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의 마무리 시간

일본 유학의 마무리 시간
‘바다미’가 태어나기까지의 산고

종강 후 졸업까지 한달 정도 시간이 있어 3년 간의 유학생활을 정리한다. 그동안 신세지고 도와주셨던 분들에게는 직접 만든 자전거 시계를 선물로 드렸다. 도쿄에서 서울 집까지 타고 갈 바다미도 완성한다. 구르미의 부품을 옮겨달았지만 너무 낡아 세팅하는데 선생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금숙과 떠난 졸업여행…. 나만 너무 즐겁고 행복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학교의 마지막 수업인 프레임 빌딩 시간에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바다미를 부랴부랴 조립하여 웃고 있는 인증샷까지 찍었지만 사실은 웃을 처지가 아니었다.
우선 준비한 헤드 파츠는 슈퍼 오바사이즈라 들어가질 않는다. 지켜보던 선생님이 학교의 것을 갖다 주었지만 중고라 그런지 와셔가 부족해 흔들거린다. 구르미의 부품을 이식하려고 분해해보니 기름때가 덕지덕지하고 닳고 낡은 모습에 부끄럽고 미안해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동안 말로만 “구르미, 우리 구르미” 했지 작년 여름 혼슈 여행가기 전에 정비해주고는 내내 부려만 먹은 셈이다. 특히 BB의 외장 베어링은 닳아서 풀자말자 우수수 떨어진다. 체인은 새것으로 교체했지만 크랭크, 스프라켓의 이빨도 70대 잇몸 수준이다(인사돌이라도…).

구르미 부품을 물려받은 바다미
하긴 10여년이나 넘게 구르미를 이렇게 혹사시켰으니 그동안 얼마나 아파서 나를 원망했을까. 허나 방법이 없다. 물려받을 것이라고는 이것밖에 없는 바다미는 늙은 소처럼 묵묵히 서 있다.
뒷 캐리어에 멍에처럼 걸쳐진 패니어 속에는 공구통을 비롯한 잡동사니가 무겁게 웅크리고 있다. 날짜가 모자라 불완전한 2월에 태어난 것도 억울할 건데 이렇게 훍수저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 바다미야. 흑흑~
어둠이 깔린 교정을 나선다. 앞포크 부분은 껌 딱지만한 턱에도 울컥거리고 크랭크는 갈지자로 덜컹거린다. 오르막에서는 뒷변속기의 체인이 왔다갔다 한다. 군대에서 군화를 한쪽만 신고 연병장을 뛰는 꼴이다. 이렇게 ‘바다미’의 첫걸음은 아장아장, 아니 어기적어기적이다.

도움 얻으러 직접 선생님들 가게로 
다음 날 얼마 멀지 않은 다카다노바바에 있는 이마이즈미 선생네 가게로 향했다. 비슷한 연배에 같은 MTB광이라 잘 통하는 사이다. ‘몽키’라는 브랜드로 크롬몰리 MTB 프레임을 만들어 일본의 척박한 MTB 현실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준비해간 자전거 시계를 선물하니 형제를 만난 듯 부둥켜안는다. 에이 남자끼리 왜 이래.^^ 나와 동갑내기인 부인도 신기해 하고 고마워 한다. 지금쯤 차라도 한잔 나올 타임이다. 하지만 더 이상 바라지 마시라. 이것이 일본문화다. 대신 황금색 헤드 파츠와 시마노 외장 BB의 교체 수공비는 받지 않아 부품값 3500엔만 지불했다.
더 고마운 것은 주말에 있는 일본 핸드 메이드 바이크쇼 출품으로 바쁜 눈치인데도 바다미를 위해 시간을 내준다. 좀 더 봐 달라 하고 싶지만 이럴 땐 빨리 퇴장해 주는 게 기본 예의다. 좋아서 선택한 MTB가 인기 없는 분야라 벌이가 넉넉지 않은데도 부부는 이렇게 넉넉하게 늙어가고 있다.
그래도 뭔가 1%가 부족한 듯한 바다미를 위해 오늘은 도쿄를 벗어나 45km 떨어진 오메(靑梅) 시로 향한다. 마침 TCD의 절친이자 선배(?)인 3학년 유석이도 같이 가잔다. 그의 자전거는 졸업작품으로 만든 핫한 핑크색 섹시 사이클이다.
기온은 13~14도로 약간 쌀쌀한 정도지만 라이딩하기엔 베리 굳이다. 평일의 도로는 한적하고 플라타너스 가로수 둥치에는 봄이 슬금슬금 타 오르고 있다. 유석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면서 달리는, 급할 것 없는 한가한 투어다. 아침 겸 점심으로 중화요리를 든든히 먹고 나니 시골 풍경과 보조를 맞추듯 페달링은 슬로우다. 출발 3시간만에 드디어 오메시의 ‘코키야’라는 자전거 대리점에 도착했다. TCD 최고의 자전거 메인터넌스 하마나카 선생의 아지트에 들어선 것이다.

용접의 달인 곤노 선생도 찾아가 직접 만든 자전거시계를 선물로 주었다
필자의 자전거시계를 받고 기뻐하는 하마나카(중간) 선생. 왼쪽은 필자와 동행한 유석 군
하마나카 선생이 필자의 바다미를 손봐주고 있다
필자와 동갑내기여서 ‘친구선생’으로 이름지어준 무라야마 선생의 작업실. 여기서 혼자 40여년을 지내왔다

 

산삼녹용을 먹은(?) 바다미 
넓은 얼굴에 펑퍼짐한 몸매의 하마나카 선생은 올해 34세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TCD가 개원한 이듬해 2013년부터 선생으로 활약하고 있고 실전에서 다진 정비기술로 학생들에게 인기 짱이다.
어릴 때부터 어린이 자전거보다는 BMX와 MTB를 즐겨 탔고 분해해서 조립이 안된 자전거도 여럿 된단다. 결국에는 시내의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자전거 알바도 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전거의 세계에 빠져 들었단다. 드디어 2010년에 자신만의 샵을 오픈했다. 산지가 많은 이곳 오메의 특성상 MTB가 주종이고 스페셜라이즈드의 대리점이기도 하다.
준비해간 자전거 시계에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바다미를 만져줄 타임이다. 뻑뻑하던 앞변속기에 기름을 치고 뒷변속기는 드라이버로 조정한다. 용접액이 넘쳐 케이블 가이드가 들어가지 않던 스토퍼는 이쑤시개만한 연마기로 일일이 갈아낸다.
2시간이 지나서야 작업이 끝났다. 역시 꼼꼼하고 세심한 손놀림에 바다미는 산삼녹용을 먹은 듯 벌떡 일어난다. 하지만 크랭크와 스프라켓이 많이 닳았으니 조심해서 타란다. 그려, 마지막 여행에는 좀 더 주의하고 삼가라는 부처님의 계시라는 생각이 든다. 수리비는 마음의 장부에 새겼다. 아리가토!

내 손으로 만든 특별한 선물
종강과 졸업식 사이에 한달 정도의 시간 보너스가 생겼다. 정리, 정돈, 청소, 청결, 마음가짐의 5S 시간이다. 우선 그동안 만들고 모은 프레임과 포크 등이 3박스, 부품이 2박스, 책과 옷가지가 2박스이다. 그중 박스 하나는 집사람이 가져가고 나머지는 배편 화물로 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움 받고 신세진 고마움을 갚아야겠다. 그동안 만들어온 이런 저런 모양의 자전거 시계가 대충 20여점은 되는 것 같다. 체인 병따개도 챙겼다. 남들이 보기엔 탐탁지 않겠지만 나름 아이디어를 내서 최선을 다했기에 부끄럼은 사절이다. 우선 학교 선생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시계 뒷면에는 선생의 이름과 고맙다고 썼다. 내 마음에 새긴 것처럼….
하마나카 선생을 비롯하여 철인 3종 경기에 조예가 깊은 다케우치 선생, 외로운 MTB계의 몽키 이마이즈미 선생 그리고 여행용 자전거의 귀재 벨로 크래프트의 오오즈키 선생, 일본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를 둔 세키네 선생, 도쿄 자전거활용추진센터의 우쯔미 선생에게 드렸다. 다들 좋아한다. 좋아하는 걸 보니 나는 더 행복해진다.
종강하기 전에 디자인의 타치바나 선생과 자전거 설계의 고수 사이토 선생, 그리고 담임선생인 도우도 선생에게도 선물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프레임 빌더 케르빔의 곤노 선생의 마쯔다 공방도 다녀왔다. 학교에서 나에게 무조건 협조해준 1학년 때 담임인 다카하시 아키라 선생에게는 딸을 위해 화장품 장식용 자전거 상자를 특별 제작했다. 그 외에도 아오야마 학원에 가서 교장선생을 비롯한 여러 선생과 웃고 한참을 떠들었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만드는 물건은 제작 과정도 즐겁고,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인생의 낙이 아닐 수 없다.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무라야마 선생의 작업실. 크롬몰리 프레임은 경륜선수들에게 정평이 높다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무라야마 선생의 작업 모습
TCD 미즈노 이사장에게 쓴 손편지. 자전거 통학을 허용해 달라는 내용이다
졸업식장에서 함께한 미즈노 이사장. 필자의 편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미즈노 이사장에게 선물한 자전거 시계. 캐리커처는 그를 모티브로 필자가 그렸다

 

크롬몰리 프레임의 장인, ‘친구선생’
동갑내기라 ‘친구선생’으로 이름지어준 무라야마 선생을 찾아 나선다. 가나가와현의 사가미하라(相模原)에 그의 작업실이 있다. 비교적 한적한 지역의 살림집 옆에 50여평의 창고 건물에서 환한 웃음으로 반겨준다. 이렇게 높고 넓은 공간에서 40여년을 거의 혼자서 지내왔단다. 하지만 전혀 불편함이 없고 외롭지도 않단다. 정말 그렇게 보인다.
모든 기계와 도구들이 손때에 반들반들하다. 일본 경륜선수들의 프레임을 납품할 수 있는 31개소의 NJS 허가업체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의 달인이다. 참고로 남자 경륜선수들의 프레임은 크롬몰리로 만들지만 여자 경륜선수는 5개 업체가 만든 카본 프레임을 사용한다.
아들이 두 명 있지만 자전거에는 관심이 없단다. 그동안 후계자 양성을 위해 몇 사람이 거쳐 갔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그래서 프레임 설계 프로그램도 직접 만들고 선반 등 각종 설비가 있어 1인 기업으로 불편함이 전혀 없다고. 연간 80여대의 크롬몰리 프레임을 제작하고 있으며 러그나 브릿지, 엔드 등의 소품도 납품받아 다시 가공·연마하여 본인만의 노하우가 발휘되어 선수들이 꾸준히 찾아온다.
사실 프레임을 용접하는 시간보다 이러한 소품들을 준비하고 다듬는 시간이 더 소요된단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작업을 본인은 좋아하고 즐긴다. 선수들이 폐기하는 프레임은 전부 수거해 별도 처분하는 것도 마케팅의 기술로 여겨진다. 일주일에 이틀의 TCD 수업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가르치는 보람도 있어 즐겁단다. 
큰 작업장에서 2시간반 정도 나눈 대화에서 우린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30여 년 전 자신의 인터뷰가 나온 잡지도 챙겨주고 총알처럼 생긴 소품을 시트스테이 부분으로 가공한 것을 선물로 주었다. 작별의 악수를 하다가 서로 부둥켜안았다. 찔금거리는 눈물로 앞이 흐릿하다.

불편한 진실
엄마 손을 잡고 들어섰던 초등학교 첫 교정의 설렘처럼 TCD 입학에 가슴에는 북소리가 요란하다. 쿵쾅쿵쾅. 그런데 학교 안내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잠깐 내 귀를 의심했다.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면 안된다”는 것이다. 확인해 보니 학교 교칙에 ‘자전거 통학 금지’라고 명시되어 있다.
자전거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면 안된다니! 우리나라도 자전거 통학 금지 학교가 많듯이 일본에도 비슷하단다. 물론 자전거 사고와 주륜장(주차장)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는 자전거 학교 아닌가. 이 문제는 학교나 선생들을 원망하기 전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 남들에게 얘기도 못 꺼내는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로 남아 있었다.
허나 교칙을 지키기에는 도쿄 지하철이 콩나물 시루였고 산뜻한 바람과 쨍쨍한 햇님의 유혹을 떨쳐버리기엔 나약한 존재이기에 매일 자전거 페달을 밟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의 불법(?) 통학이 밝혀지더라도 학교에 할 말은 하고 가는 게 맞다고 결론지었다. 긁어 부스럼이 생기더라도 그저 시원하게 긁고 싶은 때도 있기 마련이다. 하여 학교의 설립자인 미즈노 이사장께 손편지를 썼다.
  미즈노 이사장은 40여 년 전에 이곳에 자신의 전공인 쥬얼리 전문학교를 설립하여 최고의 명문으로 키웠으며 70세가 넘은 고령에도 학생 세미나에 주역으로 참가할 만큼 왕성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내가 쓴 편지 내용이다. 

존경하는 미즈노 이사장님께
열정적인 이사장님과 능력있는 선생님들 덕분에 이곳 TCD에서 자전거에 대한 지식과 매력을 한층 더 배우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옥에도 티가 있듯이 TCD의 아쉬운 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다름 아닌 ‘자전거 통학 금지’입니다. 물론 이 같은 조치는 자전거 사고로 인한 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려는 배려일 것입니다. 또한 많은 학생들의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주륜장 확보 역시 현실적인 문제임이 분명할 것입니다.
하지만 TCD는 다름 아닌 자전거 학교입니다. 그것도 동양 최고의 명문 자전거 전문학교입니다. 따라서 자전거에 대한 정책만큼은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출발점을 ‘통학 금지’가 아니라 ‘자전거 통학 우선’이라고 정하고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겁니다.
첫째 자전거 사고입니다. 도로에서의 교통사고를 본다면 자전거보다 자동차로 인한 인명 피해가 훨씬 클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전거 타기를 꺼려하는 가장 큰 이유가 “위험해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들 자전거를 타지 않고 심지어 자전거를 만드는 사람들조차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면 도로에서 자동차는 더 질주할 것입니다. 미국의 한 통계를 보면 자전거가 늘어날수록 교통사고는 오히려 줄어든다고 했습니다. 이는 도로에 자전거가 많아지면 자동차 운전자들이 더 주의를 기울이고 속도를 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헬멧이나 장갑 등의 보호장구 착용을 의무화하고 정기적인 교육과 함께 도로에서의 교통 캠페인을 통해 자전거의 안전성을 적극 홍보하는 것이야말로 줄어들고 있는 자전거시장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학생들의 통학 루트를 분석하여 지역별, 시간별 스테이션을 지정하여 ‘사이클 버스’를 운영함으로써 단체 라이딩의 안전성과 홍보의 이점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주륜장의 문제입니다. 학생들의 주륜장을 마련하기 위해 부지를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우선 학교 주변에 주륜장들이 있고 이용료는 하루에 100엔 정도로 저렴하여 학생 개인도 부담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학교가 주륜장과 계약을 맺는다면 학생들의 부담은 더 줄어들겠지요. 또한 기존의 학교 공간을 잘 살펴보면 구석구석 자전거를 세워둘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디자인 수업에 아이디어 공모전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건물과 건물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 자전거 거치장을 만들어 주목받은 디자이너도 있더군요. 학교의 이미지 또한 학생들의 아이디어에 의해 빛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자전거 빌더는 ‘자전거 라이더’입니다. 자전거는 차가운 철로 만들어지지만 빌더의 손을 거치면 따뜻한 친구로 변모합니다. 친구도 쉽게 얻을 수 없듯이 자전거 역시 젖먹이 어린애를 다루듯이 매일 다듬고 신경써야 합니다. 각도, 길이, 두께, 불의 온도 등 미세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직접 도로를 달려 보면서 코너링, 브레이킹, 댄싱 등을 체크하고 느낀 점을 피드백하여 다시 손질함으로써 작품이 탄생되겠지요.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의 명품 자전거 빌더들은 대부분 자전거 선수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즉 자전거 경험이 많을수록 자전거도 그 만큼 잘 만든다는 얘기겠죠.
저는 이제 졸업식이 끝나면 제가 만든 자전거로 도쿄를 출발하여 남서쪽으로 달려 시모노세키에서 페리로 한국의 부산에 도착하여 서울의 집까지 갈 예정입니다. 그 동안의 자전거 여행 중 가장 설렙니다. 왜냐면 내가 직접 만든 자전거로 달리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니 TCD 후배들이 쏟아지는 햇볕과 볼을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건강하고 해맑게 웃으며 자전거로 학교에 오는 모습에 저도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자전거가 좋아 TCD로 모인 이들에게 자전거 안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쓰고는 번역기를 돌렸더니 도통 먹통이다. 이화령을 넘었으니 서울이 보일 줄 알았는데 소조령이 어깨를 세우고 있는 꼴이다. 수소문 끝에 유료 번역 앱을 찾았다. 번역가는 일본여성인데 일본에서는 이렇게 학생이 건의서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단다. 그래서 최대한 부드럽게 번역했단다. 역시 돈은 편리하다.
24시간만에 일본어 번역문 대령이다. 읽으면서 고개를 끄떡이며 읽으시라고 세로쓰기 손편지를 썼다. 연필로 꾹꾹 눌러서 정성껏 썼다. 그리고 본인의 캐리커처가 들어간 자전거 시계도 같이 보냈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역시 돈과 정성 즉 물심양면의 투입이 효과를 발휘한다. 먼저 메일이 왔다. 그리고 졸업식 날에는 얘기도 나눴다. 편지 잘 받았고 여러가지 제안을 해줘서 고맙고 적극 검토해 보겠다고 한다. 자전거 시계에 대해서도 상세히 말씀하면서 본인 집무실에 잘 걸어 놓겠단다. 마침 옆에 있던 교무부장이 내 족보를 얘기해주니 우리 학교에 대단한 사람이 들어왔다고 칭찬도 한다. 진즉에 아는 체 했으면 장학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으려나. 꿈 깨쇼.^^

졸업여행
3년간 일본에 있는 동안 방학 때마다 일본 전국을 쏘다녔고, 평소에도 학교 등하교는 자전거를 이용해서 매일매일이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 혼자만 너무 즐기는 것 같아 양심이 조금 아프다. 그래서 졸업을 앞두고 ‘베이스캠프’의 주인장이자 내 보호자인 금숙을 초대한 졸업여행을 기획했다.
3박4일의 일정 중에서 기숙사의 이사장 부부와 1박2일 온천여행을 간다. 목적지가 북쪽 산악지역이라 4륜구동 RV카에 스노타이어까지 장착된 차를 준비했다. 온천호텔도 예약했다. 이 모든 것을 이사장이 척척 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4명이서 호젓하게 떠나는 여행은 정말 한가하고 정답다. 오래된 광고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배우 한석규가 대나무 숲을 거닐면서 “지금은 핸드폰을 꺼두셔도 좋을 듯….”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그냥 두런두런 얘기하다가 유부소바도 먹고 길옆 상점에 들러 시금치며 부추 등도 가득 산다.
터널도 꾸불꾸불한 지방도는 30km를 가는데 1시간이 걸린다. 거의 로드바이크 수준이다. 드디어 도착한 시골의 온천호텔은 군데군데 흰 솜을 덮고 있다. 고스톱 한판할 화투도 없고 술도 안하는 착실 이사장 부부와 이 긴긴밤을 어찌 보내랴. 대단한 발견. 탁구장에서 88올림픽 이후 처음이라는 이사장과 삼판양승 내기가 붙었다. 땀과 함께 허기가 몰려온다.
저녁식사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바야흐로 바이킹(뷔페)이다. 회와 초밥을 쟁반이 깨져라 담았다. 레버만 제끼면 생맥주가 콸콸, 일본주 되병도 얼음을 깔고 누워 있다. 사랑하는 사람도 바로 옆에 있다. 그야말로 엘도라도, 무릉도원이다.
순서가 좀 엉켰지만 취기를 안고 노천탕으로 향했다. 몸을 담그면 답답하고 일어서면 찬 공기가 휘돌고… 그래도 정신은 맑아 오고 피부는 30년 전으로 회복되는 것 같다. 다시 4명이 뭉쳐서 자판기 앞의 휴게소에 자리를 텄다. 마치 초등학교 동창들끼리 놀러온 듯 얘기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방문을 여니 창문에는 비가 주루룩 흘러내린다. 정말 분위기 죽인다. 위에 계신 분도 적극 협조에 나선다.
다음 날 닛코(日光)로 향한다. 밤새 내린 비가 아쉬운지 아직도 훌쩍거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날씨 따윈 관계가 없다. 도쇼쿠에 도착했다. 내가 제일 와보고 싶던 곳이어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고등학생 때 읽은 <쇼군>이라는 소설속의 여러 인물 중 도쿠가와가 일본 무사 중 최고라 생각들 때가 있었지.
도쇼큐에 들기 전에 큰 절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절을 배치함으로써 쳐들어온 적들의 전투력을 상실시켰단다. 과연 도쇼큐는 웅장하고 화려해서 눈이 두 개인 것이 아쉽다. 그동안 봐 왔던 흑백 위주의 일본 궁이나 신사와는 완전히 다른 그야말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다. 통나무를 정교하게 깎아서 모양을 만들고 색칠했다. 지붕은 기와 위에 검정철판을 촘촘하게 덧씌웠다. 벽이나 모서리에는 누런 동판을 붙여 한층 품위 있게 연출한다.
눈과 입과 귀를 각각 막고 있는 원숭이들은 인간에게 참을 인(忍) 자를 가르쳐 주고 있다. 천장에 그려진 용의 머리 밑에서만 소리가 바이브레이션되는 불가사의도 들었다. 잠자는 고양이상을 찾으려고 모두가 천장이나 벽을 올려다보고 있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간 언덕에 자리한 도쿠가와 이예야스의 무덤은 큰 냄비 뚜껑처럼 가운데 첨탑이 있고 팔각단 암석으로 포장되어 있다. 어째 하필 무거운 돌로 눌러 놨을까. 잔디로 덮었으면 덜 답답할텐데.
오랜만에 금숙과 함께 나카노에 가서 쇼핑도 하고 단골 포장마차의 마키노 주인장에게 집사람 미모(?)도 자랑했다. 졸업식 당일에는 학교 앞 단골식당에 가서 이번주 추천요리인 닭고기 튀김과 스파게티를 먹었다. 졸업식에서는 학교 이사장에게 소개 인사를 했더니 딸인 줄 알았다고 농담을 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아재개그는 어째 이리도 비슷할까. 그래도 금숙은 은근 기분이 좋은가 보다. 우에노의 아메요코시장의 시끌벅적에서 남대문시장을 본다. 시간은 슬로비디오로 흐르고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이 있는 닛코 도쇼쿠로 졸업여행을 떠났다. 왼쪽은 기숙사 이사장 부부
졸업여행 중 온천호텔에서 금숙과 함께. 미즈노 이사장은 딸인 줄 알았단다~
졸업식장에서 졸업장과 화환을 받아드니 감회가 새롭다
떠나기 전 일본어를 배운 아오야마 학원을 방문해 후배 학생들과 함께
필자가 만들거나 모은 프레임들

 

 

저작권자 © 자전거생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