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이식 자전거로 맛보는 자유와 새 세상

mini 벨로  Big 투어

접이식 자전거로 맛보는 자유와 새 세상
첫 목표는 안양천 종주, 백운호수에는 뭐가 있을까
가볍고 작은 접이식 자전거를 마련해 본격적인 ‘자전거생활’을 시작했다. 자전거를 장만한 바로 다음날, 집 근처 안양천 종주에 나섰다. 한강 합수부에서 안양천 상류인 백운호수까지 30km를 거뜬히 달려냈다. 작은 자전거로 느리게 달리면서 보는 풍광은 색달랐다. 모든 것이 정겹고 작은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왕복 60여km를 내 힘으로 완주해냈다. 앞으로 이 녀석과 할 일이 매우 많을 것 같다 

글.사진 : 조기중(전 삼성전자 상무) 협찬 : bb5(비비파이브)

청명한 겨울 하늘 아래 거울처럼 매끄러운 안양천 수면에 하늘과 도시가 담겼다

 

필자는 삼성전자 상무 출신으로 초기 휴대폰 브랜드인 ‘애니콜’에 이어 ‘갤럭시’ 시리즈까지 삼성 휴대폰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접이식 자전거로 국내외를 여행하며 ‘작은 자전거로 큰 그림을 그린다’는 뜻으로 ‘미니벨로 빅투어’라는 테마로 연재를 시작한다 

얼마 전에 지인의 소개로 접이식자전거를 하나 장만했다. 집에 MTB가 한대 있기는 한데 좀처럼 타지 않았다. MTB를 타고 집근처의 일반도로를 다니는 것이 조금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자전거를 편하게 탈 수 있는 안양천이나 한강까지 가지고 가려니 그것도 번거로워 그냥 집에 고이 모셔놓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접이식자전거가 생기면서 갑자기 자전거타기의 매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가지고 장거리를 간다거나 빨리 달리려는 것은 아니다. 차 뒤에 싣고 다니다가 적당한 곳에 내려서 자전거를 펼치고 여유 있게 다녀보면 좋겠다 싶어 장만한 것이다.

귀국 20년만에 결행했던 일본 일주 여행 
몇 년 전에 벼르고 벼르던 30일간의 일본일주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다. 이전까지 일본여행은 동경, 오사카, 나고야, 삿포로, 후쿠오카 등 주로 비행기로 직접 갈 수 있는 대도시 위주의 관광여행이었다. 보통 몇 번 이상씩 가보았고 그러다보니 가볼만한 곳은 거의 다 가봐서 슬슬 식상해졌다. 
이런 데 말고 지금까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 숨어 있는 명승지나 역사소설 속 장소를 묶어 뭔가 주제를 정해놓고 전국일주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주로 소도시 위주로 여행을 계획하고 직접 실행해 본 것이다. 일본은 철도망이 워낙 촘촘하게 잘 구성되어 있어 웬만한 시골마을까지도 열차가 들어가 그런 여행이 가능하다. 그런데 요금이 매우 비싸서 중간급 도시들을 연결하는 특급열차도 우리돈으로 거의 10만원까지 한다. 
정작 일본에 근무할 때도 비싼 교통비 때문에 전국일주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물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일정기간동안 이용할 수 있는 JR패스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진짜 외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만 구입이 가능하고 일본내 거주하는 외국인은 구입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엄두를 못내다 귀국한지 근 20년이나 지나서야 실행하게 된 것이다. 
여행계획은 우선 21일짜리와 7일짜리 패스를 사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 두 장의 패스를 이용하면 거의 한달 동안 일본 전역을 자유롭게 부담 없이 열차로 여행할 수 있다. 여행의 큰 줄기는 일본의 동해안을 타고 올라가 서해안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최남단인 가고시마에서 최북단인 북해도의 왓카나이까지 왕복하는 셈이다.

 

안양천길을 따라가다 보면 금천구 즈음에서 경부선 철로와 잠시 나란히 달리게 된다. 초고속에 거대한 KTX와 초저속에 초미니의 브롬톤이 만났다

 

그때 접이식자전거가 있었더라면… 
중간에 가고 싶은 곳과 그곳까지 가는 열차표를 미리 검색해서 세밀한 계획을 세웠다. 호텔까지 다 예약을 하고 드디어 진짜 배낭을 메고 일본으로 출발했다. 그때 일본여행의 주제는 역사속에 나오는 성(城)을 직접 가보는 것이었다. 이전부터 일본의 성에 관심이 많았다. 성은 건축물 그 자체를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는 전쟁과 삶 등의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에 가서 느끼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다. 사진으로가 아니라 직접 가서 보고  ‘여기서 그때 누가 그랬단 말이지. 그 당시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를 생각하면서 보는 게 참 재미있었다. 
도심지에 있는 유명한 성들은 거의 다 가보았지만 소도시에 있는 성들은 교통문제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가능하면 소도시의 성을 다 보자! 작정하고 여행을 나선 것이다. 그 도시의 역에 도착하면 배낭을 메고 걷거나 버스를 타고 성을 찾아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막상 실행에 옮겨보니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일본의 성은 평지에 있는 평성(平城)과 산에 있는 산성(山城) 그리고 이 둘이 결합된 평산성(平山城)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이 방어에 적당한 요충지에 있어서 역 근처나 시내가 아닌, 멀고 외진 곳에 있다. 역에서 내려 성까지는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거나 걸어가야 하는데 버스는 하루에 3~4대뿐이고, 택시를 이용하자니 잘 가지도 않을 뿐더러 택시비도 엄청나게 비싸다. 걸어가면 1~2시간은 기본이고 어떨 때는 3시간도 걸린다. 걷다보면 배낭이 왜 이렇게 무거운지. 씩씩하게 시작하긴 했는데 3일도 안 돼 기진맥진해졌다. 
나중에는 캐리어를 사서 배낭을 싣고 끌고 다녀 궁색하나마 고충을 해결하기는 했다. 그때 생각한 게 접이식자전거가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싶었다. 접어서 전철에 싣고 목적지 역에 도착하면 펼쳐서 성까지 타고 갈 수 있는 자전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여행 내내 하고 다녔다. 실제로 당시 여행 중에 그렇게 다니는 사람을 만났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그 정도로 접이식자전거가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때 너무 힘들어 포기한 곳을 다음에는 준비를 철저히 해서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중심에는 가벼운 접이식자전거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이 접이식자전거를 장만하게 된 데는 그때의 간절한 바램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지인과 함께 매장에 가서 나한테 맞는 모델을 정하고, 접고 펴는 방법을 교육받으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5번을 접고 나니 딱 바퀴 하나 크기만 했다.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을까? 접은 것을 직접 들어보니 생각보다 가벼워 한손으로도 거뜬하게 옮길 수 있었다. 이 자전거를 타고 다시 여행을 가는 나의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비행기에 싣고, 내려서 전철에 싣고, 역에 내려서부터는 편하게 타고 가자. 그래 이거면 딱 되겠다! 라고.

 

천변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정겨운 모습. 미니벨로로 천천히 달리니 주변의 잔잔한 풍광까지 보인다
개울처럼 좁아진 학의천. 아파트단지의 살풍경을 그나마 희석해준다

 

안양천에서 첫 시승 
자전거를 구입한 바로 다음날 시승에 나섰다. 우선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는 안양천 종주에 도전했다. 안양천의 끝 부분인 한강 합수부에서 시작해 안양천을 거슬러 올라 시작점인 백운호수까지 왕복하는 여정이다. 집에서 12시쯤 느긋하게 출발했다. 겨울답게 날씨는 꽤 추워 핸들을 잡은 손이 시렸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마스크나 방한 장비가 없다보니 겨울의 찬 맞바람에 귀도 얼굴도 시렸다. 따뜻한 봄, 시원한 가을을 다 보내고 하필 이렇게 추운 겨울에 자전거를 타다니 우습기도 했다. 그런데 취미생활이라는 것은 대부분 이렇게 계기가 되어야 시작하게 되나보다. 
천변 길을 가게 되니 그동안 차를 타고 가면서 도로에서나 보던 광경들이 지금은 바로 내 옆에 있었다. 안양천길을 따라 페달을 밟고 가면서 그 속에 온전히 들어가고 있는 느낌은 새로웠다. 천천히 가면서 천변의 겨울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얗게 피어있는 갈대밭과 수크렁들, 물고기를 잡으려고 미동도 않고 수면을 노려보고 있는 왜가리와 가마우지들. 이런 것들이 갑자기 정겹게 느껴졌다. 
광명시를 지나 안양시로 들어서니 햇빛이 드는 천변공원 벤치에 가만히 앉아 말없이 무슨 생각인가를 하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이 추운 날씨에도 반바지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풋살을 하는 학생들… 나랑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인데 이 모두가 참 정겨웠다. 가까이 다가가 말이라도 붙이고 싶을 정도였다. 이런 여유로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백운호수는 어디에? 
안양시내를 지나니 안양천과 학의천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나왔다. 이정표를 확인하고 목적지인 백운호수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개천의 폭은 점점 좁아져 학의천으로 들어서니 2~3m 정도이고 백운호수 근처로 가니 1m 정도의 실개천으로 바뀌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유롭게 주위 풍경을 보며 계속 나아갔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가도 호수가 보이지 않는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게다가 경사도까지 높아갔다.  아니 무슨 호수가 산속에 있는 것일까? 내심 의아해하면서 그래도 보이겠지 하며 계속 진행했다. 그러다 하도 이상해 길가에 서서 지도를 확인해보니 아뿔싸, 호수는 벌써 한참 지났고 지금은 청계산 등산로를 향해서 계속 가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청계사란다. 아까 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너무 여유를 부리다 이정표를 못 본 것이다. 방향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니 그제야 백운호수 이정표가 나왔다. 
백운호수는 이전에 차를 타고 몇 번인가 왔었는데 이렇게 자전거로, 그것도 혼자서 오는 것은 처음이다. 거리를 보니 집에서 30km를 넘게 왔다. 잘 타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게는 꽤나 멀고 긴 거리다. 자전거를 타고 이만큼 온 것만 해도 아마 몇 십 년만의 일인 것 같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구나 하는 작은 성공에 뿌듯함을 느꼈다. 

 

30여km를 달려 백운호수에 도착했다. 이런 장거리(?) 라이딩은 처음이다

 

60km 넘는 종주 성공, 전신을 감싸는 뿌듯함 
호수에는 호반을 따라 나무데크 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걸어서 한바퀴 돌 수 있었다. 그런데 자전거는 출입금지란다. 접어서 메고 가든지 들고 가면 돌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힘이 다 빠져 오늘은 그냥 이 좋은 경치를 본 것으로 만족하자! 하고 호숫가 벤치에 앉아 한참을 쉬며 멋진 경치를 즐겼다. 
시장기가 느껴져 근처 식당에서 막국수를 한 그릇 먹고 집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30km를 다시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힘도 들고 막막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찌하겠나. 여기까지 와서 버스나 전철을 타고 돌아갈 수는 없잖은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장갑도 고쳐 끼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올 때는 여유롭게 주위 경치도 보고 즐겼는데 돌아가는 길은 여유로움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엉덩이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어깨도 아팠다. 경치를 볼 여유는 없어지고 모든 관심은 오직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나 하는 마음뿐이다. 그래도 아까 오면서 눈에 익은 풍경들이 나오니 마음이 훨씬 편해지기는 했지만 힘은 들었다. 
사실 이럴 때는 스스럼없이 자전거를 접어 대중교통을 타고 돌아와야 하는 게 접이식자건거의 장점인데 왜 이렇게 목표의식에 얽매였는지 좀 의아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다시 안양천과 학의천 합수부를 지나 안양, 광명, 금천구를 거쳐 날이 어둑해질 때에야 드디어 출발지인 한강합수부에 도착했다. 자전거에서 내리니 뭔지 모르지만 하나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오늘 탄 거리를 보니 60km가 훌쩍 넘었다. 나로서는 적지 않은 거리를 탄 것이다. 그것도 추운 겨울에 말이다. 비록 몸도 아프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작은 목표를 해냈다는 것이 꽤나 즐겁다. 자신감도 생겼다. 오늘 나로선 쉽지 않은 작은 목표에 성공했으니 다음에는 아라뱃길, 그다음은 한강, 제주도 둘레길에도 도전해야겠다. 그리고 날이 따뜻해지면 ‘오헨로(お遍路)’라고 하는 일본 시코쿠 순례길도 가봐야겠다. 그리고 편한 자전거길만이 아니고 골목골목을 누비고 싶다. 타다가 힘들면 내려서 밀고 가고.

‘꼰대’가 되지 않는 길  
이 친구를 통해 또 다른 새로운 삶이 열릴 것 같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즐기기 위한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과 거기서 오는 즐거움을 통해 영혼을 살찌우는 게 목적이다. 익숙한 것에만 만족하고 적응해 살게 되면 일상이 따분해지게 된다. 심지어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기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에 “Latte is horse” 라는 것이 있다. 어른들이 많이 쓰는 말인 “나 때는 말이야”를 발음대로 영역한(?) 것이란다. 어른들이 걸핏하면 옛날이야기나 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우리 베이비붐 세대를 ‘꼰대’라고 배척하게 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흘러간 한시대의 얄팍한 경험으로 어떻게 모든 것을 안다고 자신하겠나? 하물며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나이가 들수록 끊임없이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워야 한다. 힘닿는 대로 안 가본 곳도 가보고 안 해본 것도 해봐야 한다. 
우주가 생긴지 150억년. 그 기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구에 인류가 생긴지 500만년인데 부모자식간 나이차 30여년은 그 기간에 비하면 정말 찰라에 지나지 않는다. 그 짧고도 짧은 기간 동안의 경험이 뭐가 그리 대단하고 세대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는가? 다 한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소리를 안 들으려면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러한 배움에 이 친구가 큰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는다. 이 친구를 데리고 버스나 전철에 흘쩍 올라 종점에서 내려 그 동네에 있는 시장을 가보면 어떨까? 긴 오르막길에서 페달을 열심히 밟다가 힘이 들면 내려서 끌고 가면 어떨까? 등산을 할 때 타고 올라가는 게 아니고 등에 메고 정상에 올라 이 친구와 함께 인증샷을 찍어보는 것은 어떨까? 세계일주하는 크루즈에 함께 타서 안 가본 다른 나라들도 가보고 싶다. 물론 일본의 성(城) 순회도 다시 여유롭게 가보고 싶다. 이제 이 친구로 인해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백운산 아래 신도시가 들어섰지만 백운호수의 경관은 여전히 수도권의 확실한 쉼표다
노을이 져가는 안양천 길을 따라 한강하류로 향한다. 이제 60여km 종주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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