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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베가본드 ④-오레곤 지나 캘리포니아로

기사승인 2019.10.01  1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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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에 쏘여 얻어 탄 트럭, 그 안에서 벌어진 광란극 파티

오레곤 지나 캘리포니아로 
벌에 쏘여 얻어 탄 트럭, 그 안에서 벌어진 광란극 파티

 

오레곤 주의 마지막 도시, 메드퍼드 가는 길에 벌에 쏘여 힘겹게 진행하다 한 트럭에 올랐다. 자칭 예술가들인 그들은 차 안에서 대마초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광란극을 벌여 크게 놀랐다. 9남매를 홈스쿨링으로 키우며 소박하게 사는 크리스턴 아줌마 가족을 만난 후라 충격은 더 컸다. 프리웨이에서 만난 경찰관 저스틴의 소개로 그의 친구 컬트의 집에서 머물게 되는데 또 예상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이들이 끄는 수레를 타며

 

70일째

9남매 천사들의 합창
자전거로 프리웨이(Free way)를 달린다고 하면 놀라는 현지인들이 많다. 대부분은 위험하지 않은지 걱정을 해주는데, 실제로 자전거를 타보면 일반 도로보다 갓길이 넓은 프리웨이가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5번 프리웨이를 달렸다. 이 날도 40도가 넘는 날씨였다. 오전 중에는 더위를 버틸만하지만 정오가 넘어가면서부터 아스팔트는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1시부터 4시까지가 하루 중 가장 더운데, 나무 그늘이라도 찾지 않으면 땡볕에서 탈진해 쓰러지기 딱 좋다. 문제는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서 나무 한 그루 찾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프리웨이를 나와서 30분 넘게 나무 그늘을 찾아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발견한 나무 한 그루. 자전거를 세워두고 잔디밭에 누웠다. 주섬주섬 패니어에서 음식을 꺼내 허기를 달래고 있는데 누군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게 음료를 건넸다. 나의 시선은 손끝을 따라 얼굴로 옮겨갔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차가운 음료를 얻어 마시기가 미안해서 괜찮다고 거절했더니, 나에게 꼭 필요해 보여서 주는 거란다. 고마운 마음으로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더위에 탈진한 나에게 시원한 음료는 최고의 자양강장제였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10분쯤. 저 멀리 집에서 꼬마 아이들이 나에게 달려왔다. 내가 공터라 생각하고 쉬고 있던 곳은 이들의 집 마당이었다. 감사함의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나려는데 집 주인 아줌마가 바쁘지 않으면 오늘은 집에서 쉬고 가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9남매 크리스턴 아줌마 가족과 만나게 됐다.
집으로 초대를 받아 샤워를 하고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와서 내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고 마당으로 데려가 작은 수레에 앉혔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된다고 설명하더니 수레를 끌고 마당 안을 전력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캐나다에서 시속 70km로 빗길을 내려올 때보다 아찔한 경험이었다. 아이들과 마당에서 놀면서 많이 친해졌다. 술래잡기도 하고 트램폴린 위에서 땀 흘리며 폴짝폴짝 뛰기도 했다. 아이들도 내가 싫지 않은 눈치였다. 집으로 돌아온 뒤로 여덟째 크리스찬과 아홉째 헤즈카이야는 내 몸의 일부가 된 듯이 나에게 붙어서 새로운 놀이를 요구했다. 밤늦도록 꼬마 전사들과 사투를 벌이다 보니 점점 눈꺼풀이 내려갔다. 나는 아이들과의 전투에서 패배해 마룻바닥에 지쳐 쓰러졌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은 분주하게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둥근 책상에 둘러앉아 책을 펴놓고 선생님을 기다린다. 아이들의 선생님은 크리스턴 아줌마였다. 담임 선생님은 어머니, 부담임 선생님은 넷째 누나 칼랩. 셋째까지는 일을 나가고 다섯째부터 아홉째까지는 학교를 가는 대신 집에서 홈스쿨링을 받는다고 한다. 근엄한 선생님 앞에서 장난꾸러기들은 순한 양이 되었다. 40분의 수업시간 그리고 10분간의 휴식.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거실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탔다. 학교와 집, 교실과 운동장이 모두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집에서 웃음이 떠나가질 않는구나.’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두 가지라는 걸 깨달았다. 형제를 만들어 주는 것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천사처럼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가정교육의 정답이 보인다.
이틀 동안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남자 아이들은 나에게 붙어서 애정을 보여줬고 여자 아이들은 나에게 장난을 쳤다. 여행 마치고 또 놀러오라는 아이들. 그 말에 대답해줄 수 없었다. 섣불리 대답했다가는 헛된 희망을 심어줄 것 같아서.
자전거에 짐을 싣고 떠나는 나를 맨발로 쫓아오며 손을 흔들어 주던 아이들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해질녘 뜨거운 아스팔트를 달리며
여덟 째 크리스찬
아홉 째 헤즈카이야
홈스쿨링 시간

 

72일째
대마초와 예술의 상관관계
오레곤 주의 마지막 도시 메드퍼드(medford)로 향할 때였다. 휘파람을 불며 기분 좋게 내리막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왼쪽 어깨에서 따끔! 하고 통증이 느껴졌다. 자전거를 세우고 아픈 부위를 살펴보니 말벌 한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침착하게 손가락을 튕겨서 힘없는 말벌을 날려버렸다. 나로서는 말벌에게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형벌이다. 벌침이 박힌 곳이 생각보다 아리고 욱신거렸다. 아픈 어깨를 움켜쥐고 나무 그늘에 앉아서 가쁜 호흡과 상처부위의 붓기를 가라앉힌다.
해질녘까지 야산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피로감을 느끼며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을 오르는데 트럭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나를 보자마자 환호를 지르던 운전자 라이언은 굉장히 밝은 청년이었다. 좋은 친구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언과 함께 자전거를 싣고 있는데 뒷좌석에서 여성 한 명이 내렸다. 그녀는 삼각팬티 한 장만 걸친 채 젖가슴을 다 드러내놓고 있었다. 첫인상이 굉장히 강력하다. 쭈뼛거리는 나를 보며 라이언은 산 정상까지 태워줄 테니 부담 갖지 말라고 한다.
트럭에 타자마자 라이언은 나에게 데킬라를 권했다. 자전거를 타야해서 거절했더니, 목적지 메드퍼드까지 태워주겠단다. 목적지까지 편하게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다.
‘에라 모르겠다.’
“데킬라 Boom! Boom!”을 외치며 라이언이 주는 데킬라를 원샷 했다. 트럭 안에 있던 친구들은 “Shot! Shot! Shot!”을 외쳐가며 호응했고, 한순간에 트럭 안은 클럽이 되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드레드락으로 한껏 멋을 낸 조쉬는 라임을 잘라서 내 입에 넣어줬다.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친밀감의 표시다. 달리는 트럭 안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데킬라 한 병을 돌려가며 한 모금씩 마셔댔다. 데킬라 병은 뒷자리에 앉은 세 명을 거쳐 조수석 조쉬에게, 그리고 핸들을 부여잡고 있는 라이언에게 넘어갔다.
‘응?’
그렇다. 라이언은 데킬라를 한잔 꺾어 마시고 흥겹게 음주운전을 시작했다. 뻥 뚫린 도로 위에서 트럭이 옆 차선을 넘나들며 팝핀 댄스를 춘다. 트럭 안에서 흘러나오는 클럽노래의 영향인지, 라이언의 몸속에 스며든 알코올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이언이 운전하는 트럭은 롤러코스터 같았다.
내 옆에 앉은 여성들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는가 싶더니 이내 불을 붙였다. 처음 맡아보는 구수한 냄새. 대마초였다. 대마초를 몇 모금 빨아들인 여성들은 가슴을 풀어헤치고 음악에 몸을 맡겼다. 내 손을 부여잡고 자신의 젖가슴에 갖다 대기도 했다. 술에 취했는지, 대마에 취했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 하던 여성들. 자신들은 예술가인데 대마를 하면 색깔이 더 선명하게 보이고 음색이 섬세하게 들린다고 말했다. 대마초는 창작의 씨앗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나에게도 계속 대마초를 권했다. 나는 담배도 피지 않고 한국에서 대마초 흡연은 중범죄라고 말했더니 큰소리로 웃는다.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과 대마초에 의존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나마 흥겨웠던 마음이 공기 중으로 증발했다.
예술가로서 광대한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면 그 뒤로는 깊은 책임의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니까.
자유분방하고 재미있는 친구들이었다. 메드퍼드에 도착해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카페 앞에 자전거를 내렸다. 유독 나에게 친밀감을 표현하던 조쉬는 근처가 집이라며 나를 초대해줬지만 이 친구 집에 놀러가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메드퍼드는 미국 내에서 대마초로 유명한 도시였다.

내리막을 내려오다가 벌에 쏘였다
라이언
뒷자리에서 대마초를 태우던 여성들

 

78일째
고속도로 경찰관 저스틴
메드퍼드를 떠나 며칠간 5번 프리웨이를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오리건 주와 다르게 캘리포니아 주는 프리웨이 규정이 엄격해서 자전거는 물론이고 오토바이도 프리웨이에서 탈 수 없다. 규정을 무시하고 프리웨이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고속도로 경찰관에게 쫓겨난 것만 세 번이 넘는다.
프리웨이에서 나오면 하이웨이(high way)를 이용해야 한다. 하이웨이는 프리웨이에 비해서 먼 길을 돌아가야 하고 무엇보다 갓길이 좁아서 자전거를 타기에 위험하게 느껴졌다(프리웨이는 무료의 장거리 고속도로, 하이웨이는 유료구간이 있는 지역의 고속화도로=편집자 주). 그래서 캘리포니아 주를 종단할 때는 고속도로 경찰관의 눈치를 보면서 프리웨이에서 자전거를 탔다. 도둑은 아니지만 경찰과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시작한 것이다.
레딩(Redding)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보통 현지인 집 앞에 텐트를 칠 때는 서너 번 시도하면 캠핑을 허락받는데, 이날은 유독 캠핑을 거절당하는 일이 많았다. 현지인의 표정을 보니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니 마을에 꾀죄죄한 모습의 노숙자들이 많이 보였다. 지저분한 걸로 따지면 나도 그들이 경계하는 노숙자와 다를 게 없었다. 여덟 번이 넘는 캠핑 시도에도 현지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No”였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졌고 잘 곳을 찾지 못한 나는 초조해졌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 프리웨이 주변의 들판에서 캠핑을 하자.’
어둠이 짙게 깔린 아스팔트 위로, 전조등 빛 한 줄기만을 의지한 채 프리웨이를 달리기 시작했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도로변 들판은 칠흑같이 어두워서 어디에 텐트를 쳐야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어둠속을 계속 달렸다. 30분쯤 지났을까, 이대로는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전방에서 밝은 불빛이 내 얼굴을 비추었다. 고속도로 경찰관과 마주친 것이다.
밤늦게 프리웨이에서 자전거를 타면 어떡하느냐는 경찰관의 물음에, 위험한 마을에서 벗어나 캠핑할 곳을 찾는다고 엉뚱한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경찰서 앞에서 하룻밤만 캠핑해도 되느냐고 뻔뻔하게 되물었다. 일단, 경찰관 저스틴은 위험한 프리웨이에서 나가자고 말했다. 경찰차의 엄호를 받으며 어두운 프리웨이를 나와서 주유소에 자전거를 세웠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는 저스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근처에 사는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까지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저스틴이 베풀어준 친절이 고맙고도 미안했다. 이 날 나는 저스틴의 친구 집에서 하룻밤 신세지게 됐다. 미국에 입국할 때 만났던 엄격하고 불친절한 경찰관들. 프리웨이에서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미국 경찰의 나쁜 인식이 깨끗하게 씻기는 밤이었다.

메드퍼드로 가는 길. 프리웨이를 달리며
경찰관 저스틴
캠핑 장소를 찾는데 실패해고 땅거미 지는 프리웨이로

 

79일째
IN N OUT 햄버거
친절한 경찰관 저스틴의 부탁으로 밤늦게 트럭을 타고 나를 마중 나온 컬트. 컬트의 집에 도착해서 마당에 텐트를 치려고 하는데 집에 빈방이 있다며 들어와서 자라고 한다. 컬트는 꾀죄죄한 내 모습을 보더니 샤워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는데 엉덩이가 퍼렇게 멍들어 있는 걸 보고 피식 웃었다. 이날의 이동거리는 140km. 9시간 넘게 작은 안장에 앉아있다 보니 엉덩이가 소리 없이 아우성을 친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하는데 컬트는 하루 더 쉬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멍든 엉덩이를 깔고 자전거에 올라타는 게 약간은 거북했는데 반가운 제안이었다. 같이 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고 햄버거를 먹자던 컬트. 군대에서도 초코파이 한 개에 종교를 바꾸던 나인데, 햄버거로 나를 유혹하는 컬트의 제안은 탁월했다.
컬트의 트럭을 타고 교회로 이동했다. 미국의 교회는 어떤 모습일지, 어떤 사람들이 모여들지 궁금해졌다. 교회에 도착하니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컬트에게 웃으며 인사한다. 컬트는 교회에서 중·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좋은 심성을 가진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멋진 일을 하고 있었다.
미국 교회에서 우리나라의 교회 풍경과 다른 점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다들 팔을 활짝 펴고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마치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듯, 눈을 감고 찬송가를 부르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속으로 ‘할렐루야’를 외치며 나는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교회 일정이 끝나고 컬트는 햄버거 가게로 나를 안내했다. ‘IN N OUT’이라는 햄버거 가게였다. ‘IN N OUT’ 햄버거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에서 맥도날드를 앞지를 정도로 유명한 햄버거 브랜드라고 한다. 미국 동부는 Shake Shack 햄버거, 서부는 IN N OUT 햄버거가 그 지역을 대표하는 햄버거라고 하는데 그 명성에 걸맞게 가게 앞은 인산인해였다. 가게에 들어서서 메뉴판을 보니 햄버거, 치즈버거, 더블더블버거 이렇게 세 종류뿐이었다. 더블더블버거는 고기패티가 두 장 들어간 것이니, 사실상 메뉴는 치즈버거와 그냥 햄버거 두 종류인 셈이다.
높은 미국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가격, 얼리지 않은 냉장고기를 사용하는 신선함, 70년 동안 변하지 않은 매뉴얼. 여러 가지 이유로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햄버거다.
맛있게 치즈버거를 먹고 있는데 컬트의 가족이 나에게 다가와 반갑게 인사했다. 인상 좋은 부모님과 3살 많은 미녀 누나, 컬트는 4인 가족의 막내였다. 수염이 덥수룩해서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줄 알았는데 2살 어린 동생이었다.
컬트의 어머니는 내게 치즈버거 맛이 어떤지 물었다. 역사와 전통을 중시 여기는 동양에서는 70년은 짧은 세월이지만 여기 미국에서는 자랑거리라며 미국식 개그를 얹으면서 말이다. 가족끼리 티격태격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마치 눈앞에서 <나 홀로 집에>가 방영되는 듯한 리얼함을 연출하는 컬트 가족.
햄버거를 다 먹고 일어나려는데 컬트의 누나 크리스티나가 내게 물었다.
“Min, 오늘은 뭐 할거니?”
“계획 없는데.”
“그럼 같이 보트 타러 가자.”
남자친구가 보트를 갖고 있다며 1시간 뒤에 근처 호숫가에서 물놀이를 하자고 한다. 1시간 뒤 크리스티나의 남자친구 그렉은 트럭 뒤에 보트를 끌고 나타났다.
‘이것이 미국의 피크닉인가.’
전날에는 정수리에 물을 끼얹으며 자전거를 타던 가난한 여행자가 누려도 될지 의문이 드는 호화로운 파티가 시작됐다. 천둥 같은 엔진소리를 내며 수면 위를 미끄러지는 보트. 보트 뒤로 연결된 줄에는 컬트가 수상스키를 타고 스릴 넘치게 쫓아왔다. 나초를 먹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는 컬트가 물에 빠질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웃어댔다. 행복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IN N OUT 햄버거 먹는다고 컬트를 따라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 이 행복한 상황도 없었겠구나.’

컬트
그렉과 크리스티나(컬트의 누나)
팔을 벌려 찬송가를 부르는 학생들
IN N OUT 햄버거
트럭 뒤에 보트를 끌고 온 그렉

호수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컬트

물살을 가르며 수상스키를 타는 컬트
예측할 수 없는 하루하루, 어차피 인생 전체가 그러하지 않을까

 


김민형 작가 blog.naver.com/alsgud0404

<저작권자 © 자전거생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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