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별내신도시

남양주 별내신도시
불암산 아래,  최신식 신도시에  잊혀진 ‘만남’
서울의 동쪽은 수락산~불암산~아차산 라인이 가로막고 있다. 거대한 암봉을 인 불암산(508m) 동쪽에 들어선 남양주 별내신도시는 가장 최근에 조성된 계획도시로 7만 명이 산다. 시내를 흐르는 용암천, 불암천, 덕송천 등에는 자전거도로가 잘 나 있고 대로변에도 보행자겸용 자전거길이 널찍해서 여유롭게 도시의 이모저모를 돌아볼 수 있다. 불암산 아래, 애틋한 사연이 깃들었던 한촌의 상전벽해, 그러나 불암산 상상봉은 내내 이 격자도시를 내려다보며 시멘트와 직선에 한줄기 부조리로 남는다

별내신도시를 중심을 흐르는 덕송천 자전거길. 시가지 저편으로 불암산의 암봉이 하얀 화강암으로 빛난다

 

기억은 어렴풋해도 그때 느꼈던 강렬한 인상은 선명하다. 무대는 남양주의 어느 지역. 학창시절 읽은 수필의 무대였다.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였던 이양하(1904~1963)의 ‘만남’인가 그랬을 것이다. 
작자는 잠시 휴식차 들린 그곳에서 어떤 만남을 목격한다. 머리를 파르라니 깎은 미모의 비구니와 젊은 남성이 불암산 아래에서 만났다 애처롭게 헤어지는 모습을 보고 여러 가지 단상을 남기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와 사연은 모른다. 이뤄질 수 없는 연인일 수도, 안타깝게 헤어진 남매일 수도 있다. 작자가 그 ‘만남’에 특별히 주목하고 감성적인 수필까지 쓴 걸 보면 아무래도 연인 간의 애틋한 조우가 아니었을까.        
구체적인 배경과 장소를 중시하는 나로서는 불암산 아래 그곳, 지금의 별내신도시 어간이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언젠가 그 비구니가 살았을 석천암과 불암사를 지나면서 그 만남을 되새기며 또 그런 만남을 목도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고…. 
이제는 최신 계획도시로 변모한 그 ‘만남’의 현장으로 간다.  

네 줄기 하천 따라 퍼져나간 자전거길
별내신도시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2008년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사업이 지연되어 아직도 곳곳에서 공사중이다. 하지만 도로와 기반시설은 다 갖춰졌고 인구도 7만명이나 된다.
도시를 흐르는 강줄기는 왕숙천의 지류인 용암천, 불암천, 덕송천 등으로 많고 하천변에는 산뜻한 자전거길이 잘 나 있다. 서울에서는 중랑천 자전거길~경춘선 자전거길을 통해 진입할 수 있고, 구리 방면에서는 왕숙천 자전거길과 연결된다. 
시내는 얼마 되지 않으나 천변 자전거길을 다 돌아보면 20km가 넘고 쉬엄쉬엄 움직이면 3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기점은 신도시 중간에 차분한 공원으로 조성된 구정남재 묘역으로 잡는다. ‘구정남재’를 한글로만 적어 놓으니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가보니 호(號)가 구정(龜亭)인 남재(南在, 1351~1419)의 무덤이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도와서 조선 개국공신이 되어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이다. 이성계의 무덤이 있는 동구릉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 좋은 땅을 받은 것도 개국을 도운 덕분일 것이다. 묘역은 개방되지 않았으나 주변 공원이 일품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길은 사색적이고, 넓은 잔디밭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600년 뒤 후손들이 모여 사는 도시의 삭막함을 중화하는데 자신의 묘역이 중심역할을 할 것이라고 남재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곳은 도성에서 40리나 떨어진 한촌이었을 테니까.     
    
개울은 도시를 숨쉬고 
남재묘역 바로 옆을 흐르는 덕송천을 따라 북상한다. 도시가 크지 않으니 모든 하천길을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올 것이다.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것을 식상해 하는 사람이 많지만 초행이라면 오갈 때 보는 경관과 느낌이 확연히 달라서 왕복도 나쁘지 않다. 
이땅에서 ‘신도시’라고 하면 그냥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동의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넓이가 아니라 수직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사무용 빌딩과 아파트는 내용뿐 아니라 외관과 느낌도 다르다. 아무리 게을러도 출근할 때나 외출할 때는 그럭저럭 차려입듯이, 사무용 빌딩이 외출용으로 말끔하다면 남의 시선 개의치 않고 편하게 지내는 아파트는 아무리 새것이라도 찌든 생활의 내음이 느껴진다.         
덕송천 길은 남재 묘역에서 2km 정도 북상하면 끝이 난다. 서쪽으로는 불암산의 암봉이 성큼 다가선다. 508m의 높이에 거대한 바위를 솟구친 불암산은 가분수의 불균형이라기보다 만만치 않은 기세를 발산하며 도시를 묵중한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구정 남재 묘역 주변의 은행나무 숲길은 다분히 사색적이다
덕송천은 자연스런 개울로 조경되었다. 수풀이 마구 자란 징검다리가 정겹다

 

‘만남’의 그 장소는? 
덕송천을 되돌아내려와 경춘선 별내역 앞을 지나 서진하면 이번에는 불암천이다. 이름 그대로 불암산에서 흘러내리는 짧은 계류인데 고층 아파트 사이를 힘겹게 흐르느라 물줄기는 옹색하다. 
불암천 길도 별내역에서 2km 남짓이면 끝나면서 불암산 초입에 이른다. 아마도 여기 어디쯤일 것이다. 그 드라마틱한 ‘만남’이 이뤄졌을 곳이…. 작자는 50년대 말이나 60년대 초에 여기 어디쯤으로 쉬러 왔다가 불암사 여승의 특별한 만남과 이별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명산이나 명찰 입구에 형성되는 ‘사하촌(寺下村)’이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으니 분명 이 즈음일 것이다. 
작자는 이미 50년도 더 전에 세상을 떠났고, 당시 그가 보았던 미모의 비구니와 청년도 살아있다면 구순 가까운 노인일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 글의 주인공이란 걸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 
사람과 사연은 사라졌지만 불암산 상상봉은 단 1cm도 줄지 않은 고고함으로 인간의 시간을 조롱한다. 시멘트로 쌓아올린 거대 신도시도 50년 뒤에는 다시 지어야 할 운명을 맞을 것이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불암산 암봉은 끄떡도 없을 것이다.   

산은 뚫려도 넘지는 못하네 
별내역 앞에는 갈림길이 많다. 용암천에 불암천, 그리고 남쪽 구리 방면에서 흘러드는 갈매천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모두 자전거길이 나 있는데 갈매천을 따라가면 서울 신내동 방면으로 이어지고, 경춘선 자전거길은 잠시 새 경춘선을 따라 서울 태릉 방면으로 연결된다. 용암천 하류로 가면 왕숙천까지 2.5km 남짓이다. 
마지막으로 용암천 상류로 향한다. 산간 협곡에 펼쳐진 신도시인데 온갖 길이 모여들어 바퀴들의 은은한 굉음은 이 신도시 전체에 잔잔한 파장으로 흐른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와 구리포천고속도로가 교차하고 IC가 지천이다. 교통이 사통팔달이니 서울의 ‘베드타운’으로서 별내는 아주 효율적인 신도시임에 틀림없다. 서울 노원구의 인구가 준만큼 별내의 인구가 늘었다니 답답한 서울의 사소한 탈출일 수도 있겠다. 
의정부 방면으로 이어지던 용암천 자전거길은 시내를 벗어나자말자 끝나고 만다. 의정부 부용천(중랑천의 지류) 자전거길까지 8km 정도여서 도로를 따라 의정부행도 어렵지 않다. 
남재 묘역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그림자는 길게 늘어지고 햇살은 불암산을 겨우 넘어 온다. 한자는 별내(別內)라고 쓰지만 본뜻은 ‘별빛이 흐르는 개울’인 듯하다. 이제는 밤에도 환한 도시가 되어 사실상 서울의 확장이 되어버린 이곳에서 별빛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50년 전 작자가 보았던 그런 극적인 만남과 이별도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도시에서 너무나 흔하고 쉬운 것이 만남과 이별이기에. 

 

이양하가 그린 ‘만남’의 현장은 불암사 진입로 초입인 여기 어간이었을 것이다. 고층 아파트가 불암산에 키재기를 하지만 인간의 시간과 공간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용암천 중간쯤에는 하천 좌우로 개성 있는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선 ‘별내카페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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