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기 막다른 호반길, 간절해서 더 특별한 십리

괴산 산막이옛길 & 괴산호 
외줄기 막다른 호반길, 간절해서 더 특별한 십리

기어이 두바퀴도 들어갈 수 없는 길의 한 종장에서 그래도 굳이 가고픈 길은 있기 마련이다. 괴산 산막이길은 이름만으로도 여수와 호기심을 부른다. 자전거가 못 들어가면 걸어가면 그만이다. 길바닥에 닿는 것은 타이어든 신발 밑창이든 고무재질임은 별 차이가 없고, 느려진 속도만큼 더 많은 것을 볼지도 모른다. 바퀴여, 잠시 안녕. 난 저 막다른 길의 끝이 보고 싶단다

환벽정 아래를 돌아나오는 괴산호 유람선. 산막이마을에서 차돌바위나루까지는 10분 거리. 1시간짜리 괴산호 일주 코스도 있다

 

이 길을 걷던 사람은 다분히 절박했을 것이다. 해질녘 마실 삼아 곰방대 등에 꽂고 어슬렁 팔자걸음 하던 그런 길이 아니다.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약초며 고추 자루를 둘러매고 읍내로 팔러가던 땀과 주름 범벅의 그 길, 대처로 일자리 찾고 시집가느라 불안과 설렘으로 벗어나던 그 길, 해지기 전 산짐승 만나기 전에 종종걸음으로 숲길 헤치던 그 길….
괴산 산막이옛길은 전국의 그 많은 걷기코스 중에 단연 독특하고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그 이유는 아름다운 풍경에만 있지 않고, 이 길 자체가 지니는 어떤 절박함이 빚어낸, 그래서 길가의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마다 온갖 사연과 정서가 응어리져 맺혀 있는 것만 같은 서정의 완결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충청도 양반길’과 연계되어 있지만 원래 산막이마을 가는 길은 외줄기 그리고 마을에 이르면 막다른 길이 되어 그야말로 길의 최후였다.

이보다 가치 있는 길이 있으랴 
가장 유익한 길은 가장 절박한 소통로와 동의어다. 그 길이 아니면 벗어날 방법이 없고 세상과 연결될 수가 없는 외줄기 길은 생존과 직결될 정도로 중요하다. 허나 지금 세상에 그런 길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너무 많아진 길은 가치를 떨어뜨리고 이 혼돈의 시대에 공간적 방향상실까지 조장한다.
산막이옛길은 절박한 길이다. ‘괴산 산막이옛길’이라고 하면 단절과 고립의 의미가 중첩되어 산간벽지의 이미지가 극대화한다. 괴산은 지역 그 자체가 소백산맥이고 백두대간이다. 국토의 정중앙에 자리해 바다가 가장 먼 내륙 오지다. 해안과 평야를 따라 도시와 물산이 발달한 반도국가에서 국토 정중앙은 찬사나 명예가 아니라 교통이 불편한 ‘산간오지’의 수사학일 뿐이다. 괴산(槐山)이란 지명부터 홰나무(槐)와 산이 많으니 요즘 말로는 덜 오염되고 덜 붐비는 청정지역이겠다. 홰나무는 예로부터 잡귀를 쫓는 힘이 있다고 해서 귀하게 여겼다.
‘산막이옛길’은 ‘산막이’이라는 외딴 마을로 가는 산길이다. 이름 그대로 사방이 산으로 막혀있어 벼랑 따라 나 있는 이 오솔길은 주민들에게 유일한 통로였다. 지금은 산막이마을 뒷산을 넘어가는 길이 열려 있고,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주말이면 북새통을 이루는 오지 속의 장터로 격변했다. 그럼에도 괴산호 호반 따라 쏟아질 듯 가파른 절벽을 따라 난 외줄기 오솔길은 한국적 한(恨)의 정서에 공감한다면 두말 할 것 없이 그냥 매혹이다.  

기적 같은 마을, 기적 같은 길 
괴산읍내에서 자동차로 10여분이면 산막이옛길 초입인 사오랑마을 주차장이다. 원 래 있던 오솔길을 세태 따라 ‘걷기코스’로 단장한 것은 2010년. 9년만에 연간 160만명이 찾는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다. 산막이옛길은 ‘충청도 양반길’ 네트워크에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 사람들이 찾는 곳은 사오랑마을에서 산막이마을까지 원래의 옛길 3km 정도여서 길이 대비 전국최고의 걷기코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제주 올레길은 총연장 425km).
주차장을 벗어나 작은 고개를 넘으면 길은 곧 괴산호 호반의 벼랑을 따라 최대한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지도의 등고선처럼 좌우로 구불대기 시작한다. 녹음으로 호수는 보일 듯 말 듯, 좁은 길은 수많은 발자국의 선택적 총합이 되어 다져지고 또 다져져 걸음걸음이 익숙하다. 3km면 1시간이면 가는 길인데 그래도 심심할까 길가에 갖은 스토리텔링을 입혀 놓았다. 일부러 이름붙이긴 했어도 씩 미소를 머금게 한다. 가지가 연결된 연리지, 소나무가 사랑을 나누는 정사목, 노루가 물 마시던 노루샘, 호랑이가 살았던 호랑이굴, 소나기를 피하던 여우비 바위굴, 단아한 미녀참나무, 최고의 고비 마흔고개 등등 이름과 사연까지 참 잘 지었다. 덕분에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야깃거리가 소진될 틈이 없다. 때로는 은근한 속삭임이, 때로는 왁자한 웃음이 숲과 벼랑에 울려퍼진다.     
에스(S) 자로 크게 구비치는 호반을 돌아서면 이윽고 절벽이 잦아들고 들판이랄 것은 없지만 그래도 평탄한 호반 언덕이 기적처럼 나타난다. 바로 산막이마을이다. 앞에는 강, 뒤는 산이니 영락없이 막힌 꼴이다. 비운의 왕,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와 흡사하다. 조선 중기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의 유배지인 수월정이 동네 앞에 있으니 역시 유배지였나. 알고보니 원래는 강 건너 상류쪽 연하동에 있었으나 괴산호에 수장되어 이곳으로 옮겼다. 어쨌든 연하동이나 이곳이나 별 다를 바 없는 막다른 땅이니,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일종의 유배를 선택한 사람들인가. 

그윽한 운치의 솔밭을 지나는 산막이옛길. 산막이마을에서 연하협 구름다리 가는 구간으로 내내 조용한 적막강산이다
코스 중간쯤에 있는 병풍루. 잠시 숲이 걷혀 조망이 트이고 숲이 울창해 쉬어가기 좋다
산막이옛길은 내내 괴산호 수면에서 10~20m 높이의 절벽길로 이어진다. 길은 최대한 수평을 유지해 기복은 심하지 않은 편이다
마치 사랑을 나누는 듯 기이한 형태의 ‘정사목’ 소나무. 길가에는 이같은 볼거리가 즐비해 지루할 틈이 없다
호랑이가 살았다는 호랑이굴에는 목재 호랑이 모자상을 만들어 놓았다
괴산호와 유람선. 왼쪽 절벽 아래쪽으로 산막이옛길이 지난다
조선중기 영의정까지 지낸 노수신의 유배지 수월정. 원래는 상류의 연하동에 있던 것을 수몰로 인해 산막이마을로 옮겨놓았다

 

산막이마을의 대변신
10여년 전만 해도 찾아오는 외지인은 극히 드물고 동네 사람들도 몇 명 없던 산막이마을은 이제 상전벽해의 최신판이다. 한마디로 언제나 장터다. 5일장이 아니라 아예 상설시장이다. 평일에도 동네 어디선가는 노랫소리가 울리고 골목마다 맛난 요리의 내음이 진동한다. 겨우 10여 가구이긴 해도 평범한 농가는 아예 없고 다들 식당이나 카페 일색이다. 하지만 여기서 퍼질러 앉으면 안된다. 산막이옛길의 새 종점인 연하협 구름다리는 마을에서 1km나 더 가야 한다.
산막이마을의 장터 분위기에 눌러 앉느라 연하협 구름다리까지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이제부터 길은 한층 조용하고 한가롭다. 그야말로 인공적인 소음은 아예 들리지 않는 원시 적막속이다. 이 땅에 이런 곳이 얼마나 있겠는가.
산막이마을 뒷산은 삼성봉(550m)이 가장 높지만 맞은편은 군자산(948m)~비학산(841m) 연봉이 하늘을 찌를 듯 웅장하다. 군자산~비학산 남쪽에 깊게 패인 갈론계곡 초입이 연하동으로 노수신의 원래 유배지가 여기다. 이곳도 계곡수가 달천에 합류하면서 일종의 산막이 지형을 이루었는데 연하협 구름다리는 바로 여기에 걸려있다. 인적 없는 산중에 휑하니 우뚝한 134m의 출렁다리는 바닥에 구멍이 숭숭하고 심연처럼 짙푸른 물 위에서도 아찔한 스릴감보다는 인공과 오염으로부터 단절되었다는 탈속감, 쾌감이 앞선다. 구름다리 건너편은 괴산댐으로부터 도로가 나 있어 자동차로 온 관광객이 다소 보인다.
괴산호는 상류쪽으로도 한참 협곡 사이로 이어지지만 점점 폭이 좁아져 호수에서 하천으로 바뀌어간다. ‘충청도 양반길’은 상류 방면으로 더 있지만 산막이옛길은 여기가 사실상의 종점이다.   

화양구곡, 선유구곡 모아든 물
호반이나 해안을 걷거나 자전거로 돌아본다면 반드시 유람선을 타고 물 위에서 다시 한번 경관을 되짚어 봐야 한다. 육지에서는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풍경과 감상이 새롭고, 지나온 길목이 입체화되어 추억 앨범에 차곡차곡 정리된다.
산막이옛길도 돌아가는 길에 유람선을 타면 체력과 시간을 아끼고 호수 위에서 옛길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어 좋다. 다만 평일에는 손님이 부족해 연하협 구름다리에서는 배를 타기 어렵고(10명 이상 예약 가능), 산막이마을까지 돌아나오면 유람선이 1시간 간격으로 다닌다(편도 5천원).
국내의 큰 호수가 대부분 그렇듯이 괴산호는 자연호수가 아니다. 1957년 국내최초로 순수 우리 기술로 축조된 괴산댐으로 생겨난 괴산호는 청천면 덕평리까지 길이 7km, 폭은 200m 내외로 소규모다. 총저수량은 1532만톤으로 국내최대인 소양호(29억톤)의 0.5%에 불과하지만 산간협곡에 거대한 용이 용트림하듯 만곡을 그려 신비감이 감돌고, 산막이옛길이 벼랑 따라 나 있어 향수어린 전원풍도 가미된다.
작달막한 유람선은 47인승의 미니 사이즈로 멀리서 보면 장난감 배 같다. 산막이나루에서 주차장 부근의 차돌바위나루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산막이나루 맞은편 언덕은 산 위에서 보면 한반도와 닮았다는 한반도 형상이다. 절벽 위에 날아갈 듯 앉은 환벽정이 산수화의 신선경을 이룬다.
뱃길 따라 왼쪽 절벽에는 산막이옛길이 숲 속에서 숨었다 드러나기를 반복한다. 저런 벼랑에 맨 처음에는 어떻게 길을 냈을까 신통스럽고 한편 대단한 고역이었을테니 가슴이 저리다. 
산의 녹음이 비쳐서이기도 하지만 호수는 한없이 푸르고 맑다. 그도 그럴 것이, 상류에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화양구곡, 선유동, 갈은구곡 등에서 청정수를 보태기 때문이다.
산막이옛길을 돌아나오면 땀 흘리고 힘들게 산길을 걸었음에도 몸과 마음이 정화된 느낌이 든다. 더할 수 없는 맑은 공기와 초록빛의 대향연 그리고 계곡수 같은 청정 호수에 알게 모르게 전신과 마음마저 씻긴 것이다. 몸이 더러워지면 간혹 목욕을 가듯, 가끔은 영혼의 목욕도 필요할텐데 산막이옛길과 괴산호는 적소다. 

산막이마을에 도착하면 초입에서 반겨주는 산막이 당산나무
실질적인 산막이옛길의 종점인 연하협 구름다리. 길이 134m이며 여기서 배편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평일에는 승객 부족으로 잘 운행하지 않는다
산막이옛길 약도. 주변 등산로와 연계하면 다양한 코스를 구성할 수 있다
우암 송시열이 은거했던 화양구곡의 금사담
선유구곡 입구의 ‘선유동’ 각석
쌍곡구곡의 대표적 명승인 소금강의 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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