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야마 거쳐 히메지성으로, 감탄의 후유증인가 첫날부터 대실수

일행과 헤어져 이제부터는 혼자다
오카야마 거쳐 히메지성으로, 감탄의 후유증인가 첫날부터 대실수

현직에 있을 때부터 자전거여행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이홍희 전 해병대사령관이 지난해 몽골 투어에 이어 이번 봄에는 일본 오카야마와 간사이지방을 다녀왔다. 오카야마현 초청으로 새로 개설된 자전거 코스를 답사했고, 이후에는 오사카, 교토, 나라 등 일본의 역사·문화적 중심지인 간사이(關西) 지방을 미니벨로와 전철을 이용해서 돌아보았다. 그의 여행기를 몇 회에 걸쳐 소개한다

 

강바람 산바람을 맞으며 달린 오카야마 피치라이드

 

맑은 날씨면 부산을 비롯한 남쪽 지방에서는 맨눈으로도 일본 땅 ‘대마도’를 볼 수 있다. 부산에서 40km 남짓한 거리에 있어 배로도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백령도에서 중국 쪽으로는 웨이하이가 약 220km 위치에 있으니 한국에서 제일 가까운 나라는 일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정말 지척에 있는 나라 일본이지만,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오래 전 학교에서 역사시간에 배운 내용과, 그 후 나이가 들면서 역사 및 전쟁사 서적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습득한 정도로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웃나라 먼 나라’
어디로 여행을 가든 무엇을 보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별다른 사전 준비 없이 여행지에 도착하여 가이드가 안내하는 데로만 여행을 하고 오면, 시간이 지날수록 여행 기간 중에 느꼈던 많은 것들이 기억에서 점차 사라지고 사진만이 여행의 기억을 전해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사진을 보고도 여기가 어디인지, 여기가 왜 유명하고 어떤 내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것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일본에 대한 몇 권의 책을 읽고,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도 몇 편 읽어보았다. 그 중의 한 권이 <먼 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인데 한때 꽤 많이 읽혔고 아직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일본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책의 제목과는 정반대의 나라 ‘이웃나라 먼 나라, 즉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닐까 싶다. 이 말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또 다른 이유로 인해 거리감을 느낀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여러 요인들 속에서도 최근 일본을 찾고 있는 우리나라의 여행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2017년 일본을 찾은 외국여행객 중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달했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일본 오카야마현(岡山県) 기비추오초(吉備中央町)가 주최하는 3박4일 간의 ‘산간자전거길 개발 투어 행사’에 참가한 다음, 그동안 개인적으로 생각만 해오던 일본 자전거여행을 교토, 오사카 일원에서 4박5일간 하기로 했다(개별 자전거 여행은 일본 전역을 거미줄처럼 잘 연결되어 있는 철도망을 이용해 지역과 지역 간을 이동하고, 그 지역에 도착해서는 접이식 미니벨로로 돌아보기로 한다).

나무조각으로 인형을 만든 민박집 주인의 알뜰한 센스
피치라이드 개막식
피치라이드에서 조용연 작가와 함께
복숭아와 함께 모두가 어우러졌던 피치라이드 폐막식

 

일본에서의 첫 라이딩, 또 다른 맛과 멋
초청행사가 열린 오카야마는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 일본의 혼슈·시코쿠·규슈 사이에 5개의 뚜렷한 내만으로 이루어진 해역) 중간쯤에 위치한 현으로 육·해상 교통의 요충지이자  농업이 주력산업이다. 기비추오초는 오카야마현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 지역이 해발 200~500m 정도의 ‘기비(吉備) 고원’이라 불리는 고원지대에 속하고 있다. 

오카야마는 일본의 전래동화 중에 나오는 모모타로(桃太郞, 복숭아 아이)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카야마에 도착하게 되면 복숭아꽃을 모티브로 한 조형물과 현수막을 많이 보게 되는데, 모모타로와 관련된 전설의 진상을 알게 되면 약간 입맛이 개운하지 않다. 

‘옛날에 한 노부부가 살았는데…’로 시작하는 전래동화에 의하면 노부부가 강을 떠내려 오던 큰 복숭아를 하나 주웠는데, 이 복숭아에서 태어난 아이가 모모타로이고 이 아이는 점차 힘센 청년으로 성장하게 되어 악한 도깨비를 물리치러 가는 내용이 나온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우라(溫羅)라는 도깨비가 키노죠(鬼ノ城. 오카야마현 소자 시에 있는 산성)에 살면서 사람들을 괴롭히자 조정에서 이를 물리치려고 키비츠(모모타로의 배경이 된 인물)를 파견하여 우라(溫羅)의 목을 베었다라고 전해지는데, 전설 속의 도깨비 우라가 백제의 왕자라는 것이다. 미개했던 이 지역에 선진문물을 전해준 고마운 존재를 도깨비로 그리고 있어서 마음이 착잡하다. 아마도 덩치가 크고 무장을 갖춘 모습이 원주민들에게는 도깨비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오카야마 산간지대에서 펼쳐진 국제 모임
오카야마현에서 초청한 행사는 ‘기비추오초 선정 코스 답사 라이딩’과 ‘아카이오 복숭아길 라이딩 2018’ 행사로 나누어져 각각 1박2일씩 진행되었다. 기비추오초에서는 초·중·상급의 3개 라이딩 코스를 개발해 일본 국내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이미 의견을 수렴한데 이어 이번에 주변 3국의 자전거 전문가를 초대해서 또 다른 차원에서의 의견을 묻는 행사를 계획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전거생활>에서 나를 포함해 조용연 여행작가 등 2명이, 홍콩과 대만에서는 젊은 파워블로거 5명이 초대되었다. 

인천공항을 떠난 지 1시간30분 만에 오카야마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가랑비가 오는 가운데 타비피아 전민수 대표와 JTB 오카야마 지부장 다무라 씨, 그리고 지자체 관계자 2명이 함께 환영을 나왔다. 여장을 풀지도 않은 채, 국도변에 있는 농산물 직판장에서 점심을 하면서 일정과 코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시간이 넉넉하지 못한 관계로 비를 맞으며 답사 라이딩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기비추오초에서 선정한 3개 코스는 각각 30km 정도의 거리이며 제일 난이도가 있다는 3코스(기비삼림 식물원 코스)도 표고차가 300m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코스들이어서 각 코스를 주행하는 데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이번에 선정된 코스들은 별도로 새롭게 개척한 것이 아니고 기존의 산간 임도와 마을 길, 하천 길을 연결해서 지정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것이 일본의 마을과 자연 등을 있는 모습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세부 코스는 <자전거생활> 5월호 198~202페이지 약도 참조)

 

산간 고원지대를 위주로 달린 기비추오초 라이딩. 오른쪽은 ‘철TB’로 일본 전국을 일주한 고시로 씨
목욕을 함께 하면 금방 친구가 된다. 온천에서 일행과 더불어
농가 민박의 아늑함. 하지만 밤에는 매우 추웠다

 

키비추오초 세 코스 답사

자연에 흠뻑 젖다
첫 번째 코스는 키비추오공원에서 나루다키댐과 삼림을 돌아오는 코스다. 비가 오는 가운데 기비추오초 관광과에 근무하는 고시로 씨와 함께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는다. 곧 주변경관을 보면서 라이딩에 몰입한다. 라이딩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의 주제는 역시 자전거일 수밖에 없다. 

고시로 씨는 대학교에 다닐 때 자전거 중에서 가장 운동이 많이 되는 흔히 얘기하는 ‘鐵TB(?)’를 타고 일본열도 1만5000여km를 여행했다고 하니 젊은 나이라 하더라도 그 패기를 높이 사고 싶다. 나에게 한국의 4대강 코스를 타봤느냐고 묻기에 4대강 코스 종주는 물론 전국 해안 종주, 백두대간 횡단라이딩 등의 경험을 얘기해주었더니 꼭 한국으로 자전거여행을 오겠다고 한다. 그날이 기대된다. 

대부분의 일본 도로는 차로와 자전거도로가 분리되어 있어 라이딩하는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으나 교차로를 만나면 좌측통행 시스템 때문에 처음에는 약간 혼란스럽다. 가랑비가 오지만 코끝으로 들어오는 공기와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은 머리를 더욱 맑게 해줘서 너무나 좋다. 코스가 25km 정도라 약간 부족한 듯 아쉬움은 있지만 그 아쉬움은 다음 코스에서 보충하기로 한다.

두 번째 코스는 가요우휴게소에서 아마토신사를 돌아오는 코스다. 이번 코스는 해발 200~500m의 ‘기비 고원’이 주는 청량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이다. 목장이 이어지고 중간 중간 포도밭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백두대간 종주 라이딩이나 임도를 달릴 때 숨을 몰아쉬며 오른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조망은 아닐지라도 일본의 울창한 산림을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전망대라고 해서 별도의 시설이 갖춰진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코스는 카모카와엔죠휴게소에서 기비삼림식물원을 돌아오는 코스다. 이번 코스는 그래도 일본에 와서 접하는 코스 중에서 제일 아름답고 경사도 적절하게 있어서 제법 타는 맛이 난다.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 숲이 있는가 하면, 임도 전체를 완전히 어둠으로 몰아넣을 듯한 대나무 숲도 있어서 한국에서 접하기 쉽지 않는 이국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중간 중간 지나는 마을길에서 만나는 차량도 자전거 여행자에게 경적을 울리는 등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오래 전, 일본을 자전거로 여행한 여행기를 본 적이 있다.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터널을 통과하게 되었는데, 차가 없을 때를 골라서 터널에 진입해 무사히 다 빠져나온 다음 뒤를 돌아보니 여러 대의 차가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했다. 뒤따라오던 차들은 자전거 탄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배려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 차들이 다 지날 때까지 도로 옆에 서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 들었다. 일본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배운다고 들었는데, 그런 모습은 이번 일본 여행 내내 여러 곳에서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다. 

‘아카이와 복숭아길 라이딩 2018’  

강바람을 타고 오는 봄을 마신다
키비추오초 코스 답사에 이어 오카야마현 아카이와시(赤磐市)와 자전거협회에서 주관하는 1박2일간의 ‘복숭아길 라이딩 2018’에 참가했다. 이 행사에는 외국 초청 인원 외에 오사카 지역 동호인 20여명도 참가했다. 

야나하라(柵原) 광산박물관 광장에서의 개막행사를 한 다음, 자전거협회 소속 스탭이 선도하는 가운데 요시이 강을 따라 와케(和氣) 체육공원까지 23km의 길을 달린다. 어제 라이딩했던 기비 고원 일대의 코스들과는 달리 아름다운 강둑길을 달려 가슴 속까지 상쾌해진다. <자전거생활>에 ‘한국의 강둑길’을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는 조용연 작가가 요시이 강이 전해주는 강바람의 상큼한 기분을 놓칠 리 없다. 조작가가 한참동안 강바람을 즐기며 달리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본연의 업(業?)인 취재 모드로 전환해 행사 전반에 대한 취재에 여념이 없다. 최고의 경지에 있는 조용연 작가의 프로정신을 곁에서 마음껏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기쁨인가(동시에 두 가지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요시이 강을 따라 있던 폐 철길을 활용한 코스여서 경치가 아름답고 라이딩하기에도 편하고 좋다. 주말이라 가족단위로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꽃망울을 터뜨리기 직전의 자연을 즐기는 가족단위의 나들이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한 폭의 그림이고 작품이다. 

목적지인 와케 체육공원에 도착한 다음 주변에 있는 대형 온천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일본의 에게해’라고 불리는 세토나이카이에 연해있는 호텔로 이동해 아카이와시에서 주최하는 만찬을 즐겼다.
해가 넘어가는 호텔 앞의 바다는 정말 아름답다. 호텔의 음식이나 시설보다는 아름다운 바다를 보여주기 위해 장소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바닷가에서의 훌륭한 만찬을 마치고 사이클리스트 父子가 경영하는 펜션으로 이동해 여장을 풀고 하루를 정리한다.

오르막이 적절한 30km 코스
둘째 날이다. 어제 밤에 푸욱 쉬었더니 몸과 마음이 상쾌하다. 오늘은 어제 도착지였던 와케 체육공원을 출발하여 아카이와 농산원예직매장까지 가는 약 30km의 코스다. 라이딩 중간에 있는 영국정원을 지나면서부터 제법 경사도가 있는 오르막을 만나는데, 제대로 라이딩 하는 기분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그런데 참가자들의 실력차가 많아서인지 대열이 늘어지고 아예 끌고 가거나 중간에 쉬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우리나라의 백두대간 횡단 코스나 산악자전거 코스들에 비하면 아주 쉬운 편이다. 

오르막길은 천천히 템포만 유지하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오늘 달리는 코스는 지나는 차량이 많아 복잡하기도 하고 갓길이 없어서 위험하기도 하여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다들 안전에 유의하며 달려 별 사고 없이 최종목적지인 농산원예직매장에 잘 도착해 폐회식을 끝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사케 잔(盃)을 타고 유유히 흐르는 단상들
공식적인 행사를 끝내고 오카야마 시내로 이동해 오카야마역 근처 호텔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한다. 저녁식사는 이번 행사를 공동 주관한 JTB의 오카야마 지부장(타무라 히데아키氏)이 조용한 정통 일본식당에 마련했다. 남자들끼리 만나면 술이 오가게 마련이고, 이번 초청행사의 목적이 오카야마 지역의 자전거여행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것이므로 얘기의 처음과 끝은 자전거가 될 수밖에 없다. 역시 오늘 같은 자리에서의 분위기 메이커는 단연 사케와 맥주가 차지하게 된다.

이번 행사를 통해 느낀 것 중에서 무엇보다도 참 부러운 것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몇몇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자전거와 관련해서 전담 공무원이 편성된 곳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곳 기비추오초 같은 소단위 지방에서도(우리의 읍 정도 규모) 일본 최대 여행사와 연계해서 이런 행사를 기획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오카야마 현에서도 시장을 비롯해 행사에 적극 참가하는 등 더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지역 행정관서와 관광업체가 함께 머리를 싸매고 주도면밀하게 추진하면 분명 더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음은, 이번 일정 중에 농가에서 하루 민박을 한 것이다. 낮에 비를 맞으면서 라이딩을 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민박하던 날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많이 추웠다. 다다미 방에서 별다른 난방기구도 없이 ‘유담뽀’(철제나 고무 용기 안에 끓인 물을 넣어 잠잘 때 이불 밑에서 다리와 몸을 따뜻하게 하는데 사용하는 도구)를 이불 속에서 안고 잤던 경험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덕분에 이불 안은 따뜻했지만 이불 밖에 나와 있던 입술은 추워서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옛날 군대생활 할 때 추운 겨울에 야외훈련 나가서 숙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 밤에 따뜻한 물을 탄약통에 넣고 타월에 싸서 침낭 안에 안고 산 속에서 밤을 지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추위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때는 서른 전후의 젊은 나이였고…. 

일본에서는 친인척이 오는 경우에도 집에서 함께 밤을 지내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농가에서 보낸 하룻밤의 민박은 일본의 속살을 느낄 수 있었던 참으로 소중한 기회였다. 행정관서(기비추오초)에서 농가를 선정하고 국내외 관광객들과 연결, 유치하는 현재의 프로그램을 좀 더 체계적으로 추진한다면 매우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이번 봄에는 타이완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와서 숙박하기로 이미 예약이 되어 있다고 했다).

 

산과 들, 강물이 평화로운 전원풍경을 이룬 오카야마현 아카이와 둑길 라이딩
피치라이드에서 옛 열차를 시승했다
피치라이드 중 만난 폐역사. 보존된 폐역사는 서정적인 추억이다

 

한국 라이더 입장에서의 조언
기비추오초에서 준비한 코스를 달려본 결과, 고원지대라서 심한 업다운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평이한 코스였다. 한국 라이더를 기준으로 한다면 코스 구성을 일부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최근 들어 한국인도 해외로 자전거여행을 많이 나가고 있고 차츰 증가 추세에 있다. 주행거리만으로 생각한다면 최소한 하루에 70~80km 정도로, 1회 여행 시 3~4일 정도의 일정을 계획한다고 생각하면 보다 다양한 코스 개발은 물론, 거리를 좀 더 늘리는 것이 좋을듯하다(이번 행사와 같이 영국정원, 삿포로와이너리 외에도 주변의 명소를 연계). 

예를 들어 일본은 섬나라이므로 바다를 볼 수 있는 구간과 연계시키는 것도 고려해봄직 하다. 고원지대인 기비추오초의 자연경관과 ‘아사히 강’이나 ‘요시이 강’, 그리고 세토나이카이를 연계시키면 꽤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답사 라이딩을 한 기존의 코스로서는 섬나라인 일본의 특성을 제대로 나타내기엔 아쉬움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돌았던 3개의 코스만을 기준으로 볼 때는 자전거여행을 오는 외국 라이더들이 단독으로는 길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어(코스 안내 표지판, 경로상 노면 표지가 매우 부족함) 라이딩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다소 부족한 것 같다. 코스 안내에 필요한 표지시설은 물론 가이드 확보, 안내서 제작을 위해 여행사와 함께 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오카야마현이나 키비추오초 만의 상품을 개발하기 보다는 오카야마 인근 타 지역의 코스와 연결해 어드밴티지(혜택)를 상호 교환하는 방법 등을 강구한다면 보다 많은 여행객들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동료인 조용연 작가는 다른 일정으로 바로 귀국해야 하고, 나는 또 다른 자전거여행을 위해 일찍 이동해야 하므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지만 이 정도에서 저녁 토론의 장(?)을 마무리 하고 숙소에 들어와 짐을 챙기고 쉬었다. 일본에서의 첫 라이딩 경험, 참으로 좋았고 많이 느낄 수 있었던 알찬 시간이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혼자만의 자전거여행도 기대된다.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는 단독 여행의 시작

솔로로 나서는 사람은 힘이 들고, 보는 사람은 속이 타들어간다
이튿날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솔로(?) 여행에 대한 기대와 걱정 때문이리라. 식사를 한 다음 오카야마역에서 먼저 귀국하는 조용연 작가와 헤어지고 나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한다. 일본에서의 첫 단독 여행인지라 한정된 일정(5일) 동안 여러 곳을 보고 싶은 마음과 한두 곳이라도 제대로 봐야지 하는 마음이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오카야마로부터 멀지 않은 오사카와 교토를 중심으로 하는 여행계획, 그것도 학교 다닐 때 많이 들었던 아스카, 나라, 교토의 대표적인 명소를 중심으로 하되, 평소 궁금했던 일본의 성(城) 몇 군데를 포함해서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오카야마역에서는 노선이 많아 엄청 복잡할 뿐만 아니라 역의 규모도 굉장하다. 일본에 오기 전에 간사이지역에서 통용할 수 있는 열차페스(JR-West Rail Pass, 일정 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사용 가능한 교통카드)를 구매했는데 과연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부터 걱정이다. 

일단은 개찰을 하고 열차에 오른다. 생전 처음 타보는 신칸센 열차다. 나는 20분 거리에 있는 히메지성(姬路城)을 보기 위해 히메지까지 가고, 이번 행사를 지원했던 전민수 타비피아 대표는 오사카까지 간다. 직장에 출근하는 워킹맘이 출근에 앞서 유치원 가는 자녀들에게 하나하나 일일이 짚어주며 얘기하는 것처럼 전대표는 나에게 개찰구를 통과하는 요령은 물론, 환승역에서 환승 요령 등을 꼼꼼하게도 설명해주었다. 여자 특유의 섬세함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철두철미한 직업의식이겠다 싶은 생각도 들어 고맙기만 하다. 전대표가 탄 열차는 떠나고 나는 이제 완전한 솔로가 되었다.

오카야마에서의 마지막날, 세토내해로 지는 노을이 황홀하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은 히메지성
성곽을 에워싸고 있는 해자
성곽 안쪽에 조성한 해자인 산고쿠보리
조총과 대포를 쏠 수 있게 만든 구멍, 사마
일본도 칼날을 연상케 하는 부채꼴 축성법

 

히메지성의 웅장함에 기가 죽다
히메지역 역사를 나서는데 히메지성이 바로 정면 저 멀리 보인다. 굳이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길을 잃을 염려는 더더욱 없다. 단지 오후 늦게부터 예보되었던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니 그게 걱정일 뿐이다. 배낭을 역에 있는 물품보관소에 보관한 다음 가볍게 히메지 성을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보관료가 만만치 않아, 히메지성에 도착해서 자전거와 함께 보관할 생각에 주변의 일본거리를 구경하면서 히메지 성으로 페달을 밟아간다. 

히메지는 일본 혼슈(本州) 서부 효고현(兵庫縣)에 있는 도시로 고베(神戶)의 서쪽, 세토나이카이 가까이에 있는 교통의 요지이며,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전후 복구를 통해 근대 중화학공업도시로 발전한 곳이다. 히메지시에 있는 히메지성이 단독 여행의 첫 방문지다. 

오카야마에 외벽이 검어서 우조(烏城, 까마귀성)로 불리는 오카야마성이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히메지성은 외벽이 희고 전체 모습이 우아하다 하여 백로성(白鷺)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으며, 일본의 여러 성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일본 제일의 명성(名城)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성을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는데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보았던 히메지성이 바로 앞에 턱하니 버티고 서있다. 멀리서 보아도 그 모습이 매우 웅장하구나 싶은데, 성의 정문으로 다가갈수록 더욱 위압감이 더해진다. 히메지성은 14세기부터 이곳에 있던 자그마한 성을, 일본 통일의 3대 주역이자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성주가 되면서부터 천수각을 세우는 등 성을 전투 위주로 정비했다. 현재의 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때에 그의 사위 이케다 테루마사가 주변 세력을 견제, 방어하기 위해 보강공사를 실시하여 1609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여러 차례 증·개축이 있었지만 주요 건물은 400년 전의 위풍당당했던 그 모습으로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철옹성(鐵甕城)
성은 기본적으로 전투를 대비한 시설이다. 히메지 성도 해자(垓字)와 3중의 성곽으로 이뤄진 방어체제를 갖춘 종합적인 방어용 축성물이다. 대부분의 일본 성이 그러하듯이 성의 바깥에 인공 물길인 해자를 파고 해자를 따라 성곽을 설치함으로써 적의 공격 속도를 지연시키거나 어느 한 방향으로 몰리도록 축성되어 있다. 

3중의 성곽 중에서, 외성을 통과한 적이 쉽게 진출할 수 없도록 중간성을 축성해 놓았으며, 중간성 이후 최종 목표인 천수각으로 접근하는 과정에서는 방향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게 하기 위해 여기저기 미로를 설치해놓았는가 하면 통로의 넓이도 넓어졌다 좁아졌다를 불규칙적으로 반복함으로써 매우 혼란스럽게 해놓았다.   

정문인 오테몬(大手門) 이후부터는 천수각 전체를 에워싸는 별도의 해자는 없고 단지 ‘산고쿠보리’라는 사각형 형태의 해자가 있을 뿐이다. 이 해자는 중간 성벽을 통과한 공격자를 두 방향으로 분산시켜 각개격파 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 성곽 밖으로는 센바강(船場川)이 가까이에 흐르고 있어 해자와 비슷한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외성을 넘어온 이후 천수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중간성과 내성을 돌파해야 하는데, 천수각으로 이동하는 경로 여러 곳에서 공격자들의 진출을 지연시키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낮은 문 여러 개를 설치해놓았는가 하면, 이동 경로도 빙빙 돌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어 웬만해서는 방향 감각을 제대로 잡을 수 없고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막다른 골목을 포함해서 공격자들의 속도가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는 활과 조총으로 공격자를 공격하기 위한 ‘사마’라는 것이 반드시 설치돼있다. 사마(狹門)는 천수각과 망루, 토담의 벽면에 활과 조총을 쏘기 위한 구멍으로서 성을 방어하기에 중요한 곳에 원형, 삼각형, 정방형(뎃포사마 鉄砲狭間, 조총用), 종장방형(야사마 矢狹間, 화살用)의 4종류가 있는데 무려 997개소나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최종적으로는 천수각 벽을 기어오르는 공격자를 뜨거운 물이나 기름, 돌 등으로 공격할 수 있는 구조물(이시오토시, いしおとし)을 마련해놓았는가 하면, 적이 감히 성벽을 타고 오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성벽에 회반죽을 하는가 하면, 성벽 상단으로 갈수록 거의 수직에 가까운 경사를 두는 부채꼴 축성법으로 성벽을 쌓았다.  

공격자들이 천수각 내부로 진입에 성공해도 공격자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진출 속도를 늦추기 위해 힘쓴 흔적을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엄청 좁고 가파르게 되어 있고, 계단이 끝나는 곳 상단에는 뚜껑을 만들고 잠금장치를 설치해놓아 올라가는 것이 아예 불가능할 것 같다.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진출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면 무사들이 몸을 숨기고 있다가 총이나 창으로 등 뒤에서 공격할 수 있는 공간(무샤가쿠시, むしゃかくし)을 도처에 만들어 놓아 공격자들이 결코 한 발짝도 쉽게 옮길 수 없겠구나 싶다. 

또한 적의 공격에 즉각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무구걸이(평소 투구, 갑옷, 총 등을 걸어놓는 거치 공간)를 요소요소에 마련해 놓았으며, 전투 간 사격으로 발생하는 화약 연기를 배출할 수 있는 창문(고창)도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관람방향을 표시해놓아도 길을 잃는 관광객이 많을 것 같은데, 어느 방향으로부터 공격이 있을지 모르는 위급한 전투상황에서 방향을 잃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천수각에서 내려다본 니시노마루 지역. 극적인 삶을 살았던 센히메가 거주했던 곳이다
천수각을 지탱하는 두 기둥
일본의 철도망은 세계최고로 발달해 있다. 고속철도 신칸센은 1964년 세계최초로 개통했다
거대한 천수각 아래서 꾸밈없이 뛰노는 어린이. 옛 전쟁시설이 이제는 놀이터가 되었다

 

어느 정도면 이 성(城)을 공략할 수 있을까
평생을 직업군인으로 살아온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공성무기(攻城武器) 자체가 제한적이었던 당시의 여건을 감안하면 해자(대부분이 50m 정도의 폭이지만 어떤 곳은 50m가 훨씬 넘는 곳도 있음)와 3중의 성곽은 물론 이렇게 철옹성으로 구축한 성을 정상적으로 공격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다(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성을 공격할 때도 성벽 앞에 설치된 해자를 계략으로 메운 다음에야 성을 함락한 사례도 있다). 불화살 등을 이용한 화공(火攻) 등 특별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공격자의 1/10의 병력으로도 충분히 성을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치밀하고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어 400년 전 축성술(築城術)의 치밀함에 놀랄 따름이다. 

당시에도 가장 가능성이 있는 공격 방법 중의 하나로 화공(火攻)을 염두에 두었으며 이로 인한 화재 발생에 대비해서도 성 내부에 우물들을 구축해놓았으며(33개소 중 현재는 11개소만 전하는데, 이것으로 화재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지는 판단 곤란함), 성의 외벽도 회반죽으로 덧칠해서(두께 3cm 정도) 화재를 막는데 도움이 되게 했다고 한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천수각의 지붕 용마루에 사치호코(金魚虎, 머리는 사자 몸은 뿔이 달린 물고기 형상으로 불에 강하여 화재를 막아준다는 상상의 동물)까지 조각해 놓았지 않은가.

히메지 성 자체의 구조와 방어강도로 볼 때 난공불락의 요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성 그 자체가 적의 침입을 근원적으로 방어할 수 있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이라는 방어시설과 함께 반드시 지키고야 말겠다는 사람의 의지가 통합될 때만 그 본연의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고 적을 격퇴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의지가 중요함은 여러 전사에서 증명되어 왔다.

노파까지 축성을 도왔다는데
일본은 화산활동이 많았던 나라여서 견고한 화강암이 많지 않다고 한다. 당시 성을 축성할 때 돌이 매우 부족했는데 마을에서 떡을 만들어 팔던 노파가 그 소문을 듣고 자신의 생계수단이나 다름없는 맷돌(우바가이시, 老婆石)을 기증하여 축성에 보탬이 되게 했다고 전한다. 이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묘지의 석관, 비석, 석등, 탑 등 성을 쌓는데 필요한 돌을 자발적으로 기부하여 성곽이 빠른 기간에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성벽을 지나노라면 그 흔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좋게 얘기하면 기부요 기증이겠지만,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분위기(?)에 의한 반강요적 성격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궁금하다.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을 당시 태평양전쟁을 수행하느라 금속 등의 전쟁물자가 부족하게 되자 ‘공출’이라는 이름 아래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놋그릇 등의 제기(祭器), 수저와 같은 식기는 물론 화로 등 온갖 자잘한 쇠붙이까지도 모두 징발해갔던 적이 있으니 말이다.

성을 나서니 비는 더 굵어지고
천수각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보니 벌써 3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오늘 중점적으로 둘러본 곳 외에도 히메지성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인 ‘센히메(千姬)’가 히메지성 성주의 아들(혼다 다다토키)과 결혼하여 들어와서 살았던 공간이 있다. 히메지성 서쪽에 있는 ‘니시노마루’ 지역이다. 이곳 역시 히메지성의 방어에 한축을 담당했던 곳이라 관심이 있었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오늘 늦지 않게 ‘아스카(飛鳥)’까지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고 히메지성을 나선다. 히메지 성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생활, 활동의 편리함 보다는 전투하기에 적절한 공간과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히메지성을 나서니 비가 더욱 굵어진다. 우의를 챙겨 입었지만 추위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식당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고 몸도 말리면서 다음 일정을 짚어본다. 아직도 멎지 않고 내리는 봄비 속에 히메지역을 향해 페달을 밟으면서도 일본인들의 치밀함을 많이 생각해본다.

이런 낭패가 다 있나
오후 일정은, 히메지를 출발해 숙소가 있는 나라의 다카다(高田) 역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목적지까지 가는 열차편은 총거리 140km, 2시간 정도 걸리고 3번을 환승해야 한다. 지금 출발한다면 어둡기 전에 예약된 숙소에 여유 있게 도착해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내일 일정인 아스카와 나라 지역 답사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모든 것이 계획대로 쉽게 되겠는가. 이동 간 열차를 환승하면서 열차에 배낭을 놓고 내리는 일이 생겨 배낭을 찾느라고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과정은 엄청 힘들고 복잡했지만 잃어버린 배낭을 이상 없이 되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배낭을 찾아 숙소가 있는 다카다역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도 훌쩍 지난 시간이었고, 그때는 밤비도 더욱 굵어져서 더욱 착잡하고 복잡한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니 배도 고프고 마음도 울적하다. 시장기를 채워줄 음식과 기분을 풀어줄 맥주 몇 캔, 그리고 내일 아침 식사꺼리를 편의점에서 사가지고 와서 밤늦게 혼자 청승맞게 제법 굵어진 빗소리를 들으며 솔로 여행의 묘미를 느껴본다. 그런데 꼴이 좀 우습다.

오늘은 겨우 20km 정도의 라이딩 밖에 못하면서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뭔가 첫 조짐이 이상하다. 이번 솔로 여행이 순탄치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누구는 “길을 잃어봐야 길을 알게 된다”고 얘기했는데, 그럼 배낭을 잃어보면 무엇을 알게 되는 것일까? 어쨌든 오늘은 수고가 아닌 고생을 많이 했다. 내일부터는 정신 차리고 제대로 하자며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다음호에 계속). 

축성에는 노파가 아끼던 맷돌까지 동원됐다
돌이나 기름을 떨어뜨려 성벽을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는 이시오토시
위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급해지는 성벽과 이시오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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