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공업으로 국민 먹여 살리는 나라의 곳간

수원 속속들이
농·공업으로 국민 먹여 살리는 나라의 곳간

수원은 광역시인 울산보다 인구가 많지만 서울의 그늘에 가려 위상이 그리 높지 않고 세계문화유산인 화성(華城)이 유일한 명소처럼 알려져 있다. 하지만 120만 대도시의 품속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호수가 곳곳에 있고, 시내를 부채살처럼 흐르는 하천에는 자전거도로가 잘 가꿔져 있어 친근하고 푸근한 느낌을 준다. 외곽에는 산뜻한 신도시까지 들어서서 세련미와 대도시의 위용을 더한다. 근대농업의 본산인 서호 일원과 삼성전자가 터 잡아 나라를 먹여살리는 수원은 볼수록 깊고 새롭다

화성 최고의 절경 방화수류정과 용연을 배경으로. 화성의 동북각루를 겸한 방화수류정은 자유로운 건축미와 입지, 이름의 유래, 조망 모든 점에서 조선조 사대부문화의 상징인 정자의 최종판이다

 

코스  
광교저수지→수원천→영연교(다리)→수원종합운동장→만석거→영화천 자전거길→서호천 자전거길(북상)→해우재→서호천→서호→옛 수인선 자전거길(수원비행장 북단)→새터지하차도(경부선 아래)→수원천(북상)→화성(방화수류정)→창룡문사거리→43번국도(동수원IC 방면)→여천 자전거길→광교카페거리→광교호수공원→원천리천자전거길→곡반정교(버스터미널 방면 서향)→수원천(북상)→광교저수지. 49km, 5시간 소요. (해우재 구간을 생략하면 7km 정도 줄어듦)

Tip
광교저수지 입구에 대규모주차장이 있다. 3~6시간 주차료가 3000원으로 저렴하다. 수원은 한때 전국최대의 우시장이 열려 예로부터 소갈비가 유명하다. 수많은 갈비집 중에서도 수원사람들은 우만동 소재 본수원갈비(중부대로 223번길41, 031-211-8434)를 최고로 친다. 언제나 만원이어서 예약은 받지 않는다. 생갈비(450g, 뼈 두 대) 4만9000원, 양념갈비(450g, 뼈 두 대) 4만5000원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푸짐한 양과 깊은 맛을 보장한다.

 

노송이 운치 있는 서호의 둑길

 

수원은 억울하다. 서울의 위성도시라기엔 거리가 다소 있고, 인구가 120만이나 되어도 수도권에 딸려 광역시 대접을 못 받는다. 명소라고는 화성(華城)뿐이고, 먹거리는 전국 어디에나 있는 갈비 정도라고 외지인들은 생각한다. 
수원은 잘 알려진 대로 조선조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조성하면서 키운 도시다. 1784년부터 성곽을 쌓았으니 국내최초의 계획도시라고 해도 될 것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수원은 곧 화성 5.7km 성벽에 둘러싸인 성곽도시였지만 이 구역은 현재 시가지의 3%도 되지 않는다. 
화성은 여러 번 가보았지만 그밖의 수원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냥 지나치는 도시였다고나 할까. 수원 지도를 자세히 보니 예상 외로 자전거도로가 많다. 크게 보아 서쪽부터 황구지천, 서호천, 수원천, 원천리천 4개의 하천이 시내를 흘러 남쪽에서 본류인 황구지천으로 모여들고 곳곳에 있는 대규모 호수공원과 연계되어 천변과 노변에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4개 하천, 5개 호수를 엮는다
취재팀은 북단의 광교저수지에서 출발해 하천길과 도로를 섞어 만석거, 서호, 원천저수지, 신대저수지 등 5개 호수를 돌아보는 여정을 짰다. 수원에 거주하는 본지 편집위원 이홍희 전 해병대사령관이 코스를 만들고 취재팀을 안내해 주기로 했다. 일행은 차백성(자전거여행가), 김태진(전 코렉스스포츠 대표) 그리고 필자가 함께 했고 조용연 여행작가는 점심 때 합류해 명성 높은 수원갈비를 맛보게 해주었다.   
하천과 저수지가 이렇게 많아서 수원(水原)일까 싶지만 지명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황구지천에 홍수가 잦아서 옛날부터 물이 지명에 들어갔다. 고구려 때는 매홀(매는 물의 고어), 신라는 수성(水城), 고려는 수주(水州)와 수원(水原) 등으로 모두 ‘물 고을’을 뜻한다. 하지만 홍수 때 외에는 늘 물이 부족했다니 물이 많기를 갈망하는 역설의 지명인지도 모르겠다. 
광교저수지에서 수원천을 따라 잠시 내려가다 서쪽으로 도로를 따라간다. 기특하게도 수원의 간선도로에는 대부분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잘 나 있어 안전하고 편하게 라이딩 할 수 있다. 수원케이티위즈파크 야구장을 끼고 돌면 수목이 우거진 만석거(萬石渠)다. 가뭄대책으로 1795년 축조된 거대한 인공저수지다. 주변이 매립되어 지금의 모습은 원래의 1/3 정도라고 하는데 현재도 폭이 430m나 된다. 중간에는 경관의 화룡점정을 이루는 인공섬이 떠 있고 호반의 영화정에서는 호수를 조망할 수 있다. 이 만석거 하나로도 구도심의 후줄근함과 거리의 살풍경은 차분하고 여유롭게 정화된다. 만석거가 옛날에는 가뭄을 막아 풍년을 예약해주었다면 지금은 벚꽃이 만발하고 연꽃이 우아한 도심의 쉼터로 큰 역할을 한다.  
    
해학과 근엄함의 공존 
만석거에서 서호천 상류인 영화천 자전거길을 따라 남하하다 서호천 상류로 방향을 틀어 북서진 하면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화장실박물관 가는 길이다. 도중에 오른쪽으로 보이는 거대한 SKC 공장은 현재의 ‘선경’이란 이름으로 SK그룹이 시작된 본향이다. 이제 SK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해 수원의 자부심이 되었고 켜켜이 세워진 신식 건물들 사이에 포위된 화학공장은 오랜역사만큼 근엄한 표정으로 남아있다.
영화천 합수점에서 3.5km 북서진하면 시가지 끝자락에 화장실박물관 해우재(解憂齋)가 있다. ‘근심을 푼다’는 뜻의 사찰 화장실 해우소(解憂所)에서 따온 이름에 근엄한 사당에 붙이는 ‘재(齋)’ 자를 붙인 것부터 유쾌하고 익살스럽다. 세계인에게 화장실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세계화장실협회를 창립한 고 심재덕이 자신의 집을 2007년 박물관으로 만들었고 후손들이 2009년 수원시에 기증했다. 
체험학습을 나온 유치원 아이들이 매우 재미있어 한다. 내부에는 국내외의 화장실 문화와 역사가 간략히 소개되어 있고 야외에는 화장실과 관련한 다양한 조형물이 웃음과 함께 추억에 빠져들게 한다. 잘 재현된 제주도의 ‘똥돼지 통시’가 눈길을 붙잡고, 온갖 표정과 자세로 볼일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도 적나라하다. 

 

항주의 서호에 견주다 
다시 서호천을 타고 남하하면 경부선 철길 옆의 서호에 닿는다. 화성 다음으로 잘 알려진 수원의 명소가 서호일 것이다. 원래 이름은 ‘만석의 수확을 기원한다’는 뜻의 축만제(祝萬堤)인데 화성을 축조할 당시 동서남북으로 함께 만든 저수지의 하나다. 길이가 700m에 달할 정도로 큰 서호는 농업현대화의 산실이기도 하다.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 농업기술연구소, 농업기계화연구소, 서울대 농생명과학대 등이 죄다 여기 모여 있었다.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묘도 호반에 있다. 지금은 기관의 대부분이 옮겨가고 국립식량과학원과 연구용 경작지만 남아 있다. 통일벼를 비롯한 수많은 개량볍씨가 여기서 태어나 국민의 배고픔을 없애주었으니 서호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한국인을 살찌워준 고마운 물이다. 
고목이 듬성듬성 고개를 숙인 둑길은 서호가 지켜온 장구한 세월을 말해준다. 남단의 수구문 옆에 있는 항미정(杭眉亭)을 보니 서호(西湖)가 그냥 ‘수원 서쪽의 호수’ 뜻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는 서시(西施)는 항주(杭州) 서호(西湖) 인근 출신으로, 서시가 하도 아름다워 여자들이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까지 따라 해서 ‘동쪽의 서시를 따라 눈살을 찌푸리다’는 ‘동시빈축(東施嚬蹙)’의 고사성어가 생겼다. 빈축은 ‘빈축을 산다’는 표현으로 지금도 흔히 쓴다. 훗날 당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가 항주자사로 있으면서 서호를 자주 읊었는데 ‘항미정’은 항주의 항(杭)과 서시의 눈썹(眉)에서 따온 이름이니, 대단히 풍류적이다. 축만제가 항주의 서호와 같은 서호로 불린 것도 조선 선비들의 모화사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실제 항주의 서호를 가본 적이 있는데, 규모는 수원 서호보다 훨씬 크지만 아기자기한 운치는 수원 서호도 못지않다. 지금 이 땅에는 서시를 능가하는 미녀가 지천이니 서호에서 애써 ‘빈축’을 흉내 낼 일은 없겠다. 

수인선 협궤열차의 그 길 
시외곽이던 서호 이남도 시가지로 차츰 메워지고 있다. 수원비행장 북단에 이르면 작은 철교가 강을 건넌다. 옛 수인천 협궤철로에 조성된 자전거도로다. 새로운 ‘전철 수인선’은 올해 개통 예정으로 공사중이고, 옛 수인선 라인은 여기 정도만 흔적으로 남았다.
전철 1호선이 함께 지나는 경부선 철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원시가지의 서쪽 끝이었으나 이제는 거의 중간쯤에서 시가지를 양분하는 단절선이 되고 있으니 수원의 급속확장을 실감한다. 시가지에 착착 포위되어가는 비행장도 도시의 잠식 앞에 훨씬 외곽으로 옮겨갈 도리밖에 없어 보인다. 그래도 당분간은 전투기가 이착륙하는 장관을 가까이 보고 싶다면 여기, 옛 수인선 자전거길이 최적일 것이다. 
경부선을 지하도로 건너 수원천 자전거길에 오른다. 하천이라지만 개울 정도여서 서울의 불광천과 분위기가 흡사하다.   
팔달문과 지동시장을 지나 남수문에 이르면 이제부터 진짜 옛날 수원, 화성 안으로 들어선다. 여기부터는 오른쪽의 동남각루에서 동벽을 따라가거나 좀 더 북상해 화성행궁과 화성 최고의 절경 방화수류정 등 화성을 구경하면 된다. 여기서는 그대로 직진해 방화수류정으로 향한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전국의 정자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베스트 5 중 하나다. 길고 독특한 이름, 건축 구조와 바닥 모양을 종잡을 수 없는 자유로움, 전투시설인 성곽의 망루를 풍류정신 그윽한 정자로 구현한 역설, 용연을 내려다보며 성곽 위에 우뚝한 웅자까지, 방화수류정은 조선이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 중 하나인 정자의 최종판이다. 
정자 이름은 송나라의 시인 정명도(程明道)의 시 중 ‘雲淡風輕近午天(구름 맑고 바람 잔 한낮에) 訪花隨柳過前川(꽃 찾아 버들 따라 앞개울을 건너네)’ 구절에서 따왔다.   

 

 

놀라운 2층 호수공원
방화수류정에서 북벽을 따라 가다 화성 최고의 웅장미를 보여주는 창룡문에서 43번 국도를 따라 수지 방면으로 접어든다. 동수원IC 맞은편에서 시작되는 여천자전거길에 들어서면 주변풍경이 일변한다. 최신 설계의 고층빌딩과 초고층아파트단지가 즐비한 광교신도시가 시작되는 것이다.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한 신도시이지만 구불대는 여천의 몸놀림을 그대로 살려내 잿빛 직각의 옥죄임을 느슨하게 열어준다. 
이의동 즈음에 여천을 따라 길게 형성된 광교카페거리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커피 볶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고 발밑으로 개울이 흐르는 광경은 커피 한잔의 가치를 폭증시킨다.     
카페거리에서 1km 여 내려가면 시가지가 끝나면서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가 나온다. 둘을 합쳐 ‘광교호수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600m 상류에 있는 신대저수지의 수면이 원천저수지보다 10m 정도 높아서 수면단차를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두 저수지 일대는 매우 다채롭고 멋진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최신의 광교신도시와 어우러지게 자연스러우면서도 꼭 필요한 시설과 넓은 잔디밭, 차분한 산책로, 말끔한 자전거도로가 정말 잘 되어 있다. 전국의 호수공원을 많이 가봤지만 단연 첫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여기서만 천천히 빈둥거려도 반나절은 가겠다. 

한국을 먹여 살리는 도시  
원천저수지에서 원천리천을 따라 2km 내려가면 왼쪽으로 광대한 공단이 펼쳐진다. 바로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수원공장이다. 폭 1.2km, 길이 2km에 달하는 거대한 부지가 모두 삼성전자 공장과 연구시설로 채워져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세계일류기업과 수원의 인연이 특별하다. 서쪽의 서호 일대는 근대농업혁명의 본산이고, 동쪽 삼성전자는 공업입국의 보배이니 수원의 가치와 의미가 남다르다. 그 대단하던 일본의 전자업체 모두를 통틀어도 삼성전자 한 곳의 매출을 넘지 못하니 가장 바람직한 극일의 표본이다. 
곡반정교에서 도로로 올라서서 서쪽으로 3km 가면 앞서 지났던 수원천을 다시 만난다. 여기서 수원천을 거듭 북상해 6km 가면 출발지인 광교저수지 입구 주차장이다. 
수원의 속살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 전진하고 있구나 실감했다. 도심이 슬럼화 되지 않고 점점 더 깨끗해지고 현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천년 간 궁핍에 허덕이던 이 땅을 물산과 부가 넘쳐나는 곳으로 만드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근대화의 두 상징만으로도 수원은 스쳐 지나는 한물 간 도시가 아니라, 묵직한 무게감의 도시로 재인식된다. 세계문화유산이면서 한국적 성곽의 완성판인 화성도 건재하니, 이제는 수원을 지날 때마다 작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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