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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의 코스타리카 지나 북·중미의 끝단 파나마로

기사승인 2020.05.29  17: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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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힘이 되어준 한국인의 정… 행복했던 파마나시티의 2주일

고물가의 코스타리카 지나 북·중미의 끝단 파나마로 
큰 힘이 되어준 한국인의 정…  행복했던 파마나시티의 2주일

코스타리카에 들어서니 본격적인 열대우림이 시작된다. 이제 남미가 멀지 않았다. 다른 중미 국가보다 물가는 2배나 비쌌지만 미 해병대에서 26년이나 근무한 테드를 만나 큰 힘을 얻었다. 하지만 똥개에 물려 놈들과 한바탕 전쟁도 치르는데…. 이제 북·중미를 통틀어 최남단의 파나마로 넘어간다. 한국에서 보낸 물품을 기다리며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평범한 일상 같은 2주일을 보낸다. 푸짐한 자전거 용품을 파나마까지 보내주신 숍 사장님, 2주일이나 방을 내준 한식당 사장님… 먼 이국에서 느끼는 한국인의 정이 눈물겹다 

 

297일 째

풍요로운 해변 코스타리카, 해병 테드
스페인어로 ‘풍요로운 해변’이라는 뜻의 코스타리카는 이번 여행의 여덟 번째 나라다. 중앙아메리카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코스타리카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그 이유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짙은 녹색의 열대우림의 조화가 정말 아름답기 때문이다.
바다를 곁에 두고 두바퀴를 굴리는 기분은 참 오묘했다. 태평양이 빚어 놓은 1200km의 긴 해안선은 자연이 준 특별한 선물이리라. 무의식적으로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사이 바다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와 두 눈을 자극하며 반짝거리는 수평선. 자전거를 타는 매순간이 휴양으로 느껴졌다.

코스타리카의 비싼 물가
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달콤한 코스타리카 여행에도 이면이 존재했는데 그건 바로 높은 물가다. 내가 좋아하는 콜라의 가격으로 비교하자면 멕시코, 온두라스, 니카라과는 1.25리터 콜라가 대략 1달러. 하지만 코스타리카에서는 같은 용량의 콜라가 무려 2.5달러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갈증에 찌들었을 때 시원한 콜라 한 모금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라면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는 과일을 구입하기 위해 도로변의 구멍가게에 들렀다. 사과와 망고가 한 개에 600콜론(한화 1000원 정도)이라는 가격을 알고 난 후 계산대에 올려두었던 것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조금이라도 싼 과일을 사려고 종류별로 가격을 물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바나나 한 개의 가격은 50콜론. 바나나 6개를 사서 패니어 가방에 넣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코스타리카에서는 바나나로 배를 채우며 여행해야겠구나.’
해 지기 30분 전에 파리타(Parrita)에 도착했다. 조금 더 이동하려고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어둠이 짙게 깔릴 때까지 잘 곳을 찾지 못했다. 칠흑 같은 도로 위에서 전조등 불빛만을 의지한 채 1시간을 더 달렸다. 지평선 끝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인적 없는 길에서 화물차 운전수를 상대로 음식을 파는 식당이었다. 주인에게 가게 옆 들판에 캠핑을 허락 받았다. 고마운 마음에 콜라를 하나 샀다. 온종일 자전거를 타고 마시는 시원한 콜라 한 모금은 온몸을 짜릿하게 비틀었다. 주인은 내가 나가자 철문을 걸어 잠그고 자물쇠를 삼중으로 채웠다. 무뚝뚝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취사를 하고 있을 때 다시 와서 수돗가 위치를 알려주고 밤에 무슨 일이 생기면 철문을 두드리란다. 
이튿날, 오전 6시에 눈을 떴다. 떠날 채비를 마친 후 주인에게 인사를 하려고 철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어서 그냥 떠난다. 도로에 들어서니 지난밤 하염없이 달렸던 어둠의 길은 야자수가 빼곡히 늘어선 도로였다. 바야흐로 나는 열대우림의 심장에 서 있는 것이다. 적절한 햇살과 바람. 하늘과 배를 맞대고 있는 지평선. 태어나서 처음 마주한 자연 속에서 나는 묵묵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진짜 사나이 테드
해안도시 도미니칼(Dominical)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웃통을 벗고 자전거를 타는데, 건장한 중년이 뒤에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자유를 상징하는 독수리 문신이 인상적인 테드는 미 해병대에서 26년간 근무하고 은퇴한 퇴역군인이다. 한마디로 그는 ‘상남자’란 소리다. 나는 캐나다에서 코스타리카까지 10개월에 걸쳐 여행 중이라며 자기소개를 했다. 내 소개를 들은 그는 감명 깊은 한 마디를 남겼다.
“You are animal!(너는 동물이야!)” 
나에게 강한 녀석이라며 칭찬해주는 그 또한 극한의 도보여행,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4000km를 완주한 열혈 사나이다. 테드는 도미니칼의 현지식당으로 나를 안내했다. “너는 칼로리 높은 음식이 필요해”라며 웃음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웃통을 벗고 자전거 타는 사나이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테드는 자전거여행에 관심이 많았다. 2년 안에 자전거로 미대륙 6000km를 횡단하고 싶다며 내게 자전거 여행의 고충과 여행 팁을 물었다. 어찌나 열정적이던지 메모장을 펴놓고 내가 하는 말을 적더라. 사람이 그리웠던 나는 입에 모터를 단 듯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테드에게 미 해병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국방력 세계 1위인 미국과 북한이 전쟁 나면 어떻게 되냐고 묻자 테드는 손가락으로 V를 그리며 이틀이면 북한은 초토화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요즘 미사일은 땅속으로 100m 이상 뚫고 들어가서 폭발하기 때문에 땅속에 숨어있어도 다 소탕할 수 있단다. 며칠 동안 하늘에서 폭탄 비가 내릴 거라는 그의 말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러면서 그는 전쟁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되며, 21세기 인류는 평화 속에서 살아갈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야기가 무르익는 동안 음식이 나왔다. “너에겐 단백질이 곧 연료”라고 말하며 테드는 내게 음식을 덜어주었다. 바나나와 빵만 먹으며 자전거를 타던 가난한 여행자에게 그가 대접한 음식은 굶주린 허기와 시린 마음을 채워주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던 그는 가슴이 뜨거운 미 해병이었다.

 

298일 째
똥개와의 전쟁을 선포하다
야자수의 널찍한 이파리 틈새로 아침햇살이 새어 나왔다. 무료 캠핑장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사실 간밤에 만난 캠핑장 호스트가 나를 배려해줘서 공짜로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지낸 것이다. 눈을 뜬 시간은 오전 6시. 주섬주섬 텐트를 정리하고 자전거에 짐을 실으면 대강 1시간이 걸린다. 여행자는 다시 길 위로.
물가 비싼 코스타리카에서 벌써 4일 째 라이딩이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며칠 째 계속 되는 라이딩은 이따금 여행자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점차 날짜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이를테면 이틀 전이 어제 같고 어젯밤이 조금 전 같은 느낌. 하루하루가 다른 날이 아닌 긴 하루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기분이다. 
야자수가 울창하게 우거진 초록의 길을 내리 달렸다. 어느새 은은한 햇살은 강렬해져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을 더욱 강조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 넝쿨이 뒤덮인 정글이 펼쳐졌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햇살이 강한 오후에는 사막을 달릴 때처럼 머리에 물을 끼얹으며 자전거를 탔다. 그러다가 오후 4시가 넘어가면 햇빛은 급격히 부드러워진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평지에 바람도 선선하다. 온 종일 라이딩으로 온 몸은 땀범벅. 시속 30km 속도로 정글을 항해하는 항해사는 전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온 몸의 땀이 증발하는 감촉을 느꼈다. 게다가 10시 방향에 야자수 사이로 선명한 무지개가 다리를 놓아주니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은 쾌락의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항해사는 흥분해서 허공에 주먹을 지르며 소리를 질렀다. 이런 게 진정 자전거 여행이지!

똥개한테 물린 날
목표했던 100km 라이딩을 마치고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캠핑을 할 만한 넓은 들판을 발견하고 자전거를 세웠다. 길거리에 온갖 고철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치안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근처 민가 주인에게 들판에 텐트를 쳐도 괜찮은지 묻기로 했다. 민가에 다가가자 똥개 두 마리가 사납게 짖으며 나에게 들이닥쳤다. 항상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집 주인과 이야기 하는 사이 똥개 한 마리가 내 왼쪽 정강이를 물었다. 순간, 당황함과 함께 단전에서부터 깊은 분노가 느껴졌다. 마치 아카테낭고 활화산이 머리맡에서 “펑!”하고 터지는 듯했다.
“악!!!”
분노에 휩싸인 나는 고함을 치며 똥개한테 발길질을 했다. 똥개의 결투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얼른 주변에 보이는 돌멩이를 주워들었다. 그동안 개한테 쫓기던 원한을 돌멩이에 실었다. 내 정강이를 문 똥개는 헐레벌떡 주인에게 도망쳤다. 주인은 똥개 대가리를 한 대 때리고 집으로 들어간다. 나에게 사과의 말도 없이 말이다. 나를 문 똥개의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혹여나 광견병에 걸릴까 걱정되었다. 광견병 바이러스를 가진 동물에게 사람이 물리면 급성뇌척수염을 야기할 수 있다. 다행히 왼쪽 정강이는 피가 나지 않고 개 이빨자국만 선명하게 남았다.
똥개 때문에 민가에서 20m 이상 떨어진 곳에 텐트를 쳤다. 만약 똥개들이 텐트까지 쫓아오면 제2라운드 어웨이 경기를 펼치리라. 반들반들한 돌멩이를 텐트 입구에 놓고 저녁을 준비했다. 분이 풀리지 않아 예정에 없던, 아끼는 참치 캔도 하나 땄다. 30분쯤 지나자 불청객들이 다시 텐트 주변에 모여들었다. 시끄럽게 짖어대는 통에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텐트 지퍼를 열어젖히고 돌멩이를 들고 똥개한테 돌진했다. 똥개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놓았다. 텐트로 돌아와 숟가락을 들면 개 짖는 소리는 다시 재생. 똥개와의 전쟁은 어둠이 짙게 깔리고 한 밤중까지 끝나지 않았다. 이후, 여행을 끝마칠 때까지 나는 개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306일 째
북미·중미의 종착지 파나마시티를 향하여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두 대륙 사이에 마치 다리가 놓인 듯 이어져 있는 나라 파나마. 태평양과 대서양을 이어 세계의 십자로라 불리는 파나마는 이번 여행에서 중앙아메리카의 마지막 종착지다. 국경에서 수도 파나마시티(Panama City)까지는 대략 450km. 하루 100km씩 5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닷새 동안 매일 캠핑을 하며 남쪽으로 향했다. 아침에는 빵과 우유로 허기를 채우고 점심은 라면, 저녁은 텐트에서 취사를 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여행’이 ‘일상’이 되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이국적 풍경을 마주하고, 색다른 문화를 접하며,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여행 자체가 어느새 익숙한 반복 속에서 일상의 모습으로 변모한 것이다. 
하루는 슈퍼마켓 옆 그늘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슈퍼마켓 주인은 세 살배기 아들을 안고 나와서 나에게 인사했다. 그는 중국어로 말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 주인은 안고 있던 아들을 품에서 내려 악수를 시켰다. 친절한 중국인이라 생각하고 다시 길을 떠났는데, 이후 들리는 슈퍼마켓은 죄다 중국인이 운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쯤 되면 굉장히 궁금해졌다. 파나마에는 왜 이렇게 중국인이 많은 걸까? 그 이유는 파나마의 역사를 파헤쳐보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지중해와 인도양을 잇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처럼,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운하는 1881년부터 1914년까지 33년에 걸쳐 완공된 방대한 인공수로다. 세계적인 사업이었던 파나마 운하 건설에는 4만여 명의 노동자가 투입되었는데 이 중에는 중국인 이민자가 대다수였다. 1914년 운하가 완공된 이후에도 중국인 이민자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파나마에 정착했다. 그 결과 100년이 지난 현재에도 파나마에 많은 중국인 교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만남, 소중한 나날
파나마시티까지 닷새 동안의 여정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소방관의 집에서 캠핑을 했던 밤. 홀로 빵을 먹던 내게 콜라를 건네주는 현지인을 만난 아침. 다리 밑 계곡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수영을 했던 정오. 자전거를 타던 중 왼쪽 팔뚝에 벌침을 쏘였던 오후. 증조할아버지가 중국인이라는 현지인의 집에 초대받았던 저녁…. 많은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파나마시티 근방까지 도착했다.
대도시가 가까워지자 대형 쇼핑몰이나 높은 고층빌딩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아진 자동차 때문에 도로가 붐볐다. 자전거에 관대하지 않은 운전자들은 클랙슨을 길게 울리며 나를 위협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사고가 날 것 같아 핸들을 한껏 세게 움켜쥐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달렸을까. 전방에 철교가 보였다. 파나마시티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다리다. 차량의 속도가 빠르고 갓길도 없었지만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철교를 건너기로 했다. 아예 도로 한 가운데서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치형철교를 중간쯤 건너자 트럭 한 대가 뒤에서 나를 엄호해주며 천천히 따라왔다. 작은 배려에 감동을 느낀 나는 트럭 운전자에게 고마움의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윽고 오르막의 정점을 찍은 자전거는 중력의 힘을 받아 빠른 속도로 미끄러졌다. 중미의 끝자락 파나마시티에 입성하는 순간이었다. 속도계에는 누적 거리 1만km가 찍혔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기쁨에 젖어 한 동안 거리를 거닐며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기를 반나절.
‘이젠 어디로 가지?’라는 1차원적인 물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새로운 자극을 찾아서. 새로운 무대로. 나는 남아메리카로 건너갈 상념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324일 째
파나마시티에서 느낀 한국인의 정
파나마시티에 도착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았다. 우선 그동안 여행을 하며 닳아버린 타이어를 교체해야 했다. 하지만 중앙아메리카에서 자전거 시장이 가장 발달한 파나마시티에서도 내가 원하는 타이어를 찾을 수 없었다. 마침 한국에서 자전거 숍을 운영하시는 분이 타이어를 포함한 자전거 용품을 보내주겠다고 연락을 주셨다. 한국에서 파나마까지 택배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주. 즉, 파나마에서 2주 이상 체류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파나마에서 남아메리카의 콜롬비아로 넘어가는 방법에는 배편을 이용하는 것과 비행기를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가격을 비교해보니 항공편으로 가는 것이 20만 원 정도 저렴해서 남미는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오래 머무를 곳이 필요했다. 혹시 파나마시티에 있는 한인교회를 찾아가면 한인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해질녘에 찾아간 교회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하는 수없이 이 날은 호스텔에 머물렀다. 이튿날부터 한식당을 돌아다니며 당분간 지낼 곳을 찾아다녔다. 처음 보는 분들께 다짜고짜 빈방이 있는지, 며칠 지낼 수 있을지를 물었다. 참 뻔뻔하고 이기적인 질문이었다. 이런 내 모습이 간절해보였는지 두 번째 방문한 식당 사장님은 고민 끝에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해주셨다.

파나마시티로 향하는 마지막 철교

 

파나마시티의 생활
사장님은 파나마시티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높은 빌딩에 살고 계셨다. 덕분에 파나마시티의 도심 풍경을 매일 조망할 수 있었다. 
산과 들, 바다와 평야만 스쳐지나온 자전거 여행자가 도심 한가운데서 마주하는 풍경은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매일 한식을 대접해 주셨다. 남미로 떠나기 전에 파나마에서 체력을 보충하라 말씀하시며. 여행을 떠난 후 한식은 입에 대지도 못했던 내게, 사장님이 해주시던 한식은 최고의 만찬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내 생일이었다. 사장님이 식당에서 지인들과 함께 조촐한 생일파티를 열어주셨다. 생일케이크를 대신한 김치전 앞에서, 촛불 대신 라이터 불을 켠 채 1.5배속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약간은 터프했지만 스물일곱 번째 생일은 특별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앞에서 온화한 이야기가 무르익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다음 여행지는 어디인가?’로 귀결되었다. 나는 타이어를 받는 대로 콜롬비아로 향한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있던 분들은 나를 회유했다. 콜롬비아가 위험하기 때문에 에콰도르로 갈 것을 제안했다. 걱정은 감사했지만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새로운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이어질 거예요. 지금처럼 말이죠.”
4월의 파나마는 우기가 시작하는 시기. 한국의 장마처럼 매일 비가 내리지는 않지만, 한번 비가 내리면 몇 시간 동안 억수같이 쏟아지는 바람에 길가의 아스팔트가 빗물에 잠겨버리곤 했다. 우산을 쓰고 다니며 파나마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 비와 조화되어 살아가는지 관찰했다. 파나마시티에서 지낸 2주 동안은 여행 속에서 일상을 마주한 시간이었다. 근처에 있는 파나마운하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도심을 둘러보는 게 더 즐거웠다. 가벼운 복장으로 산책을 하며 현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게 내게는 더 여행 같았다. 느닷없이 불쑥 찾아온 불청객에게 단지 동포라는 이유만으로 성심껏 챙겨주신 한식당 사장님. 그리고 한국에서 자전거 용품을 보내주신 자전거 숍 사장님은 여행을 떠나지 않았으면 느낄 수 없었을 격려와, 한국인의 정을 지구 반대편에서 느끼게 해주셨다.
자전거 용품이 가득 담긴 택배를 받고 타이어를 교체한 나는 콜롬비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 남아메리카다! 

 


김민형 여행작가 blog.naver.com/alsgud0404

<저작권자 © 자전거생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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