 바다가 많다. 그러므로 반도는 숙명적인 곳이 아닌, 선택받은 곳이라고 봐야 한다.
일례로 폴란드와 비교해보자. 폴란드는 북쪽만 바다(그것도 꽉 막힌 발트해)이고, 동․서․남쪽은 육접국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반면 우리는 북쪽만 육접국경을 맞대고 있고 동․서․남쪽은 바다이다. 
육접국경이 짧다는 것은 우방의 도움 없이도 방어에 유리하고 대륙과 소통도 편리하며, 해상을 통한 조달에도 유리하다. 즉, 원교근공에 유리하다. 반면, 육접국경이 길면 국경 그 자체가 적대적 경계이므로 주종적 우방관계 아니면 그 길이에 비례하여 국가 간 마찰이 빈번하고 방어도 힘들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반성과 함께 타성에 빠져드는 대비된 사례가 있다. 바로 먼저 거론한 폴란드와 한국이다.
근대 이후 길목국가 처지였기에 언제나 주변국의 사냥감 신세를 면치 못했던 폴란드는 구소련이 해체된 후에도 러시아의 서진야욕이 여전히 강렬함을 간파하고는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NATO로 소속을 바꾼다. 때마침 독일에서 미군철수 바람이 부는 것을 이용해 주독미군을 폴란드로 유치하고 발트3국까지 끌어들여 러시아 견제의 맹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대러시아 전략에서 폴란드와 발트3국의 가치를 깨닫고는 독일이 그렇게 싫어하는 미군을 끌어들여 길목국가에서 중심국가로 위상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미군을 끌어들일 때도 파병이 부담스러운 육군은 폴란드가 주축이 되고, 기술수준과 예산이 많이 소요되어 폴란드에는 부담스럽지만 미군에게는 절대강세를 보이는 공군과 해군 위주로 유치함으로써 서로 윈-윈 하는 방식을 구사했다. 사고방식의 전환으로 슬픔에 찌든 이미지의 길목국가 처지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중심국가 지위로 도약하는 혜안이 존경스러울 정도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EU와 NATO가 해체될 것으로 보고, 그 이후 유럽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시선을 재빨리 눈치 채고 국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 향후 유럽 내에서 주도권을 쥘 강국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반면 독일은 중거리 핵전력 협정(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 INF)이 유효한 기간에는 안보에는 관심 없고 그저 미-러 관계에 양다리를 걸치면서도 노르드스트림(러․독간 해저가스파이프라인) 구축 같은 ‘반미친러’만 일삼다가 트럼프에 의해 INF가 폐기되자 그제야 러시아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미중대립에서 인사치례 정도의 친미태도로 간보기만 하고 있다. 프랑스는 러시아로부터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대러시아․대중국 전선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면서 걸핏하면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어 21세기에는 해가 지는 나라에 속할 것 같다. 패권국도 아니면서 원교근공에 따른 호혜적 주종관계라도 없으면, 팽 당하기 딱 좋기 때문이다. 21세기에는 EU․NATO는 해체되고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이 나락으로 떨어질 동안 지금까지 사냥감이었던 폴란드가 사냥꾼으로 비상할 것으로 본다. 

동유럽은 서유럽이 몰락할 때 반대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강대국의 속셈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맨날 지정학적으로 중요성이 높다며 그게 무슨 대단한 자부심인양 떠들면서도 막상 그 활용에 대해서는 방기하고 있다. 즉,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미국이 우리에게 코 꿰인 운명처럼 생각하고, 일부러 중·러에 다가가며 미국을 약 올릴수록 미국은 더욱 안달 나서 우리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을’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왜 북한이 미국과 회담한다며 우리를 배제하고, 미국도 북한과 회담할 때 우리를 배제하는지 생각해보았는가. 우리의 전략적 가치가 그렇게 높은데 왜 우리를 무시할까.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나, 바로 북한이 우리보다 미국에게 지정학적 가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남한에 주둔하면 중·러의 가림막인 북한을 상대해야 하니 ‘잘해야 본전’ 밖에 못 건질 정도로 전략적 가치가 낮은 반면, 북한에 주둔하면 중·러를 코앞에서 감제하는 동시에 북한을 통한 남한에 대한 통제도 가능해 ‘밑져도 본전’은 건질 정도로 전략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러 입장에서 보면 남한이 북한보다 더 지정학적 가치가 높은지도 모른다. 실제로 카터 대통령 방한 때 주한미군 철수 소동으로 우리 정부를 약 올리니까, 거제도 대우조선소를 보여주며, “미군이 나가면 우리가 여기서 소련 군함을 정비해주며 먹고 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중국을 안달 나게 해야 할 판인데, 거꾸로 중국에 빌붙고 미국에는 튕기고 있다.  

통일 후의 비전
그래, 푸념은 이 정도만 떨자. 부정적인 측면만 자꾸 부각시키면 스스로 위축된다. 못난 민족이란 것도 알고 보면 올바르지 못한 선택으로 실책이 누적된 결과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못하기에 남이 끼어들어 주객이 전도된 과거 역사가 바로 타율성의 역사 아닌가. 강대국의 방임을 합리화 하려는 민족자결주의 같은 해괴한 주의·주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비전이 될 만한 사안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왕이면 허파에 뜨끈한 바람을 불어넣을 김칫국 좀 곁들인 통일 후의 상황을 가정하면서, 타율성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강화시킬만한 다음과 같은 비전을 꿈꿔보자.

첫째, 통일 되거든 수도를 최소한 함흥 내지 그보다 북쪽으로 하자는 것이다.
수도가 안락한 곳이면 인구가 집중되면서 국기도 유약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데, 일단 따뜻한 곳에 자리 잡으면 추운 곳에 가기 싫어지고, 상무정신이 쇠퇴한다(崇文輕武).
역사적으로 볼 때도 지방의 변방화, 그중에서도 기후가 척박하고 사람의 기질이 거친 북쪽지방의 변방화는 언제나 망조(亡兆)의 최선봉이었다. 그래서 안온한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북쪽의 거친 기질에 대한 공포심을 해괴한 지적우월감으로 자위하며 북쪽을 천대하는 풍조와 함께 북쪽의 불만을 회피하면서 미래의 분노를 외면했다. 실제로 중국역사에서도 강남으로 내려간 정권 치고 통일은 고사하고 북진하여 영토를 확장한 예가 거의 없다.
우리가 걸핏하면 꿈꾸는 ‘만주수복’이 이루어졌다고 치자. 과연 지금의 서울시민 중에 만주로 이사 갈 사람이 있을까. 스스로 속이는 기분이 들지 않는가. 흑룡강을 건너 러시아가 쳐들어올 때 수도가 서울이면 어떤 정서로 대응할까? 최소한 하얼빈이나 블라디보스토크 정도의 위도에 있어야 비슷한 배짱으로 대응하지 않을까. 만주․연해주의 수복을 도모하려면 최소한 함흥 이북에 수도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수도가 북쪽의 거친 곳에 위치해야 상무정신도 고양되어 북쪽의 거친 땅에 대한 지배가 확립되고, 남쪽 지방으로 다닐 때도 수도 사람의 위세가 서며, 남쪽의 기름진 농토가 도시화로부터 보호된다. 절대로 사람 살기 좋은 곳이 수도가 되면 안 된다. 어차피 수도에는 볼일 보러 올 사람 많으니 굳이 눌러 살기 좋을 필요가 없다. 역사적 후퇴는 수도의 남하와 비례했다는 점, 북쪽 변방의 상실은 국운의 위축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거주편의성 기준으로 영토를 평가하고 수도를 정하면 절대로 안 된다.
독도, 백두산, 간도, 대마도… 핵심이익이 걸린 모든 곳은 거주편의성 기준이 아니다.

서울집중의 해법
둘째, 우선 국토의 최외곽 종단부 위주로 대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중심부 개발 후 주변부로 확장하는 것이 아닌, 변방의 개발로 반대편 변방과 국토의 연결동기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진취적인 사람의 비중도 높아지고, 국내 소통의 수요도 저절로 생긴다.
만일 미국에 태평양 연안의 시애틀,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같은 대도시가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중서부 지역은 변방으로 퇴락했을 것이요, 동부 쪽의 인구밀집지역의 상황에만 코 꿰어 사는 벽촌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태평양 쪽에도 인구밀집지역이라는 시장과 해외로 나갈 항만이 있으니 양쪽을 비교하며 선택할 입장으로 격이 올라가고, 동쪽 끝과 서쪽 끝 사이에서 발생하는 비교우위 차이 때문에 동서간의 철도·도로가 놓이게 되어 그 사이에 위치한 중서부는 교통의 혜택까지 듬뿍 누릴 수 있어 지리적 가치가 올라간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에 서울·인천 간만 소통하고 서울 반대편에 대도시가 없다면 어떻게 됐을까. 고속도로나 철도가 필요 없을 것이고, 수도권을 벗어나면 차량이 제대로 다닐 곳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방으로의 길을 닦으려면 향후 그 사용목적이 뚜렷해야 함은 물론 수많은 예산이 매몰비용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당장의 쓰임새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부산·광주 같은 대도시 때문에 이들을 서울과 연결하느라 그 중간에 대구·대전 같은 도시가 융성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철도와 고속도로를 기준으로 다른 도시들이 융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이루어지는 데는, 한양중심이었던 조선시대엔 이들 지역이 전부 변방이었던 반면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우리 땅의 끝부분들이 도시화되면서 이를 연결하는 철도와 국도가 깔리고 전체적으로 소통이 되었다는 불편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구상은 통일 이후의 모습에 미리 대입되도록 생각해두어야 할 것이다. 즉, 국토의 변경에다 대도시를 건설해 국력투사를 통한 영토고권 확립에 용이하도록 하고, 그 대도시를 프렉탈 구조적으로 성장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프렉탈 거점들을 다른 프렉탈 거점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전국토의 교통망 수요가 형성되며, 그 교통망이 국토전체를 커버하게 되어 각종산업의 연관효과를 증대시키게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지금처럼 서울 위주로 집중하다가 지방의 종합병원이 전부 문 닫게 된다면, 이를 전부 서울에서 처리해줄 수 있는가. 지방에 사람이 살겠는가. 이러다간 지방이 우리나라 땅이 아닌 것 같은 의심이 누적될 것이다.

식량난 대책
셋째, 농토보전과 농촌 인프라를 위해 소농촌의 철거로 농촌 대형화를 도모해야 한다.
언제까지 가난을 농촌의 모범으로 내세울 텐가. 이제 농촌은 인간정서를 논하는 문학가의 시선이 아닌, 국가존립을 논하는 전략가의 시선으로 평가해야 한다. 농촌은 ‘경제’ 문제로 보아야 할 게 아니라 ‘동원’ 문제로 보아야 한다. 가령, 경제문제로 보면 ‘소비’가 미덕이나 동원문제로 보면 ‘절약’이 미덕이다. 식량은 생활수준이 아닌 생존차원에서 다룰 문제다.
사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이 23%인 반면 북한은 60%나 된다. 그럼에도 우린 비만에 시달리고 북한은 기아에 허덕인다. 만약 우리가 해상봉쇄를 당하면 모든 물자에 앞서 식량이 첫 번째 문제가 된다. 현재 장기적 저곡가 상황 때문에 우리는 생활차원에서는 이를 간과하고 있다. 경제문제로 그리 크게 작용하지 않으니까 더더욱 그렇다.
식량문제로 외부에 코 꿰이지 않으려면, 한정된 국토에서 도시화로부터 농토를 보호해야 한다. 농업에 적합한 토양이나 기후환경을 최대한 피하여 도시화를 기해야 하고, 소규모 농촌을 통폐합해 경지를 확보함과 아울러 농촌 인프라의 경제성도 높여야 한다.
깊은 산속의 5가구 마을, 여기에 맞춰 전기, 통신, 도로, 상하수도 등 SOC를 일일이 충족시켜줄 수는 없다. 이들 마을을 통합해야 SOC 설치비용이 낮아지고 밀렵 장물아비도 줄어들어 환경보호에도 좋고, 나름의 시장도 형성되어 주민 소통과 물류, 교육, 행정, 치안에도 편리해진다. 무슨 사태가 발생해도 집단의 규모 때문에 해결의 지혜를 창출하기 용이하다.
농촌인구를 늘이지 않고도 농촌의 공동화를 방지하고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대형 SOC의 관리에도 좋기에 노동력이 적게 소요되는 상시관리형 대형산업을 유치하기에도 좋다. 가로림만에 세계최대의 조력발전소를 세우면, 당진화력과 함께 관리하도록 주변농촌을 해안에 하나로 취합하면 농업과 발전(發電) 모두 관리할 수 있다. 농촌이 훨씬 덜 적적할 것이다. 정차지점이 적어지고 승차인원은 많아지니 마을버스도 운행의 경제성이 나아지고 지역경제도 엄청나게 상승할 것이다. 세계적인 메뚜기 떼 창궐로 식량난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때 현실적인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국방비와 경제발전은 비례관계
넷째, 국방비 증강과 핵·우주 개발을 견지해야 한다.
우리가 거꾸로 아는 것이 있다. 국방비는 비용요인이라는 것 말이다. 틀린 말이다. 좀 이상한 표현처럼 들릴지 모르나 시장경제국가의 경제발전은 국방비에 비례한다. 이는 시장경제의 후방연관효과에 따른 승수효과 때문인데, 궁극에 있어서는 모두 인건비를 통하여 국가경제에 대한 총수요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주의국가에서는 인건비가 거의 없거나 매우 낮기 때문에 그로 인해 국방비만큼 타 분야에 대한 희생, 즉 기회비용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국방비와 국가경제는 반비례한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국방예산의 비중이 가장 높았던 때에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다. 레이건의 스타워즈 소동으로 인한 과도한 국방비로 소련 경제가 주저앉은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국방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 국방비 지출이 적은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자기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보는가. 공격수단이 평화라고? 올림픽 정신을 평화라고 알고 있지만 알고 보면 올림픽이나 스포츠의 평화정신은 경기가 평화로워서가 아니라 전쟁 대신 게임으로 승패를 가린다는 뜻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평화는 냉전을 의미한다. 결국 평화도 군비와 전의(戰意)로 유지된 공포의 균형이지, 평화숭배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평화를 숭배했던 국가들, 과연 거기서 인권과 진정한 평화가 제대로 보장되었나.

적극적 평화(Pax)
우리는 또한 우주개발과 핵 개발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본다. 그래서 이 분야에 대해선 북한보다 인식이 낮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무용지물이고 국가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이들 분야에 대한 필요성을 애써 부인한다.
그렇다면 우주개발과 핵무기 경쟁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는 나라들은 우리보다 머리가 나빠서 그러는 것일까. 그들은 열전에서의 승전가능성을 남에게 각인시켜서 냉전에서 우세를 차지해 국익을 보호하려는 진정한 평화정신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적극적 평화(Pax)를 위해 그들은 패권을 추구하는데, 우리는 겨우 별스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Peace) 그 이상의 인식은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의 경쟁에 참가하지 못하는 국가와 민족은 알게 모르게 열등한 수준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열등하다. 과학분야 노벨상 통계를 보라. 우린 아제르바이잔보다 못하다. 우리도 자율성의 확보, 즉 제 목소리를 낼려면 최소한 열등한 존재로 보이지 않도록 국방비 증강과 핵·우주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미군의 북한 주둔 전략
다섯째, 비전이라기보다는 음울한 예상을 추가해 대비와 극복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번에 한미 간에 합의된 동맹위기관리각서에서 한미연합사는 미국 유사시에 한국군을 동원 못하고, 오로지 한반도 유사시에만 한미연합사를 가동하기로 하는 식으로 한국만 일방적으로 미국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 합의했다고 한다. 대개 불평등합의가 강자 위주로 배려하는 것을 볼 때 이는 미국을 최대한 약 올려서 한미동맹을 파기할 단초를 마련하려는 ‘역’ 불평등합의라고 봐야 한다. 최근 이를 두고 주독미군이 일방적으로 철수하듯이 주한미군도 일방적으로 철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본다.
그 이유는 북한이 길목국가에서 중심국가로 변신하는 제2의 폴란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북한이 원해서라기보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전략적 가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군은 한국이나 독일처럼 미군주둔에 대해 걸핏하면 반감을 드러내며 부대 정문을 가로막고 시위하는 곳이나 아프간처럼 피아식별이 불가능한 게릴라전으로 휩싸인 곳을 싫어해서, 주둔국(북한) 정부가 자체적으로 부대 주변을 조용하고 안전하게 통제해 주민과의 마찰요인을 없애줄 수 있는 곳을 원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집권자와 죽만 잘 맞으면, 민주국가보다 독재국가가 주둔하기 훨씬 수월하다. 이런 요건을 충족하는 곳이 북한이고, 덤으로 전략적 가치도 남한보다 높은데다 앞서 언급한 ‘북한을 통한 남한에 대한 통제’라는 선물까지 제공한다. 그 실례로 이번에 탈북자에 의한 대북전단살포에 대해 김여정이 짜증스런 소리 한마디를 내뱉은 지 단 하루 만에 국회에서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안’이 나오고, 경기도지사의 ‘현장체포’ 발언이 나오는 것을 보면, 북한이 남한에 대한 상전임이 확실하지 않은가. 이 정도면 북한만 잡으면 남한은 북한에 의해 저절로 통제된다고 봐야한다.
미국에게 이렇게 좋은 북한을 만일 전면전을 치르고 장악해 미군이 직접 통제하려면, 안 그래도 특수부대 출신 실업자들이 득시글거리는 북한은 이라크·아프간 저리가라 할 정도로 게릴라식 공격이 심해 오히려 주둔할 맛이 떨어질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미국이 전면전이 아닌 수단으로 북한을 최대한 어르고 달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으로 해석하면 지나칠까. 어쨌든 미군은 북한에 주둔할 계기를 포착하면 과감하게 일방적으로 철수할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북한에 주둔할 것이다.
꼴에 우리가 달랑 믿는 거라곤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지정학적 위치였는데, 실상이 이 정도 밖에 안 된다. 우린 타율성이 체질에 맞는 열등한 존재가 맞나 보다.
 
재해석되는 탄허스님의 예언
그래서 그동안 횡행하던 예언도 새롭게 해석된다. 탄허스님 얘기로 마무리 짓자.
탄허 스님은 “월악산 꼭대기 영봉 위에 떠오르는 보름달이 산 밑의 물 위에 비치기 시작하면 그로부터 30년 뒤 여자 임금 나온 후 3~4년 뒤 통일된다.”고 70년대에 예언을 했다. 충주 월악산에 산봉우리가 비칠만한 물이 없었는데 왜 그런 예언을 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1983년 내가 고교시절 월정사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마침 탄허 스님이 입적해서 제단을 차려놓은 걸 보았다. 물론 당시엔 탄허 스님이 어떤 분인지 몰랐지만, 그 후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었다.
충주댐에 물이 차기 시작하자 월악산 위에 뜬 달이 물에 비치기 시작했고, 충주댐이 완공된 지 약 30년 후인 2013년 2월 대한민국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그로부터 3년이면 2016년이나 2017년에 통일이 되었어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어 예언은 빗나가버렸다.
그런데 지금 하필이면 북한에서 김정은이 죽었는지 김여정이 탈북자들이 대북전단 뿌리지 말라며 여왕행세를 하고 있다. ‘여자 임금’은 대통령이 아닌 왕이라고 본다면, 김여정이 여자임금인 셈이다. 어쩌면 충주댐 완공시기보다 댐에 물이 완전히 찼던 시기로부터 환산하면 김여정이 30년째에 해당하는지도 모른다. 그럼 이 상태로 가다가 3~4년 내로 통일이 되려나? 설마 북한주도의 통일은 아니었으면 하는데, 하필 이맘 때 들어선 남한의 국회가 북한에 저자세를 노정하는 걸 보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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