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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베가본드 ⑤-도시의 한 절정, LA & 라스베이거스 자전거여행

기사승인 2019.10.29  14: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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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슬럼가, 라스베이거스 환락가… 처절하게 맛보는 이방인의 소외감

도시의 한 절정, LA & 라스베이거스 
LA 슬럼가, 라스베이거스 환락가… 처절하게 맛보는 이방인의 소외감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 여행자에게서 ‘겸손’이란 교훈을 배웠다. 이제 LA를 향해 남하하는 길. 대초원이 펼쳐진 스탭지대에서 서부 개척시대의 카우보이를 떠올린다. 순수한 목동들은 어떻게 해서 총을 찬 무법자가 되었을까. LA에서는 중심가 한켠을 차지한 노숙자들의 슬럼가에서 충격을 받았다. 사막 위의 신기루 같은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가난한 여행자는 고독과 소외감에 직면한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해서

 

87일째

개기일식
캘리포니아 주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날은 많이 피곤했다. 5일간 450km를 달렸으니 지칠 법도 했다. 돈 아끼는 것도 좋지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숙박비가 저렴한 한인 민박을 찾아다녔다.
한인 민박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 밤 다른 여행자들과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색깔이 짙은 개성, 뚜렷한 가치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행자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하루는 인상 좋은 한국인 부부와 근처 관광을 나갔다. 부부는 자동차로 LA, 라스베이거스,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전거로 여행하는 나를 대견해했다. 계속되는 부부의 칭찬에 어깨가 으슥해져서 자전거 여행기를 늘어놓았다. 약간은 자만하는 마음이 있었다. 한참을 내 이야기만 하는 게 쑥스러워서 부부에게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물었다. 남편은 의사, 부인은 선생님이라고 했다.
순간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흔히 사회에서 존경받는 직업. 여행지가 아니었다면 만나기 힘든 분들 앞에서 나는 잘난 듯이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부부는 자신들의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호응해 주었다. 가끔씩 대화에 알맞은 질문도 던져가면서.
부부와의 대화를 통해서, 부끄러움 속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성공한 사람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겸손하고 예의 바르다는 것.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그러한 사람이 되리라 다짐을 했다.
3일간 휴식을 취하고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다시 길을 달렸다.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데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졌다. 이상하다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하늘을 향하고 있다. 개기일식이다. 캐나다의 오로라 이후, 자전거로 여행을 하며 맛보는 새로운 풍경이다. 99년 만에 달이 태양을 가리는 진귀한 장면을 눈과 가슴에 담으면서 생각한다.
‘조금 더 인간답게, 조금 더 겸손해지자.’

99년 만의 개기일식

 

89일째
카우보이의 땅, 초원을 달리며
샌프란시스코를 벗어나자 스텝기후가 시작됐다. 하루 종일 드넓은 초원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타다보면 이따금씩 따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150년 전에 카우보이들이 허리에 권총을 차고 말을 타며 광활한 초원을 누볐던 상상을 하곤 했다.
카우보이(cowboy)는 우리말로 목동이다. 실제로 19세기 초 카우보이들은 방목형 목장에서 가축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는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카우보이’라는 단어는 점차 퇴색되고 변해갔다.
흔히 미국 역사에서 19세기 중반은 ‘서부 개척시대’라고 부른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국가 미국은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인구, 영토, 자본을 필요로 했다. 그러던 중 태평양연안에 개척되지 않은 땅, 프론티어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외부의 많은 인구가 서부로 유입되면서 ‘서부 개척시대’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서부 개척지는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유입된 무법자와 도적이 들끓었고 영토를 빼앗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백인을 공격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순수했던 카우보이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총을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서부 개척시대는 ‘무법자들의 전성시대’, ‘총성과 배신이 끊이지 않는 광란의 시대’가 되어 버렸다. 순수했던 카우보이의 이미지가 무법자의 아이콘으로 변질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며칠간 초원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길 위에 죽은 동물 시체를 많이 보았다. 비교적 사체가 성한 토끼에서부터 쥐포처럼 납작하게 짓이겨진 코요테의 시체까지. 뜨거운 날씨에 부패한 동물시체에서는 썩은 냄새가 풍겨왔다.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한 야생동물을 안타깝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옆으로 트럭 한 대가 140km가 넘는 속도로 쌩하고 지나간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의 무법자는 카우보이가 아닌, 브레이크를 모르는 트럭일지도 모른다.

카우보이를 연상케 했던 텍사스 롱혼(Longhorn)
태양이 내리쬐는 아스팔트(스탭기후)
도로변에 보이던 석유시추기

 

93일째
LA까지 향하는 여정
캘리포니아 주 남부에 위치한 대도시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 가까워질수록 특이한 풍경이 눈에 띄었다. 그건 바로 멕시코 문화가 어우러진 길거리 모습이다. 길목 사이에서 멕시칸들이 자주 보였고 멕시칸 음식점, 식재료 마트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루는 멕시칸 마트에 들러 빵과 음료를 사서 잔디밭에 앉아 먹었다. 포장지에 하얀 곰돌이가 그려진 빵. 허기졌던 나는 허겁지겁 빵을 뜯어 먹었다. 단맛과 함께 무언가가 톡! 톡! 씹혔다.
‘이야~ 멕시칸들도 빵에 참깨를 뿌려먹는구나!’
달고 고소한 빵맛에 감탄하기도 잠시. 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불개미가 빵에 잔뜩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잔디밭에 있던 불개미가 빵 냄새를 맡고 나보다 먼저 빵을 시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소한 참깨의 정체는 불개미였다.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원효대사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허탈하게 웃으며 빵에 붙은 불개미를 털어냈더니 이번에는 이 녀석들이 다리를 물기 시작했다. 벌에 쏘인 것처럼 따가워서 잔디밭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다시 안장에 올라 초원을 달렸다. 초원의 오후는 뜨겁고도 고요하다. 남쪽으로 갈수록 도로변에 석유 시추기가 많이 보인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사람으로서 정말 부러운 모습이다.
해질녘에 로스트힐즈(Lost Hills)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잘 곳을 찾아서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축구장이 있는 공원 구석에 텐트를 쳤다. 인적이 없는 공원이지만 새벽에 관리인에게 쫓겨나는 건 아닌지 가슴을 졸였다. 미국에 입국하고 캠핑하다가 몇 번 쫓겨난 경험이 있는 탓이다.
이튿날 아침 6시30분에 동쪽에서 주황빛 태양이 떠올랐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기분 좋게 텐트를 정리했다. 간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에 감사하며. 

해질녘까지 라이딩
잔디밭에서 불개미가 붙은 빵을 맛있게 먹었다
로스앤젤레스 공원에서 캠핑

 

이날은 99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오후에 베이커즈필드(Bakersfield)에 도착했는데, 마을을 나가는 모든 도로가 프리웨이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지나가는 경찰차를 세워 길을 물어도, LA까지 가는 길은 프리웨이뿐이라고 대답했다. 땡볕에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탔더니 피로가 몰려왔다. 일단 마을에서 하루 쉬면서 LA로 갈 방법을 알아보기로 했다.
텐트 칠 곳을 찾아 주택가를 돌아다녔다. 마당에 물을 뿌리고 있는 무뚝뚝해 보이는 아저씨에게 마당에 캠핑해도 되는지 묻자, 처음엔 “Yes”라고 답하더니 가까이 다가가서 다시 한번 물어보니 “No”라고 말한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멕시칸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내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10살도 안 돼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아들에게 다시 캠핑해도 되는지 묻자, 아들은 아저씨에게 통역을 해줬고 아저씨는 또 한 번 기다리라고 하더니 부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단다. 아마도 집안의 최고 권력자는 부인인 모양이다. 부인은 내가 노숙자만 아니라면 괜찮다고 집안에서 큰소리로 대답했다. 42도가 넘는 날씨에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탄 탓에 옷에서 하얀 소금이 나왔지만 노숙자는 아니라고 대답하며 집 앞에 텐트를 쳤다.
이 가족은 아저씨는 멕시코, 부인은 과테말라, 세 명의 자녀들은 미국 국적을 가진 조금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아이들과 부인은 영어로 대화를 하고 부부끼리는 스페인어를 쓴다. 올해 9살이라는 막내 판초는 영어를 잘해서 내가 못 알아듣는 말이 있으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저녁을 먹으며 하루 10달러로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다고 내 소개를 하니, 막내 판초가 귀엽게 입을 떼었다.
“오늘 저녁은 우리 집에서 먹었으니까 5달러는 아꼈네?”
판초의 개구진 말투에 가족들은 환하게 웃었다. 밤이 깊도록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텐트에 들어가 쓰러지듯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있는데 아저씨가 프리웨이를 어떻게 통과할 건지 묻더니, 중간지점까지 자동차로 태워주겠단다. 아저씨의 호의가 감사해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프리웨이를 달렸다. 창밖으로 험난한 산줄기가 계속 이어졌다. 자전거를 탔다면 위험하고 힘든 구간이었을 것이다. LA가 60km 남은 휴게소에서 자전거를 내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들었던 가족에게 감사의 포옹을 하고 다시 아스팔트 위를 달린다. 오후 늦게 LA 중심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간 이정표만 보면서 달려온 로스앤젤레스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판초의 가족
공원에서 맞이한 일출
과테말라 부인이 요리해 주었던 가정요리

 

94일째
로스앤젤레스의 슬럼가
LA 도심부에 도착했을 때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금융 중심가 뒤쪽으로 펼쳐진 집단 텐트촌. 이른바 LA 할렘가가 그것이다. 금융 중심가 뒤편으로 5블록은 노숙자들이 텐트로 도로변을 점령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발에 차일 정도로 널브러져 있고 불쾌한 대마초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텐트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는 흑인이 주를 이루었다. 그들은 랩을 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리를 쏘다녔다. 짐이 실린 자전거를 쳐다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위험을 감지한 나는 카메라를 꺼낼 엄두도 내지 못하고 흑인들의 눈을 피해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세계 1위의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두 얼굴을 마주한 날이었다. 미국에 노숙자가 많은 이유는 높은 집값 때문이다. 미국에는 전세제도가 없어서 주택을 구입하거나 장기 렌트를 해야 한다. 비싼 주택을 살 수 없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집값의 절반 가격을 은행에서 대출받아 몇 십 년에 걸쳐 매월 분할 납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높은 월세를 내지 못하는 경제 하층민은 집을 잃고 거리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빈민가를 떠나서 LA의 밤거리를 달렸다. 문을 닫은 가게는 모조리 쇠창살이 쳐져 있다. 촘촘하게 창문을 가득 채운 쇠창살에서 거주민과 노숙자들 사이에 허물어지지 않는 감정의 찌꺼기가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이날은 자정이 넘어 도시외곽 공원에서 캠핑을 했다. 새벽에 텐트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노숙자들 때문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모든 노숙자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전 재산을 도난당하는 악몽을 다시 꾸고 싶진 않았다. 결국 이날은 새우잠을 자며 밤을 지새웠다.

로스앤젤레스 중심가. 뒤편에는 슬럼가가 형성되어 있다

 

100일째
라스베이거스의 추억
네바다 주에 위치한 라스베이거스는 사막 위에 지어진 도시이며 합법적으로 도박을 즐길 수 있는 관광지다. 할리우드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인 만큼,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관광을 해보고 싶었다.  
며칠간 쉬던 숙소에 자전거와 짐을 맡겨 놓고 버스를 타고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오기로 했다. LA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는 버스로 5시간 정도의 거리다. 버스 의자에 앉아 몇 시간 꾸벅꾸벅 졸다보니 창밖으로 휘황찬란한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는 예정보다 30분 늦게 도착했는데, 직원도 사과하지 않고 승객도 불평하지 않는 걸 보니 매번 늦는 것 같다.
카메라를 메고 홀로 도시를 유랑했다. 도로변에 보이는 고급 호텔에 들어서면 잭팟을 돌리고 있거나, 카드게임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날이 선 와이셔츠에 적당히 귀여운 나비넥타이를 매고 손님에게 카드를 나눠주는 딜러.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카드를 슬쩍 들춰보는 손님들. 도박장에 있는 모두가 품위 있게 게임을 즐기고 있다. 분위기에 취해서 도박을 해보려고 했지만 돈을 잃을 게 뻔해서 관두었다.
도박장을 나와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샀다. 노을 지는 라스베이거스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맥주를,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를 쥔 채 말이다. 호화로운 건물과 부대끼는 인파 속에서 나 홀로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하룻밤만 보내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라스베이거스 도박장의 풍경

 

땅거미가 질 때까지 화려한 도시를 거닐었다. 피곤이 몰려와 허름해 보이는 여관에서 잠을 자려는데, 주인은 숙박비로 70달러를 요구했다. 유명 관광지라 숙박비가 비쌀 것은 예상했지만 거금 70달러를 내고 하룻밤을 잘 수는 없었다. 여관에서 나와 어둠속을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처량한 내 모습을 대변하듯 하늘에서는 부슬비가 내렸다. 영업시간이 지난 쇼핑몰 벤치에 앉아서 졸다가 순찰 중이던 경비원 코니를 만났다. 코니에게 몇 시간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물어보자 장애인 화장실 문을 열어준다.
밤늦게 만난 불신자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코니에게 감사하면서도 민폐를 끼치며 여행하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느꼈다. 시간은 새벽 2시를 지나고 있었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바닥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2시간쯤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허벅지를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 아닌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으며 옆에 있는 운동화로 바퀴벌레를 내리쳤다. 그 후로는 찜찜함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아침이 올 때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오전 6시, 장애인 화장실을 나와 버스터미널로 향하다가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마주했다. 눈가를 반쯤 찡그린 채 입꼬리를 조금 올리고 혼잣말을 내뱉는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텼구나. Good morning.”
LA로 돌아와서 프리웨이 휴게소에서 만났던 대학교수 윌리암 할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윌리암 할아버지는 반가워하며 터미널로 마중 나오셨다. 저녁으로는 캘리포니아 주 요트협회 회원만 이용할 수 있는 회원제 레스토랑에서 최고급 스테이크를 사주셨다. 전날에는 장애인 화장실에서 바퀴벌레를 때려잡던 여행자가 이튿날에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소고기를 썰고 있으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여행 참 스펙터클하게 하고 있네.’
여행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굴곡이 많을지언정 언젠가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말이다. 지금은 가난하게 여행하고 있지만 훗날 누군가에게 최고급 스테이크를 사주는 상상을 하며 접시에 남은 스테이크 소스를 핥아먹었다. 
 

화려한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친절을 베풀어준 경비원 코니
장애인 화장실에서의 새우잠. 새벽에 하수구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
윌리엄 할아버지와 패티 할머니

 


김민형 작가 kim_min_hyeong04

<저작권자 © 자전거생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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